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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아스트라제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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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한 눈망울에다 불량기를 꾹꾹 눌러 담아 한참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니가 가라 하와이.” 영화 ‘친구’ 그 자체는 아무리 뜯어봐도 저게 저렇게 폼 잡을 일인가 싶지만, 장동건의 파격적 연기만큼은 압도적이었다. 그 훌륭한 얼굴을 이리저리 잘도 구겨댔던 바람에 저 대사는 한 시절의 유행어였다.
올해, 비슷한 말이 유행이었다. “니가 맞아라, 아스트라.” 백신 접종 초기, 그래도 기자인데 어디서 뭐 들은 이야기 없나 싶어 물어보는 이들에게 "KTX 도입 초기 역방향 논란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 농담하고 말았다. 일정 정도 현실이 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의학이나 건강 문제란 사실 늘 그렇다. 무료한 오전 시간, 의사라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어디에 뭐가 좋네 한참 떠들어대는 무슨 건강 프로그램을 보다 거기에 홀딱 빠진 늙은 부모님이 철 바뀔 때 갑자기 보내주는 무슨 즙 같은 것. 핵심은 ‘실제 효과’보다는 ‘나의 마음, 너의 마음'이다. 글로벌적으로는 패닉을, 한국적으로는 피난민 심리를, 인류진화 역사상으로는 ‘도마뱀 영역’이라 불리는 대뇌 변연계를 집중 자극하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백신 접종, 그것도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백신 접종은 하나의 거대한 공리주의 게임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득이지만 극히 일부라 해도 일정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게임. 그 손실이 확률적으로 따져봤을 땐 로또 당첨될 수준보다 더 낮네 어쩌네 해봐야 ‘그런데 그게 하필 나라면 어쩌려고?’라는 반문 앞에선, 그 어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게임. 에이, 좀 앓다가 만대요, 하면 남의 건강에 무관심하고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 취급당하기 딱 좋은 게임. 그래서 제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 해도 이건 정말 안전합니다, 하고 나서서 외치기엔 애매한 게임.
그런고로 못 믿을 백신 따위를 맞느니 건강프로그램에서 봤던, 면역력 강화에 특효가 있다는 차와 음식을 챙겨 먹으며, 솔향 짙은 숲에 들어가 두뇌호흡하는 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그 불안하다는 백신을 남들이 다 맞아 소위 말하는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면, 아무런 위험 부담을 지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누릴 수 있다. 프리 라이더, 무임승차자가 되는 거다. 그런데 모두가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아무도 백신 맞을 사람이 없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공리주의 게임이란 그런 게임이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고 싶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게.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접종을 위해 용감하게 팔을 걷어 올려 준 국민들에게도. 불안한 와중에도 다음 달부터 시도되는 일상 회복의 실험은,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경보음은 여전하다. 변이가 강력하다, 집단면역이 과대포장되어 있다, 돌파감염이 일어난다 같은 말들이다. 변이는 영국 사례에서 보듯, 백신을 아예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점을 빠트리지 말자. 집단면역과 돌파감염에 대해서는, 권투에서 가드를 바짝 올리는 건 결정타를 맞지 않기 위함이지 아예 한 대도 맞지 않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자. 확진자가 다소 늘더라도 큰 증상 없이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면, 백신은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7월 중순, 다시 1차 접종 레이스가 시작된다. 여기저기 불붙었는데 1등 백신, 2등 백신 놀음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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