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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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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빌보드 핫100 연속 4주 1위를 하고 있는 BTS의 ‘Butter’가 “인기인가, 전략인가”라는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의 요지는 이 성과가 BTS가 같은 곡의 리믹스 버전들을 발매하는 ‘숨은 전략’이 열성적인 팬덤과 결합한 결과물이기에, 이 곡이 이룬 것은 대중적 성공이 아닌 전략의 성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는 다른 팝 가수들이 오랫동안 음반이나 음원에 세차권이나 콘돔까지도 묶어서 판매하는 ‘끼워 팔기’ 전략을 채택해 왔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는다. 2019년 어느 팝스타는 심지어 80여 종에 달하는 번들 판매로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고, 또 다른 팝 가수가 음원 스트리밍을 했다고 인증한 사람들에게 음료 쿠폰을 주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사례다.
물론 리믹스 버전 발매에도 전략적 측면이 존재하지만, 이는 끼워 팔기와 달리 아티스트들 사이의 협업의 결과물이거나 다양한 연출의 뮤직비디오 혹은 무대 등 새로운 콘텐츠로 이어진다. 라디오 방송 횟수가 중요한 빌보드 싱글 차트의 순위를 위해 음반사들이 라디오 방송국들에 불법적으로 금전을 제공하거나, 엄청난 자본을 들여 유튜브 조회수에 포함되는 유료 광고로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을 밀어주거나, 특정 아티스트 영상의 조회수를 깎아버리는 술수가 횡행하는 게 현재 미국 음악 산업의 현실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전혀 이례적이지도, 부당하지도 않은 리믹스 발매를 ‘숨은 전략’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태도는 미국 음악 시장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 그로 인해 실은 현실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전략 없는’ 순수한 차트라는 판타지에 대한 기이한 집착을 토대로 한다. ‘진짜 대중이 고른 곡’이라는 의미로 ‘대중픽’이라는 말이 사용된다는 것은 아티스트의 전략과 팬덤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차트가 존재한다는 기묘한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데, 이는 라디오 방송국과 같은 기존 음악 산업계, 매체 권력과 관련된 자본 등 기득권 세력의 게이트키핑과 힘의 논리로 유지되는 시스템에 의해 인기곡이 ‘만들어지던’ 역사를 표백함으로써 최근 계속해서 등장하는 ‘대중 vs 팬덤’이라는 부정확한 구분을 구성해낸다.
이러한 이분법은 대중과 팬덤이 다르다고 전제하는데, 여기서 다시금 대중은 순수하게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주체로, 팬덤은 그저 자신들이 지지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차트에 몰려들어 질서를 교란하고 ‘오염’시키는 존재로 표상된다. 그러나 팬덤은 아티스트의 음악과 활동에 마음이 움직여 팬이 된 ‘대중’들, 즉 보통 사람들이다. 이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 빌보드 차트 1위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차트 교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인기 차트는 순수했다고 사람들이 믿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 권력과 자본의 움직임 결과물을 ‘순수’하다고 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보도가 있기 전, 한 미국 언론은 BTS의 팬덤이 음원을 대량 구매함으로써 빌보드 차트를 교란했다고 보도했다가, 해당 기사가 오류투성이임이 밝혀져서 글쓴이가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논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주장을 정당한 논쟁인 양 부활시킴으로써 BTS에 대한 이런 식의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보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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