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 퍼질라… 유로2020 강행한 유럽 ‘초긴장’

입력
2021.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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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0 경기장 방문한 관중들 감염 속출
英, 결승전 6만명 수용 방침…유럽 각국 반발
러시아서도 '변이의 변이' 델타 플러스 첫 확진
美, 델타변이 비중 26%... 실내마스크 착용 검토

잉글랜드 축구선수 라힘 스털링이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유로2020 16강전 후반 31분 선제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스털링의 선제골과 해리 케인의 쐐기 골로 독일을 2대 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런던=AP 뉴시스

잉글랜드 축구선수 라힘 스털링이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유로2020 16강전 후반 31분 선제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스털링의 선제골과 해리 케인의 쐐기 골로 독일을 2대 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런던=AP 뉴시스

유럽이 백신 접종에 힘입어 지난해에서 올해로 연기된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를 강행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위기에 맞닥뜨렸다. 경기를 관람한 관중들의 확진 사례가 쏟아지면서 ‘유로 2020이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델타(인도)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영국 런던에서 결승전과 준결승전이 열릴 예정이라 유럽 방역당국엔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핀란드에서 유로 2020 원정 응원을 다녀온 축구팬 300여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핀란드축구협회는 2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벨기에전을 현장 관람한 자국 응원단 규모가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 모두를 추적 중이다. 러시아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최근 델타 변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나라다. 덴마크 보건당국도 17일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경기 직후 델타 변이 확진자가 속출하자, 경기장을 찾았던 관중 4,000명에게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으라고 강력 권고했다.

스코틀랜드도 난리가 났다. 28일에만 신규 감염이 3,285명이나 쏟아지며 일일 확진자 수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이하게도 40세 이하 남성층에 감염이 집중됐는데 열성적인 축구팬 연령대와 일치한다. 스코틀랜드 보건당국은 18일 런던에서 열린 잉글랜드전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규제로 스코틀랜드 응원단에 배정된 좌석은 2,600개뿐이었지만, 약 2만 명이 런던 시내 곳곳에 모여 응원전을 펼쳤다.

축구장은 밀폐된 실내 공간이 아니어서 감염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보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이 문제였다. 윌리엄 샤프너 미국 밴더빌트대 감염병학 교수는 “축구팬 수만 명이 버스, 기차, 비행기로 이동하고 호텔에 투숙하면서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것”이라며 “경기를 보기 위해 술집 같은 밀폐 공간에 모이는 것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경기장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경기가 열리는 10개 나라에 입국하는 해외 원정 응원단 2,000명과 연맹 관계자 2,500명, 각국 취재진에게는 자가격리를 면제했다. 애초부터 방역 지침이 느슨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경기장마다 규제도 천차만별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푸슈카시 아레나는 관중석을 꽉 채우되 코로나19 음성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한 반면, 영국 글래스고 햄던 파크는 수용 인원을 25%로 제한하면서 코로나19 진단서를 요구하진 않았다. 독일 라이프니츠경제연구소와 덴마크남부대의 공동 연구 자료를 입수한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의 보도 내용을 보면, 대규모 관중을 수용한 분데스리가(독일 프로축구) 경기가 열린 이후에 지역 감염이 7~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 2020에서 잇따르는 감염도 필연적 결과라는 얘기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유로 2020 16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하자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런던=AP 뉴시스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유로 2020 16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하자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런던=AP 뉴시스

유럽은 특히 영국 내 코로나19 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델타 변이 확진자가 하루 2만 명씩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다음 달 11일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 관중 규모를 경기장 수용 인원의 75%인 6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탓이다.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은 “무책임하다”며 반발했고, 마르가리티스 스히나스 유럽연합(EU) 부집행위원장도 “최종전 개최지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미 여러 나라가 영국발(發)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우, 영국 출발 입국자에게 5일 자가격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음 달 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잉글랜드와 우크라이나의 8강전은 영국 거주 축구팬의 현장 관람이 아예 불가능해졌다.

델타 변이가 또 변이한 델타 플러스도 위험 요인이다. 러시아 보건당국은 여성 환자 1명한테서 델타 플러스가 확인됐다고 이날 밝혔다. 러시아 내에선 첫 번째 델타 플러스 감염이지만, 이미 델타 플러스는 영국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각국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태다. 델타 변이도 퇴치하지 못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델타 변이 감염 비중이 26.1%까지 치솟은 미국의 경우, 실내 마스크 착용 지침을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는 “예방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마스크 착용 지침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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