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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홍등에 취하고... '와호장룡' 찍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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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주여인(徽州女人)’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청나라 말기 휘주를 주름잡던 상인인 정씨(程氏) 가문에 시집온 다섯 여인의 애절한 삶이 줄거리로 2007년에 방영됐다. 황산시 이현(??) 노촌(盧村)이 촬영지다. 실제로도 노촌의 상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청나라 도광제 시대 휘주 갑부이자 염상인 노방섭이다. 10세기 후반 오대십국의 남당(南唐) 말년, 노씨 조상이 이주했다. 33대손 노방섭은 부인과 첩을 여럿 둘 정도로 재력과 위세가 등등했다.
도랑과 돌다리 너머에 가옥을 담는 학생들이 촘촘하게 앉았다. 도랑 따라 들어서면 왼쪽으로 옛 마을이다. 지도를 보니 제법 규모를 갖춘 저택이 일곱 채다. 대부분 도광제 시대에 건축했다. 처첩이 많으니 한집에 살기 어려웠다. 첩이 다섯이 아닌 여섯이었다는 헛소문은 이 때문인 듯하다. 노방섭은 자식 복도 많아 딸이 열여섯, 아들이 여덟이었다. 저택 공사비도 충분했으니 무슨 걱정이었겠는가. 드라마에서처럼 큰 마님인 라오타이타이(老太太), 곧 본처가 거주하던 지성당(志誠堂)이 있다.
지성당은 노방섭이 거주한 저택이다. 입구는 수화문으로 꾸몄는데 문미(門楣) 위로 잡초가 자라고 있다. 전설에 등장하는 4마리의 기룡(夔龍)을 새겼다. 가운데 두 마리는 고개를 쳐들고 날아가는 모습이며, 양쪽 두 마리는 비스듬하게 몸을 틀어 휘돌아가는 모습이다. 바로 아래 액방(額枋)의 석조에는 연꽃, 원앙, 봉황, 모란, 소나무, 학, 까치가 아기자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산과 부부 금슬, 복과 장수를 상징한다. 가장 아래에는 전쟁을 묘사한 도안도 있다. 상인으로 성공한 후 조정의 관리로 대부 벼슬을 받은 노방섭은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민란에 참전했다. 수전, 산악전, 진지전 등을 주제로 문관과 무관이 등장한다. 두 전쟁은 청나라에게 치욕이었건만 노방섭에게는 자랑이자 교훈이었던 듯하다.
‘목조제일루(木雕第一樓)’라 불린다. 장인 4명이 무려 25년에 걸쳐 저택에 화려한 목조를 입혔다고 하니 공을 들여도 한참 들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연화문(蓮花門)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여덟 짝 문이 두 개 있다. 정면에도 여섯 짝 문 두 개가 나란하다. 네 부분으로 나눠 위부터 미판(眉板), 흉판(胸板), 요판(腰板), 군판(裙板)이라 한다. 눈썹, 가슴, 허리, 치마로 나눈다. 여덟 짝 문의 치마 부분은 길고 여섯 짝은 짧다. 눈썹은 꽃으로, 가슴은 층층이 동물과 식물, 여의와 보병으로 장식했다. 부귀영화와 길상을 뜻하는 문양이다. 허리에 박쥐, 사슴, 꿀벌, 원숭이 등이 등장하는 우화가 있다. 복록(福?)과 봉후(封侯)에 대한 기원이다. 치마에는 양 치는 소동파, 거위와 노는 왕희지, 술 취한 도연명이 주인공이다. 사서 한 줄이라도 읽었다면 문양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가 또렷이 떠오르고도 남는다. 볼수록 한편의 드라마다. 스쳐 보면 그저 나뭇조각에 불과하다.
노방섭은 약간 치사했다. 총애하는 정도에 따라 저택 규모에 차이를 뒀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니 사성당(思成堂)이 나온다. 넷째 부인이 거주했는데 다른 저택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 문미 위에 조롱박 모양으로 구멍을 뚫었는데 통풍구로는 너무 작아 보인다. 마당 양쪽에 심은 감나무와 어울리니 속뜻은 매우 컸다. 조롱박 후루(葫芦)는 루이(如意)를 뜻한다. 감나무는 스수(??)라고 발음한다. 조롱박과 감나무를 한 공간에 두니 그 뜻이 어마하게 분출했다. ‘모든 일마다 뜻한 대로 돼라’는 스스루이(事事如意)를 상징한다. 왜 이런 뜻을 담았을까? 지은이만 알리라.
