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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냐 기후냐… 美 바이든, 中 태양광 패널 수입금지 '딜레마'

입력
2021.06.22 20:00
수정
2021.06.22 20: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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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패널 소재 폴리실리콘 45%,?中 신장産
수입 금지하면 美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타격
미중 갈등 국면 속 바이든 행정부 '진퇴양난'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인근 14번 고속도로 옆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모하비=AF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인근 14번 고속도로 옆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모하비=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또다시 ‘중국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번엔 태양광 발전 패널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수입 금지 검토다. 중국 신장 지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ㆍ강제노동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 세계가 폴리실리콘 공급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자칫 수입 규제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親)환경 에너지 정책을 가로막는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권과 기후, 양대 정책 기조 사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진 꼴이다.

21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소식통 4명을 인용해 “백악관이 중국 신장에서 생산된 태양광 패널 소재 폴리실리콘에 대해 수입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의 인도보류명령(WRO)에 따라, 신장산(産) 폴리실리콘은 미국 입항 즉시 압류된다. 이미 면화와 토마토 가공품도 수입 금지 목록에 올라 있다. 폴리티코는 “신장 지역 전체가 아니라 특정 공장이나 기업을 제재하는 제한적 조치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신장 소수민족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집단 학살까지 했다면서 비난해 왔다. 인권을 공통분모로 동맹들을 규합해 중국 때리기에도 열을 올렸다. 이달 중순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중국 문제는 빠지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1월 27일 기후변화 대응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1월 27일 기후변화 대응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그러나 폴리실리콘 수입 금지가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탓이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베른로이터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 공급된 폴리실리콘 45%가 신장에서 생산됐다. 35%도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중국 외 국가에서 생산된 물량은 나머지 20%뿐이다. 신장산 수입이 금지되면 공급망 절반이 막히고, 태양광 패널 생산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다.

이 경우, ‘2035년 전력망 탄소배출 0(제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태양광 발전을 4배로 늘리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 찬 계획도 지연되거나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인권을 앞세워 중국을 제재하자니 기후 문제가 발목을 잡고, 기후 의제에 집중하면 의도치 않게 중국의 산업적 영향력 확대에 기여하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요 증가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부담도 커졌다.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한층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이 주요 공급처를 포기하기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존 마틴 미국태양광펀드(USF) 최고경영자(CEO)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비용도 2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태양광 산업 성장의 최대 변수로 중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과도한 의존, 미국과 유럽의 제재 움직임을 지적했다.

뾰족한 대책도 없다. 미국이 자국 내 제조 역량을 키우는 것뿐인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니코스 타포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산업 구조를 그렇게 빨리 재편할 순 없을 것”이라며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중국 의존성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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