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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소통보다 시민 소통을…강남역·수원역에도 광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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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2> 광장, 휴먼시티의 조건
흔히 도시민주주의를 광장민주주의(Agora Democracy)라 한다.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과 숙의를 통해 중요한 역사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장은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왔다. 공원이 되기 전 여의도광장은 대선 유세의 단골 장소였고, 국가적 행사 때마다 함께했다. 세종로에 들어선 광화문광장은 국민들에게 소통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소위 촛불혁명을 잉태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 광장은 멀게 느껴진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굳이 광장을 찾을 일이 없고 공원이 더 편하다. 왜 그럴까. 오늘날 도시에서 광장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장터 마당에서부터 광화문광장에 이르기까지 광장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광장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고민해보자.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는 ‘모임 장소’란 뜻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도시광장이다. 이곳은 중요한 만남의 장소일 뿐 아니라 시장이었고, 공연장이었다. 나아가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오고가는 정치마당이기도 했고, 철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배움터였다. 만약 아고라가 없었다면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철학도 꽃피지 못했을지 모른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장터가 광장의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통상 일정 주기를 가진 정기 시장이었다. 5일장은 닷새마다, 7일장은 이레마다 장이 서는데, 이 말은 장이 서는 날을 제외하고는 빈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장이 없는 날에는 아이들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고추를 말리는 마당이기도 했다. 장날에는 이곳에서 사당패들이 공연도 하고 단오날에는 씨름경기도 열리곤 했다. 조선시대 장터는 단순한 만남의 장소를 넘어 복합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광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과 문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보 교류의 플랫폼이었다.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은 그 동네의 소식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빠르게 퍼지는 커뮤니티 중심 시설이었다. 한편 대형 광장에서는 많은 정치적 사건과 혁명이 일어났다. 루이 16세는 파리의 콩코드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이 됐고, 광화문광장의 촛불은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우리 도시에서는 그동안 공원을 많이 만들어 시민 휴식처를 늘리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한강공원이나 양재천공원 같은 수변공원과 여의도공원, 서울숲 같은 지역 중심 공원이 대표적이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도 공원 면적은 크게 확대됐다. 1990년대 건설한 일산신도시는 공원녹지 비율이 24%인데 최근 마무리된 광교신도시는 두 배 가까운 44%다. 복잡하고 삭막한 회색 도시에서 나무와 꽃으로 덮인 초록 공원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러나 공원에 비해 광장은 여전히 찬밥 신세다. 광교신도시를 예로 들어보자. 광장은 신도시 전체 면적의 2.6%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사람을 위한 광장은 광장 총면적의 4%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머지 96%는 ‘교통광장’이다. 대부분 교차로를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것이니 시민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사정은 구도심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 광장의 대부분은 교통광장이다. 심지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서울광장이나 숭례문광장도 여전히 법상으로는 교통광장이다.
공원이 많으니 광장은 별로 필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연코 아니다. 광장은 공원과 다르게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휴식을 위한 장소인 반면 광장은 활발한 교류의 공간이다. 그래서 공원에는 나무도 심고 벤치도 많지만 광장에는 대부분 나무가 없다. 그저 큰 마당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광장에서는 공원과 달리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치러지기도 한다. 세계적인 축제가 주로 광장에서 행해지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더 중요한 것은 광장은 시시때때로 국민적 이슈를 논의하는 중심적인 장소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시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광장이 있어야 한다. 광화문에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공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나무와 벤치들 사이를 비집고 과연 우리가 촛불을 들고 한곳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을까.
서울 강남은 전반적으로 인프라가 잘 돼 있지만 광장 인심은 박하다. 노래 ‘강남스타일’이 한창 빌보드를 휩쓸던 2012년 미국 기자가 강남스타일을 취재하기 위해 강남역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광장 정도는 있을 줄 기대했는데 그냥 덜렁 차도와 보도만 있으니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후 강남역 12번 출구 옆에는 나름 노력의 흔적을 남겼다. ‘강남스퀘어(Gangnam Square)’라고 이름을 붙인 손바닥만 한 공터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한다 해도 강남에 걸맞은 수준은 아니다. 근처에 갈 때마다 눈여겨봤지만 강남스퀘어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사람 중심 도시를 지향한다면 우리에겐 좀 더 번듯한 광장이 필요하다. 편안하게 만나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합리적 규모의 광장이 생긴다면 시민들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의 차로는 폭 35m, 길이 700m 정도다. 이 구간을 조사해보면 단순 통과 차량이 60~70%다. ‘도로 다이어트’로 차로를 축소해 제대로 된 광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2009년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인근에 차도를 막아 만든 보행자 광장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교통전문가와 상인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제는 뉴욕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 방문객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됐다. 당연히 상권도 더 활성화됐다. 차나 사람이 ‘바삐 지나가던’ 공간이 ‘머무르면서 즐기는’ 공간이 되면서 나타난 효과다.
수원역 앞도 광장이 필요한 대표적인 곳이다. 지금은 기형적인 회전교차로 앞에 반달형 교통섬이 있는데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죽은 공간이다. 수원역 앞은 유동인구가 매우 많지만 머물 공간이 없으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이곳에 제대로 된 광장을 만든다면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도심재생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뉴욕의 사례처럼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면서 상권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백화점과 버스 환승시설, 로데오거리가 만나는 중심에 위치하므로 이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수원의 ‘힙플레이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만약 우리에게 또 한번 월드컵 4강의 기회가 온다면 서울광장 못지않은 역사적 장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도심에 더 많은 광장을 만든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교감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휴먼시티에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나누는 친밀한 교감은 차량 소통으로 얻는 만족에 비할 수 없다. 자동차보다 시민의 소통이 훨씬 더 공동체에 이로울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광장은 교차로보다 소중하다. 세대갈등과 양극화로 이해와 배려가 더 절실해지고 있는 지금, 잊고 있던 광장의 가치를 돌아보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심 곳곳에 더 많은 광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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