아들딸 합해 24명이었다. 휘주 상인의 교육열은 요즘 강남 엄마 저리 가라다. 사숙(私塾)이 있다. 하늘로 뚫린 천정(天井) 덕분에 내부가 밝다. 목조 예술로 뒤범벅인데 아쉽게도 날카롭게 잘려나간 장면이 많다. 그냥 떨어진 흔적이 아니라 벗겨낸 모양새다. 문화혁명의 잔재다. 나무나 풀, 정자나 책상은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목표로 했다. 목만 자르거나 통째로 긁어냈다. 통치자의 그릇된 망발로 인해 양산된 치욕은 시골 구석구석까지 집요하게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굉촌(宏村)으로 간다. 안휘고촌락 중 항상 금메달이다. 가을에 두 번, 봄에 한 번 갔다. 이왕이면 유채가 사방에서 흩뿌리는 봄에 가면 더욱더 좋다. 노촌 바로 옆 동네로 약 3㎞ 떨어져 있다. 걸어가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남송 초기인 1131년에 시조인 왕언제가 정착했다. 9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왕씨(汪氏) 집성촌이다.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을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매표소를 지나 마을로 들어가려면 남호(南湖)를 건너야 한다. 캔버스를 응시하는 학생이 호수 주위에 많다. 그림 그리는 이가 많을수록 인기 여행지다. 아치형 다리를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와호장룡'에서 장쯔이가 저우룬파(주윤발)에 쫓겨 날렵한 무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영화처럼 봉긋한 다리, 호수와 수련, 하늘과 구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감동이다. 돌다리를 넘어가는 사람들의 옷 색깔조차 그림이 된다. 다리를 넘는 내 모습도 화폭 속으로 들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다리 위에서 보면 서원 쪽이나 반대쪽이나 모두 환상이다. 동화 속 한 장면을 바라보는 듯하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남호서원이 있다. 1814년 청나라 시대에 세웠다. 여섯 채의 사숙이 호반을 따라 인접했기에 의호육원(依湖六院)이라 불렸다. 하나의 서원으로 통합한 후에는 이문가숙(以文家塾)이라 했다. 하늘색 바탕의 편액과 홍등이 어울려 산뜻하다. 입구는 목책으로 막았고 문은 좁다. 한꺼번에 들어가다 보니 서로 부딪힌다. 학동이 공부하던 학당이자 공자에게 예를 올리는 사당이다.
명나라 초기인 영락제 시대에 마을의 골격을 만들었다. 소의 몸을 본떠 조성했다고 한다. 뒷산을 소 머리로 두고, 마을 밖 4개의 돌다리가 다리 부분이다. 남호는 복부다. 머리에서 배에 이르기까지 물이 골고루 흐르도록 수로를 만들었다. 담장을 따라 졸졸 흐르게 했다. ‘구절우장(九折牛腸)’이라 빗댈 만하다. 물이 고이는 수구(水口)가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소의 위장 부분이라 설명하는데 오히려 심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를 보면 한우 부위를 보는 듯하다. 골목을 따라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돌아가면 마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천연 호수라고 해도 믿을 월소(月沼)가 한복판이다. 원래 있던 샘물을 크게 다듬었다. 물이 복이라 했으니 수구는 클수록 좋았다. 보름달을 만들고자 했으나 반달에 가깝게 완성됐다. 장쯔이와 저우룬파가 다시 등장한다. 반달 모양의 호숫물을 사뿐히 밟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깥의 남호를 거쳐 사라진 후 대나무 결투 장면으로 이어진다. 가옥 담장인 마두장(馬頭牆)은 물론 하늘과 구름도 호수 안으로 들어왔건만 그저 고요하다. 호수 반영에는 여행객만 움직일 뿐이다. 가을에 갔더니 하늘도 시원하게 호숫물 속으로 들어왔다. 봄에 가니 비가 온 뒤라 약간 흙탕물이었다. 배를 타고 풀잎이나 쓰레기 줍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배 위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월소에 비친 왕씨종사(汪氏宗祠)가 데칼코마니다. 명나라 말기인 만력제 시대에 건축했다. 3중 처마로 꾸민 문루가 화려한 명성을 짐작하게 한다. 처마 끝마다 오어(鰲魚)와 용두(龍頭)가 휘날리고 있다. 성은을 받아 주홍색으로 쓴 은영(恩榮)에 두 마리 용이 구슬을 빼앗는 쌍룡창주(雙龍?珠)를 조각했다. 기린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 봉황이 마주 보고 있다. 바로 아래에 세덕발상(世德發祥)이라 적었다. 대대로 덕을 쌓아 좋은 일이 생기라는 말이다. 사자가 수놓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도 있다. 길상을 뜻하는 조각으로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당호는 낙서당(樂?堂)이다. 왕씨 시조와 더불어 휘주와 굉촌에서 각각 자리를 잡은 조상 3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문중에서는 온 가족을 이끌고 이주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역사다. 사당을 건축할 당시 가장 부유했던 왕신이 비용의 절반 이상을 출자했다. 서체에서 시집온 왕신의 부인 호씨(胡氏)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자금을 많이 낸 공로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소 부위를 착안해 마을을 설계한 장본인이 호씨 부인이다. 마을의 원형을 이해하고 지리학을 원용하는 지혜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유명 관광지가 됐으니 추앙을 받아 마땅하다.
