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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세상에 홀로 남은 불안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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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25일은 한국전쟁 발생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음악에서도 전쟁과 관계가 있는 조성이 있는데, 바로 C# 단조다. 파괴된 세상에 홀로 남은 불안과 절망이 느껴진다.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C# 단조의 곡을 들어보면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상처만 남기는 전쟁을 연상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었다. 연주자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불행이었는데,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작곡가들에게 왼손만으로도 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 라벨을 포함해 많은 작곡가들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만들어 그에게 헌정했다. 유명한 곡 중 하나는 코른골드의 왼손 협주곡이다. C# 단조로 쓰인 이 곡에는 전쟁의 허망함과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 담겨 있다.
장재진 기자(장): 2004~2005년 방송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기억하는가. 마지막 회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마지막으로 치렀던 노량해전이 다뤄졌다. 주인공 이순신(김명민 분)은 해전을 앞두고 드넓은 바다를 응시한다. 마치 이 전투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하다. 그때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데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중 2악장이다. 전통 사극이었는데도 클래식 음악은 이질감 없이 스며들었고, 전쟁의 비극성을 묘사하며 슬픔을 고조시켰다.
지: 한편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C# 단조를 두고 "비극적이지만 세련됐다"고 표현했다. 그래서였을까, 시대를 앞서간 음악을 만들었던 작곡가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 5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 희소한 조성을 사용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하며 폭발하는 분노를 보여준다.
장: 이 조성의 느와르적인 분위기와 세련미는 홍콩 영화와도 어울리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영화 '중경삼림'(1994)에서 주인공 페이(왕페이)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팝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을 들으며 일한다. '나뭇잎은 온통 갈색이고, 하늘은 잿빛'이라는 우중충한 가사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영화 분위기를 닮았다.
지: 작곡가들이 애용한 조성은 아니었지만 C# 단조에도 유명한 작품이 있다. 바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이다. 듣다 보면 "달빛이 비친 스위스 루체른 호수 위의 조각배"라는 비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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