정치는 패션이 아니다

입력
2021.07.02 00:00
수정
2021.07.02 09:34
27면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인사말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인사말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이준석 대표 당선으로 국민의힘이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특히 그가 쏘아 올린 ‘공정한 경쟁’이라는 화두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버둥 치던 청년들의 공정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야당에 대한 폭발적 기대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파격적인 변화와 강력한 세대교체에 대한 갈망보다는 반복된 내로남불과 허울뿐인 구호에 대한 반작용이 더 커 보인다.

공직자 자격시험은 이 대표가 이야기하는 ‘공정한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이슈다.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어 낸 공무원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선출직 공직자가 아무런 검증 없이 공천을 받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공부한 공무원들을 감사할 힘이 있는 의원도 최소한의 기초지식 평가는 통과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주장이 여의도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내에서도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다, 공직자 자격시험이 보수의 가치를 표방하는 국민의힘에 걸맞은 옷이냐 하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보수주의자는 대체로 작은 정부, 자유로운 경제활동, 부국강병, 애국주의와 가족주의, 법치에 대한 강조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은 분명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에 대한 포용적 시각이 배제된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헬조선’을 ‘정글조선’으로 후퇴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한 손엔 능력주의를, 다른 한 손엔 약자에 대한 온정적 시각을 겸비해야 한다. 공직자 자격시험이 계량화된 지식은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뜨거운 가슴과 정열은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예를 들어 유권자에게 컴퓨터 사용능력을 강제한다면 차별적 논란이 되지 않을까? 연로한 어르신들은 어떻게 느낄까? 가슴은 필요하되 지혜는 경시될 가치인가? ‘유엔(UN)의 새로운 연령구분’에 따르면 65세까지를 “청년”으로 본다니 ‘잘못하면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세상도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과연 나이 순이 청년의 순이고 나이 순이 혁신의 순서인가?

선거에서 유권자의 직접 선택을 받는 선출직 공직자의 지식을 평가해 공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발상은 어쩌면 우리 정치의 철학과 비전, 이념의 빈곤이 낳은 슬픈 자화상일지 모른다. 50년, 100년 후의 대한민국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고민하는 정치인보다는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을 더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가치와 비전보다 예능적 감성포장이 뛰어난 사람이 정치권력을 얻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정치는 패션이 아니다. 정치는 시대정신을 읽고 정책으로 구현해내는 고도의 행위이다. 2030세대가 혹독한 경쟁의 굴레에 지쳐 공정이라는 가치에 목말랐다 하여 제1 야당의 대표가 보수의 중요한 가치와 덕목을 간과하고 선출직 공직자의 지식마저 줄 세우기 해선 안 된다. 이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의 진정한 자격은 그때 그때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과 신념이다. 정치공학자나 정치학 박사가 아닌 가치와 비전과 이념으로 다듬어진 정치인이 더 많이 여의도에 나타나야 한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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