굉촌을 대표하는 저택은 승지당(承志堂)이다. 월소 서쪽 문을 지나 북쪽으로 2~3분 거리다. 염상인 왕정귀의 저택으로 청나라 함풍제 시대인 1855년에 건축했다. 작은 중문과 양쪽 쪽문을 두고 목조로 화사하게 꾸민 공간이 나온다. 이를 상자문(商字門)이라 부른다. 휘주 건축이 지닌 특징 중 하나로 상(商)을 연상시킨다는 말이다. 휘주 상인의 대담한 자신감도 내포하고 있다. 평민이나 고관대작이나 문에 해당하는 입(口)으로 오가는 사람은 모두 상인 아래에 위치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휘주 상인은 재력과 권위를 두루 갖췄다.
목조는 20여 명의 목공이 4년에 걸쳐 작업했다. 비용만 60만 량이 소모됐다고 한다. 표면에 금가루를 칠해 찬란했다. 지금도 흔적이 남아서 여느 목조에 비해 고품격이다. 색이 많이 바랬지만, 자부심만큼이나 화려하게 꾸몄다. 마름모꼴 파란색 바탕에 금색으로 쓴 복(福) 자가 눈길을 끈다. 바로 위에 100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는 조각이 있는데 백자료원소도(百子鬧元宵圖)다. 정월 대보름날인 원소절에 시끄럽게 노는 모습이다. 용등(龍燈), 징, 북, 폭죽, 장대로 걷는 고교(高?) 등 놀이기구도 다양하다. 기둥 사이의 작고 통통한 들보를 헌량(軒梁)이라 한다. 양쪽에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화려하기 그지 없다. 기둥 윗부분에서 대들보 받침을 하는 탱공(撑?)이 많다. 모두가 상자문의 품위를 드높이고 있다.
승지당 창문과 처마, 대들보 곳곳에 빠짐없이 조형 예술을 남겨 놓았다. 2m 길이 중간에 50cm만큼 조각도가 파고 들어간 대들보가 있다. 새긴 내용은 당숙종연관도(唐肅宗宴官圖)다. 당나라 숙종 시대 연회를 담당하는 관원 30여 명이 등장한다. 모두 여섯 부분으로 나뉜다. 팔선(八仙) 탁자가 등장하며 거문고를 튕기거나 바둑을 둔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모습도 보인다. 흥미로운 장면은 양쪽 귀퉁이에 있다. 왼쪽에 귀를 후비는 모습과 오른쪽에 화로로 물 끓이는 모습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관리의 일상까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궁중 물건이나 동식물도 있고 인물의 동작도 생기발랄하며 보존 상태도 아주 좋다.
곽자의상수도(郭子儀上壽圖)도 눈길을 끈다. 곽자의는 당나라 시대 안사의 난을 평정한 장군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다복의 대명사로 꼽히는데 아들이 7명이고 사위가 8명이다. 장수를 축하하는 만찬을 열었으니 어찌 역사에 남지 않았겠는가? 아들과 사위가 모두 참가해 축복을 비는 모습이 부럽다. 곽자의는 일평생 큰 복을 누렸고 관운도 좋았으며 85세까지 장수했다. 승지당 주인도 곽자의가 부러웠다. 강남 수향인 우전(烏?) 동책(東柵)에 가면 목조관이 있다. 곽자의의 축수(祝壽) 장면을 새긴 대들보가 전시돼 있다. 곽자의와 부인, 아들과 사위, 심부름하는 여자아이 넷, 조정 대신 셋까지 모두 24명이 등장한다. 보고 있으면 그저 감동의 물결이다. 중국인 모두 곽자의가 부러웠다.
어둠이 시작되면 월소로 간다. 마을 안에 있는 객잔을 먼저 잡는다. 휘주 분위기를 연출한 객잔이 많다. 성수기가 아니면 고르고 골라 하룻밤을 보내도 좋다. 요즘은 미리 인터넷에서 사진을 살펴본 후 예약해도 된다. 숙소를 정했으면 월소 옆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안후이성의 약칭이 완(?)이다. 완주 한 병 들고 가서 잔을 따른다. 야경에 취하면 시인이 된다. 이백을 불러내 한잔하자고 ‘장진주(將進酒)’를 읊조린다.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은 마땅히 마음껏 즐거워야 하느니
莫使金樽空對月 금 술잔 비운 채로 달을 바라보지 말라
시인 이백의 '장진주'
휘주문화를 되새김질한다. 소박하고도 화려하다. 담백하면서도 강렬하다. 상인인데 고관대작도 떠오른다. 복록수로 범벅인 문화도 등장한다. 물을 복이라 한다. 무엇보다 참 좋은 여행이다. 권주가 불러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잔을 들게 된다. 금잔이면 어떻고 유리잔이면 어떤가? 밤 깊어 검게 변한 호수도 홍등의 향연에 취하고 있다. 소리 없이 녹는 백주에 비몽사몽 된다 해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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