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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도 다시 보인다... 한양도성 가이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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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잡아 멀리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귀하고 소중한 건 가까이에 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서울은 사실 전국에서 관광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그 중심에 덕수궁, 경희궁,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5대 고궁과 한양도성이 있다.
워낙 잘 알려진 시설이라 개인적으로 둘러봐도 좋지만, 전문 가이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뻔한 것도 다시 보인다. 정사와 정확한 사실을 기초로 유적의 역사·문화·건축·발굴·복원 등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인문공방의 고궁유람 프로그램(2만4,900원·1670-8208)을 이용해 경복궁과 한양도성 여행에 나섰다. 역사를 전공하고 10년간 2,000회가량 해설과 강연을 했다는 안지영 가이드와 동행했다.
1395년 창건된 경복궁은 조선 왕실의 으뜸 궁궐이다. 광화문, 흥례문을 지나 상상 속의 동물 천록이 지키는 돌다리(영제교)를 건너면 왕의 공간에 이른다. 즉위식이 행해졌던 근정문 앞뜰을 지나면 근정전이다. ‘부지런히 정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임금과 문무백관이 모여 조회와 의례를 치르는 공간이다. 양쪽에 줄지어 선 품계석이 이를 증명한다.
정면에서 봐도 웅장하지만 사진 촬영 명당은 구석의 회랑이다. 일부러 산과 하늘을 끌어다 놓은 듯 인왕산과 근정전, 백악산이 삼형제처럼 어우러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경치를 빌려오는 차경의 전형처럼 건물과 주변 지형이 조화롭다. 임금의 상징 붉은 어좌, 일월오봉도를 보고 고개를 들면 일곱 개 발가락의 황룡(칠조룡)이 나타난다. 중국 황실은 오조룡을 상징으로 쓴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복궁을 크게 재건했던 흥선대원군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왕과 신하가 나랏일을 논하고 공부했던 사정전을 지나면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이다.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강녕전 월대에서 야간 주연을 베풀었는데, 취중진담으로 신하들의 속마음을 슬쩍 떠보는 술자리 정치 현장이었다. 실제로 만취해서 세조에게 반말을 하는 바람에 파직된 집현전 학사 정인지, 무례를 범한 정난공신 양정이 참수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왕비의 공간 교태전은 건물보다 꽃 계단으로 된 후원의 아미산이 아름답다. 밖은 사신을 접견하고 잔치를 벌인, 공식 국빈 연회장 경회루다. 연산군 때 연못을 크게 확장해 뱃놀이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국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뽑아 운평과 흥청이라 하고 막대한 예산을 탕진하며 연회를 벌였다. 세간에서 ‘흥청과 놀다 나라가 망하겠다’라고 비꼬았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유래다. 사진 찍기 팁을 알려주는 것도 요즘 가이드의 역할이다. 일러준 대로 연못 왼쪽 모서리에서 수양버들이 늘어진 사이로 경회루를 찍었더니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경복궁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하차.
안지영 가이드와 동행한 두 번째 프로그램은 한양도성 낙산야행이다. 낙산 근처에서 10여 년 동안 살았던 주민으로서 매일 다녔던 길을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단다. 전체 18.6km, 현재 13.4km가 남아 있는 한양도성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혜화문~흥인지문 2.1km를 걷는다. 성벽을 보면 구간마다 돌의 크기가 다르다. 옹글옹글한 옥수수 알갱이 모양의 작은 성돌(세종)과 사각형의 큼지막한 성돌(숙종·순조)로 구분된다. 돌의 크기와 형태로 축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영어로 캐슬(Castle)이 아니라 시티월(Seoul City Wall)로 번역한다. 한양을 수도로 만들어주는 울타리라는 의미다. 옷으로 치면 전투복이 아니라 예복이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공격과 방어시설을 다수 갖춘 수원화성은 요새(Fortress)로 번역해 성격이 확연히 구분된다.
언덕을 오르면 낙산공원이다. 젊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핫플레이스'로 뜨고 난 후부터 '한국의 몽마르트르'로도 불린다. 정상(125m) 높이가 파리의 명소 몽마르트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학로의 뮤지컬 배우들이 영화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영상을 찍어서 SNS에 업로드 한 후에는 ‘낙산랜드’라는 별명도 얻었다. 환상적인 노을과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후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카페와 펍이 밀집된 이화마을과 흥인지문까지 걷는다. 혜화문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에서 가깝고, 종로 03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낙산공원까지 갈 수 있다.
혜화동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김태길가옥’이 있다. 한국 철학계의 선구적 업적을 남긴 김태길 교수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칠 당시 거주했던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외형을 그대로 간직한 집은 현재 종로구 제1호 한옥 게스트하우스(유진하우스·eugenehouse.modoo.at)로 운영 중이다. ‘ㅁ’자 형태의 가옥과 마당에서 옛 시절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잠시 철학자가 돼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투숙객을 위한 한양도성(와룡공원) 걷기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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