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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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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가령 어떤 도시가 영화적 색채가 없다면 그건 꽤 슬픈 일입니다. 도시 문화의 일부는 바로 영화니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두기봉: 경계를 넘는 감독’(2013) 속 홍콩 작가 유내해 발언
2005년 홍콩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콘스탄틴’ 기자회견 취재와 배우 키아누 리브스 인터뷰를 위해서였습니다. 아시아 국가 기자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홍콩은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홍콩은 ‘콘스탄틴’ 관련 행사가 펼쳐지기에 알맞은 장소였던 거죠.
하지만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할리우드 영화와 관련한 아시아 지역 행사는 서울이나 도쿄,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홍콩은 더 이상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 대중문화의 허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 찬란히 빛났던 홍콩 영화는 1997년 이후 빛을 잃었습니다.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후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중국 당국의 통제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된 영향이 컸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이쪽에서☞ '홍콩 영화의 모든 것').
지난 11일 홍콩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라 강화된 새 영화 심의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표현이 담겼거나 영화 상영으로 국가안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는 상영될 수 없다고 합니다. 중국 당국의 심기에 거슬리는 영화는 홍콩 관객과 아예 만날 수 없도록 한 조치입니다. 앞서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지난 10일 새 심의제도가 중국 본토식이라며 급격히 침식되고 있는 홍콩 내 표현의 자유에 또 충격을 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리를 감상에 젖게 했던 홍콩 영화가 침체기 극복은커녕 빈사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홍콩 영화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영국 통치하에서 정치를 제외하고 어떤 소재로든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3~4주 만에 영화 1편을 만들어냈던 역동적인 면모도 홍콩 영화의 강점이었습니다.
홍콩 영화는 자신들이 맞게 될 위기를 이미 예견한 듯합니다. 1980년대 이후 많은 영화들이 홍콩의 암울한 미래를 반영했습니다. ‘영웅본색’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세계적인 홍콩 감독 왕가위 역시 홍콩과 홍콩 영화가 맞게 될 미래를 자신의 작품 속에 은유하기도 했습니다. ‘아비정전'(1990)과 ‘동사서독'(1994), ‘중경삼림'(1994), ‘해피 투게더'(1997) 등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돕니다. 정체성을 고민하다 고향을 등지게 되는 홍콩인들의 아픔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화양연화’(2000)는 홍콩 사람들의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글프고 아름다운 사랑 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장면들 속에는 정치적 코드가 심겨 있습니다. 홍콩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뜻)를 되돌아보며 홍콩과 홍콩 영화가 맞을 미래를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남녀 주인공 차우(왕조위)와 첸 부인(장만옥)은 이웃입니다. 같은 날 같은 층 아파트에 이사오면서 인연을 맺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배우자가 있고 세 들어 산다는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이웃끼리 마작을 하며 두 가족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어느 날 차우와 첸 부인은 아내와 남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챕니다. 차우의 아내와 첸 부인의 남편이 함께 자는 사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지요. 차우와 첸 부인은 정보를 교환하고, 분노를 함께 삭이다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첸 부인은 고통을 토로하며 차우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 의미심장합니다.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혼자라면 혼자만 잘하면 되지만 둘이 같이 살면 혼자 잘하는 걸로 부족해요.” 기혼자라면 흔히 할 수 있을 말 같아 보이지만 정치적 메타포로 읽힙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 홍콩과 중국의 관계 정립에 대한 홍콩인들의 착잡한 마음이 담겼다고 할까요. 첸 부인의 저 말에 차우는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내 잘못을 곱씹는 건 시간 낭비예요”라고 응답합니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개인의 체념처럼 들립니다.
차우와 첸 부인은 둘 다 좋아하는 무협소설을 매개로 더욱 가까워집니다. 차우가 무협소설 초고를 쓰면 첸 부인이 이를 먼저 읽고 고칠 곳을 지적합니다. 이웃들 눈치 때문에 두 사람은 호텔 방을 잡고선 작업을 함께 합니다. 그들이 머무는 방은 2046호입니다. 2046년은 중국과 홍콩이 일국양제를 마치고 홍콩의 자치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해입니다.
차우와 첸 부인은 2046호에서 애써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농밀한 감정을 나눕니다. 그들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2046년 홍콩의 자치가 끝나듯 시한부 행복일 뿐입니다. 첸 부인은 차우가 싱가포르로 떠난 후 2046호를 홀로 찾아 추억을 떠올리다 눈물을 흘립니다. 2046년 이후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화양연화를 되돌아보며 눈물짓게 될 거라는, 예언과도 같은 장면입니다(왕가위 감독은 2004년 ‘화양연화’의 속편 격인 ‘2046’을 선보입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62~66년입니다.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특히 1966년을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에선 문화대혁명이 시작됐고, 홍콩 역시 사회적 혼란을 앞두게 됩니다. 1967년 51명이 숨지는 홍콩 봉기가 일어납니다. 노동분규가 불씨가 돼 대형 시위로 번졌는데,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서 시위를 부추겼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이쪽에서☞ '홍콩은 벌써 2046').
차우는 1966년 홍콩 옛집을 들르게 됩니다. 첸 부인이 살았던 집의 주인은 “우리 딸이 홍콩은 어수선하다고… 미국에 가서 손자나 봐야지… 그때 (함께 살 때) 참 좋았어. 안 그래?”라고 차우에게 말합니다. 차우가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은 이민을 갔습니다. 새 주인은 차우에게 “지금 이 난리통(문화대혁명)에 갈 수 있으면 가야죠”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홍콩국가보안법 제정으로 홍콩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마치 20년 뒤 미래를 내다보는 듯합니다.
영화는 명시하지 않지만 차우와 첸 부인은 중국 상하이에서 막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왕가위 감독 가족 역시 1963년 중국 공산당의 억압적 정책을 피해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넘어왔습니다. 홍콩 토박이라고 할 수 없는 감독은 역시 홍콩 토박이가 아닌 차우와 첸 부인을 통해 홍콩의 화양연화를 그립니다. 중국 반환 이전 홍콩 그 자체에 대한 강한 연정이 느껴집니다. 영화 종반부에는 이런 자막이 나옵니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그때의 모든 것은 전부 사라졌다.”
영화 제목은 중국 가수 저우쉬안(1920~1957)의 노래 ‘화양연화’에서 따왔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이 노래가 흐르는데 가사만으로도 지금 홍콩 사람들과, 홍콩 영화를 좋아했던 영화 팬들은 울컥할 듯합니다.
“꽃다운 시절/ 달 같던 생기/ 얼음과 눈 같던 총기/ 아름답던 삶/ 다정하던 그대/ 원만하던 가정/ 갑자기 이 외딴 섬이/ 자욱한 안개와 구름으로 덮였네/ 사랑스러운 조국…”
※ 지난 금요일 오전 한국일보 뉴스레터로 발송된 내용입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을 좀 더 빨리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구독 신청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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