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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 최재형, 제 2의 이회창 꿈꾸나...미완의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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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판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18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대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은 현직 감사원장의 정치 행보가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런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를 정치권에선 사실상 대권 도전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최 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만간 생각을 정리해서 밝히겠다"고도 했죠.
최재형이란 인물이 대선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개인의 자유일 겁니다. 문제는 그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생명처럼 떠받들어야 할 헌법기관 감사원의 수장이란 거죠.
당장 여당 민주당에선 "국민에 대한 모독"(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란 비판이 터져 나옵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최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모든 감사 활동이 정치적 시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정기관 고위공직자의 정치 직행이란 나쁜 선례도 남게 되겠죠.
그럼에도 최 감사원장 주변에선 "결단만 남았다"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부친으로부터 '국가에 충성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김종인 전 위원장), "최 원장이 법치주의가 무너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전언까지 들려옵니다.
이런 최 감사원장을 보며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서울대 법대, 판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고, 두 사람 모두 감사원장 재직 시절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도 각을 세울 만큼 '소신' 행보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게 공통점일 겁니다.
실제 이 전 총리의 팬클럽이었던 '창사랑'의 일부 회원이 최 원장 지지 팬클럽인 '법과 원칙의 대명사 최재형 감사원장을 사랑하는 그룹'으로 옮겨와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이를 의식한 듯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이회창 전 총리를 오마주하고 영웅시하느냐"고 비꼬기도 했죠.
최 감사원장은 정말 대쪽 이미지로 대권까지 노렸던 이회창 전 총리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걸까요. 두 사람의 '평행이론'이 얼마나 어디까지 들어맞을지, 이회창 전 총리가 감사원장으로 발탁되고, 정치에 입문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시계를 되돌려 살펴보도록 하죠.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가 남아 있어, 아직 소감이나 포부를 밝힐 단계가 아니다."
1993년 2월 23일 김영삼(YS)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내정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역시나 원칙주의자다운 면모를 보였는데요. '대쪽 같은 성품과 청결함을 높이 평가받아 발탁된 것 같다'는 평가를 전하자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청렴하고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죠.
당시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 감사원장 내정자는 '소수의견 판사', '소신판사'의 대명사로 통하며 법조계 안팎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의지가 요구되는 문민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적임자라는 평이다" 등등 칭찬 일색입니다.
최 감사원장도 초반엔 훈훈했습니다. 2017년 12월 청와대는 최 감사원장을 지명하며 치켜세우기 바빴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최 감사원장이 사법연수원 시절 다리가 불편한 동료를 매일 업고 출퇴근시키고, 아들 둘을 입양해 키운 '미담'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자녀들과 함께 최근 5년 동안 13개 구호 단체에 4,000만 원 넘게 기부하는 등 평소 사회적 약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봉사 활동을 해왔다고도 전했죠.
그러면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이다. 잘 부탁한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죠.
두 감사원장의 판박이 취임 일성도 한번 볼까요. 이회창 감사원장은 '성역 없는 감사'를 표방하며 "법대로"를 외쳤습니다.
이 감사원장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업무 계획을 사전 보고하거나 통제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청와대와 일찌감치 선 긋기에 나섰는데요. 또 부당한 간섭이나 부정한 타협에 굴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죠. 이 경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됩니다.
최 감사원장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를 외치며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네요.
최 감사원장은 "국가 최고감사기구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의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것만이 우리 조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성공적인 국가 운영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포부를 밝혔는데요.
그런데 '더 좋은 나라', '성공적인 국가 운영'을 언급하는 게 감사원장 취임사에 맞는 것인가, 괜히 다르게 들리는 건 순전히 '느낌' 때문이겠죠?
어찌됐든 두 사람 공히 청와대에 종속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감사원의 흑역사를 탈피하겠다는 의지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죠. 역린을 건드리면서까지 말이죠.
이 감사원장은 취임 한 달여 만인 1993년 4월 27일 건국 이래 최대 규모로 수십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 '율곡사업(군전력증강사업)' 특감에 착수합니다.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성역으로 간주돼 오던 국방사업에 칼을 댄 것인데요, 이게 단순히 고위 장성 몇명 날리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율곡사업의 최종 결재권자였던, 연희동의 두 전직 대통령까지 걸린 사안이었죠. 당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차세대 전투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직접 기종 변경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대두됩니다. 감사원은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원칙론을 고수하는 데 반해 청와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통치행위'란 말이 다시 회자됩니다. 당장 청와대에선 "통치행위를 갖고 전직 대통령을 조사하면 잘못된 정치적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네요. 전직 대통령을 비호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나중에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려해서였다는 속마음까지 드러내면서까지 말이죠.
하지만 개혁의 중추세력이 돼야 할 청와대가 통치행위를 방패막이 삼으려 한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자, 감사원의 손을 마지 못해 들어줍니다.
결국 그해 8월, 감사원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에 착수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서울 물바다 공포를 조장하며 대국민 성금을 모았던 '평화의댐' 사업이 문제가 됐었네요. "전직 대통령의 문제는 역사에 심판에 맡기자"던 YS도 결국 '창'의 원리원칙 앞에 체면을 구기게 된 거죠.
최 감사원장은 2019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와 감사위원 임명 제청 거부 등을 두고 정권과 대립하면서 '제2의 윤석열'로 떠오르기 시작했죠.
특히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당 인사들로부터 "대통령 국정 철학과 맞지 않으면 나가서 정치를 하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죠.
