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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이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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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일보>
시시하다. 정치 이야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했고, 최재형 감사원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직을 내려놓았다. 아홉 명의 정치인이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레이스 역시 본격화됐다.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윤 전 총장은 최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열면서 ‘애처가’, ‘마당쇠’, ‘석열이 형’을 내세웠으나 이내 계정을 닫았다. 그를 공격한답시고 여당 지지자들은 ‘아내의 과거’를 캐고 있다. 와중에 카운터 파트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역시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그다지 설득력 없는 변명을 내놓았다. 정치판 ‘슈퍼위크’의 지루한 풍경이다.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책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장영은의 '여성, 정치를 하다'를 펼쳤다. 이 책에는 스물한 개의 뜨거운 ‘정치 이야기’가 꿈틀거리고 있다. 무엇보다 세상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어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장영은 작가는 2018년 여성의 날에 나혜석 선집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출간했다. 그가 나혜석의 문장들 중에서 수록할 글을 고르고 해제를 썼다. 2020년 여성의 날에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내놓았다.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수전 손택, 박경리 등 스물다섯 명의 글을 쓰는 여자들의 삶과 사유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성, 정치를 하다'는 2021년 여성의 날에 출간했다. 내가 최근 여성의 날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장영은이다.
책의 주인공은 정치하는 여자들이다.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낙태죄 폐지를 이뤄낸 시몬 베유,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월가의 저승사자’ 엘리자베스 워런, 대만 총통 차이잉원 등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들은 물론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 흑인민권 운동의 기수 로자 파크스, 열한 살 때부터 파키스탄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같은 혁명가들도 다룬다. 뿐만 아니라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판화가 케테 콜비츠 등의 예술가들의 생애도 함께 펼쳐진다.
이처럼 책이 다루는 인물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유는 장영은에게 정치란 "몫이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랑시에르)"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이 여성의 몫을 찾기 위해 수행하는 사회적 실천들”을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다. 책을 읽다 보면 ‘여성의 몫’이란 결국 다양한 소수자들과 비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의 ‘몫’에 대한 요구로까지 확장되는 급진적 정치의 출발점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든 행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건 필자인 장영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마거릿 대처의 야망과 용기, 결단력을 높이 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를 사랑할 수는 없으리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장영은의 말처럼 나 역시 한 정치인의 옳고 그름과 성패 자체를 판단하는 일보다는 한 명의 정치인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에 더 관심이 많다. 바로 거기에 정치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돼 있는데 그 제목이 인상적이다. 1부 “누구를 위해”, 2부 “어떻게”, 3부 “무엇을 위해”. 지금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사람 중에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후보가 있을까. 나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실패를 알면서도 기꺼이 몫이 없는 자들을 위한 정치에 도전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상대편에게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낡고 익숙한 레토릭을 반복하거나, 팬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거나, 적극적으로 우회전 깜빡이를 켜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확장시키는 지루한 정치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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