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픽] 예상 못한 한미 '원전동맹' 날개인가 족쇄인가

입력
2021.06.21 16:00
24면
구독

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한미정상회담 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한미정상회담 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리는 국제 원자력안전, 핵 안보, 비확산에 대한 가장 높은 기준을 보장하는 가운데 원전 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 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약속했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성명 중 원전 관련 대목이다. 두 정상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예상은 많았다. 그러나 원전 동맹까지 맺게 될 것이란 관측은 없었다. 뜬금없는 원전 수출 협력 내용은 어떻게 성명에 들어가게 된 걸까.

사실상 탈원전 정책을 펴온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대면 자리에서 먼저 원전 수출 협력 이야기를 꺼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로가 바라는 바를 모두 꺼내 놓고 문안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을 걸 조율하는 양자 정상회담의 속성상 미국의 요청 사항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

정범진 경희대 교수

미국이 원전 협력을 들고나온 배경에 대해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원전 수출 시장에서도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이 급하게 한국을 선택했다는 시나리오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미국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원전 수출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통제하지 못하는 원자력 시설이 늘어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며 “특히 민주당은 핵확산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원전 건설 경험이 전무해 가격 경쟁력이 없고 원전 수출 계약을 따더라도 공사 지연에 따른 위약금이 두려운 상황”이라며 “선진국의 절반 가격으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을 적기에 건설한 한국의 가격 경쟁력과 시공 경험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4대 공약 중 하나가 기후변화 대응이란 점도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원전이 아니면 지구 온난화를 막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며 “미국 주도의 원전 공급망에 한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산업 먹거리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원천 기술력과 한국의 시공 노하우, 기자재 공급망이 결합하면 전 세계 원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기대도 없잖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개막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제11차 정상회의 참석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개막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제11차 정상회의 참석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미 원전 동맹은 사실상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마음대로 원전을 수출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못 박은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공동성명에 따라 앞으로 우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지 않는 나라엔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 한미가 원전 수출 대상을 IAEA 추가의정서 가입국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개발을 견제해야 하는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전은 도입하고 싶어 하면서도 IAEA 사찰은 꺼린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미신고시설 사찰을 강제한 추가의정서엔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이런 사우디에 한국이 원전을 독자적으로 수출해선 안 된다는 걸 미국이 우리에게 분명히 한 것이란 해석이다. 오히려 한국 원전 수출에 족쇄가 걸린 셈이다. 사우디가 발주한 120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1,200~1,600㎿ 원전 2기 건설 사업엔 현재 한국을 비롯,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경쟁하고 있다. 다만 체코는 이미 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한 만큼 체코로 원전을 수출하는 데엔 걸림돌이 안 될 전망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