그 말이 씨가 될까요. 그래도 문제는 남습니다. 처음에 지적한 대로, 정치적 중립성 훼손과 더불어 3무(無) 때문인데요. ①약한 출마 명분 ②낮은 인지도 ③정치적 경험 부족입니다. 여기서 이 감사원장은 최 감사원장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 감사원장의 '독주'에도 그해 12월 국무총리로 발탁합니다. 고위공직자 부동산 전수조사로 대법원장이 옷을 벗고, 쌀 시장 개방 등에 따른 민심 혼란이 지속되자, 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로 '이회창 카드'를 꺼내든 거죠.
이 감사원장, 아니 이 국무총리는 빠르게 국정 장악에 들어갑니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얼굴마담이나 하면 큰 일 아니냐"(94년 신년 기자간담회)는 그의 말처럼, 이 총리 취임 이후 국정 운영의 무게추는 총리실로 빠르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역대 총리들이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면, 이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총리 본래의 영역을 다지며 내각의 위상과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입지를 넓혀 가려 했죠. 취임 초기 장관들에게 주문했던 "모두 실세가 돼서 일하자"는 당부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이 총리 본인도 '실세'가 되기 위해 앞장섭니다. 취임 100일에 맞춰 나온 '이 총리의 실세화 포석'이란 분석 기사를 보죠.
▲대통령과 별개의 국정운영 철학(국정의 기초는 법과 질서의 유지) 표명 ▲독자적인 정책 자문기구(국제화추진위원회 발족) 구성 ▲내각의 실질적 감독을 위한 정책암행감사반 조직(총리실 감사원) 등을 꾸렸다는데 이건 뭐 거의 대통령에 준하는, 적어도 대통령을 준비하는 노력으로도 보여지는데요.
그렇다고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죠. 취임 4개월 만에 이 총리는 전격 해임됩니다. 1994년 4월 23일 오후 4시 대통령에 대한 총리의 주례국정보고 자리에서였죠.
30분 만에 독대를 끝낸 YS는 10분 뒤 이영덕 통일부총리를 신임 총리에 내정하며 이 총리를 경질합니다. 경질부터 인선까지 불과 10분밖에 안 걸린 기록적인 인사였죠.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이 총리의 직접적 경질 이유는 '월권'이었습니다. 이 총리가 전날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회부 조정된 정책사항은 사전에 총리의 승인을 받으라'고 지시한 것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거죠. 외교안보정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이걸 '감히' 넘보려 하다니. YS 입장에선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도전"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은 이 총리가 취임한 때부터 누적돼 왔다고 보는 게 맞는데요. '실세 총리'를 구현하려는 이 총리의 업무 스타일이 청와대엔 눈엣가시였던 거죠.
그러나 여론은 '창'의 편이었습니다.
"그의 퇴장은 자기 소신을 굽혀 가면서까지 관직을 오래 차지하려고 연연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총리와 내각이 제자리와 제 일을 되찾으려고 애썼던 노력에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회창 전 총리의 소신, 1994년 4월 23일자 사설) 등등 일일이 다 옮기지 못하지만 완곡한 '창비어천가'가 한가득입니다.
YS에 대해선 "권위주의적"이란 비판의 화살이 쏠립니다. 이 전 총리의 강직성을 높이 살 땐 언제고, 몇 마디 했다고 내치느냐는 거죠.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요. 공직을 떠나자 이회창의 존재감은 폭발합니다. 공직 사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창앓이'를 하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이회창 모시기 경쟁에 열을 올리죠.
그럴수록 이 전 총리는 "정치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도, 재야에서 YS정권에 대해 "정치권력의 행태는 아직도 수직적, 수구적"이라거나 "개혁은 인치 아닌 법치로 해야 한다" 등등 신랄하게 비판하는 '강연정치'로 몸값을 키워나갑니다.
문민정부의 간판인 '개혁' 이미지를 선점하면서 말이죠. 국민적 지지도 역시 상당했고요. '이회창 현상'이란 말도 회자됐을 정도니까요.
마음이 급한 건 이제 YS의 몫이 됐습니다. 임기도 중반을 넘긴 데다 96년 총선을 앞두고 확실한 정치적 카드가 필요했던 YS는 직접 이 전 총리를 만나 설득에 나섭니다. 결국 96년 1월 신한국당은 이 전 총리 영입에 성공합니다. 당시 신한국당 입장을 공식화하며 이 전 총리가 밝힌 입당 이유에 대해 들어볼까요.
"정국안정을 바라는 김 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을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나로서 외면하기 힘들었다. 새롭고 깨끗한 정치, 법과 원칙이 통하는 정치, 예측가능한 정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면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이회창 전 총리, 신한국당 입당 기자회견
그렇게 비판해놓고, 야당이 아닌 여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죠.
"문민정부 출범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이 정권의 개혁이 성공하도록 동참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했다.(중략) 좀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결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회창 전 총리, 신한국당 입당 기자회견
"정치는 죽이기가 아니라 겨루기가 돼야 한다"던 이회창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은 이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그는 한나라당 총재를 거치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회창-최재형의 평행이론이 갖춰지려면 최 감사원장에겐 아직 많은 퍼즐이 남아 있겠죠? 이제 선택은 최 감사원장의 몫일 겁니다.
야권의 "환영 꽃다발"(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을 받아 들고 대선 열차에 올라타거나, "사회의 큰 어른"(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남거나. 어느 쪽이 됐든, 국민들은 최 감사원장이 빨리 입장을 표명해주길 기다릴 겁니다.
'현직' 감사원장이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정상적 모습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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