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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됐어도 자유로운 K… 차별금지법 없는 한국은? [다시 본다,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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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일보>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카프카의 '소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유 없는 체포에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도 당혹감을 느낀다.
'소송'이 다음 버전들로 전개된다면 이 당혹감은 해소될지도 모른다.
첫째, 탐정물 버전. K는 누명을 쓰고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말에서는 자유의 몸이 된다. 천재 탐정이 등장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놀라운 능력으로 진범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둘째, 법정물 버전. 편집증이 있고 괴팍하지만 실력은 대단한 변호사의 활약으로 K가 풀려난다. 셋째, 감동적 휴먼드라마 버전. 판사도 변호사도 믿을 수 없었던 K는 피나는 노력으로 독학하여 자신을 변론하는 데 성공한다. K의 곁엔 그를 돕는 진실하면서도 재주 많은 이웃들이 있다 등등.
그러나 카프카는 이 중 어느 버전도 택하지 않는다. 그는 삶을 식초에 절여진 오이 피클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읽는 내내 난처함에 푹푹 절여지는 기분이랄까.
소설이 끝났는데 독자는 주인공의 죄목조차 알 수 없다. 더욱 기이한 것은 K가 체포되었으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점이다. K는 직접 변론을 시도하지만 무죄 입증을 위해 크게 애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가 도움을 받으러 찾아간 화가 티토렐리는 세 가지 해결책을 알려준다. 완전한 무죄방면, 표면상의 무죄방면, 판결의 무한한 연기. 이 중 K에게 가장 유리한 건 세 번째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규정 하나를 잘 지켜도 다른 규정들로 인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정상상태'를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무죄방면은 불가능하다.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는 시집을 출간하기 전, 멘토였던 한 남성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건 그녀의 주제넘은 짓에 대한 체포영장. "문학은 여자가 하는 일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여성의 맡은 바 소임을 열심히 할수록 문학을 위한 여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편지를 받고 브론테가 문학을 당장 관뒀다면 그녀는 혐의를 벗고 풀려났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표면상의 무죄방면이다. 시 쓰기를 멈추더라도, 그녀가 여성의 소임과 조금이라고 무관한 일을 시도하는 순간 다시 체포되어 유죄 여부를 따지는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K처럼 브론테도 세 번째 방식을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당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좋은 여자'가 되기 위해 시 쓰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자비로 시집을 냈으며, 그 이듬해에는 '제인 에어'를 발표했다. 그녀는 시대적으로 제한된 여성성 아래 유죄 혐의를 받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하면서 여성의 소임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당대의 판결을 끊임없이 지연시켰다.
'체포된 자유의 몸'이라는 '소송'의 설정은 야릇하지만 멋진 것이다. 체포되어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비난받아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자유롭다는 증거일 테니. 그 점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K보다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소송'에서 K는 직장에도 가고 성당에도 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수자들은 '소수성'이 드러나는 순간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엄청난 제약을 받는다. 카프카가 자신의 주인공을 위해 만든 최소한의 인간적 설정, 즉 체포되어도 최소한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어야 한다. 100년 전 체코의 한 소수민족 작가가 제시한 실존의 당연한 권리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보장받기가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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