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성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요?"

입력
2021.06.21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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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품은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일상적 차별 만연… 따돌림 등 무서워 침묵하기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한 국민이 지난 14일 1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법안 필요성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구도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제로 국내에서 차별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개신교계 보수적 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는 차별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 소수자 교인을 환대하는 교회를 이끌어 온 임보라 목사는 차별은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차별을 말할수록 공격당하는 현실이 두려워 피해자가 침묵할 뿐이다. 무엇보다 성 소수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 현장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교실에서 개인적 신념을 앞세워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일부 교사도 문제지만, 성 소수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현재의 교육 제도는 성 소수자에게 숨 쉴 공간을 주지 않는다. 성적 지향을 고민하는 학생이 안심하고 도움을 요청할 학교가 없다는 지적이다.

임보라 목사가 16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성 소수자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을 설명하고 있다. 작은 십자가에는 변희수 하사 등 최근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작은 깃발이 걸려 있다. 배우한 기자

임보라 목사가 16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성 소수자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을 설명하고 있다. 작은 십자가에는 변희수 하사 등 최근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작은 깃발이 걸려 있다. 배우한 기자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자각한 학생들에게 지금의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일부 교사들은 성 소수자가 교실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당사자 앞에서 막말을 쏟아낸다. 성 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사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16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만난 임 목사는 "학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우호적이지 않을 때, 학생들은 우울감과 고립감을 호소하다가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임 목사는 "어떤 사람들은 '성 소수자라고 학교를 못 다니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서 "교사가 '너 머리 짧은 거 보니 레즈비언이냐'라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 학교를 성 소수자 학생이 계속 다닐 수 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는 차별이 공적인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임 목사는 "사립학교가 강당에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가르치는 상황을 전달해 온 학생이 있었다"면서 학생이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대열을 이탈했을 때 학교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도리어 취조하듯 학생을 다그쳤고 부모에게도 '이 아이가 동성애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알렸다. 본인의 의사나 가족들의 지지 여부는 고려되지도 않았다. 임 목사는 "그 학생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면서 "교사가 먼저 학생에게 공감해 주고 올바로 대처했다면 청소년 성 소수자 위기지원 센터 '띵동' 같은 곳에 연계해 적절한 조치를 받도록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시정하는 법이다. 차별금지법 하나로 교육 현장을 비롯해 다양한 상황에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교육 현장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런 상황도 차별이란 것’을 국민이 발견하고 인식하기 시작해야 상황을 개선할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정신의학회나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결정한 상황에서 그러한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임 목사는 "성 소수자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설명하기만 해도 당장 반동성애 단체들에서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공격하는 상황"이라면서 "세상에 다양한 인간과 성의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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