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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에 한국 참여 반대한 日, 30년전 러시아 G7 참여 때도 '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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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명실상부하게 G8 국가로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는 국제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14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한 발언입니다.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이끄는 G7 회원국들과 우리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상과 국격이 상승했다는 겁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유럽 순방에 동행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한국이) 국제사회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위치에서, 규칙을 만드는 데 동참하는 위치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자평했습니다. G8 국가의 입지를 다졌다는 겁니다.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지난해 G7 의장국이었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G7에 한국과 러시아, 인도, 호주 4개국을 참여시켜 G11으로 확대하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도 "기꺼이 응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죠. G7 회원국인, 가깝지만 먼 이웃 일본이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회원국 간 뜻이 모아지지 않아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랐던 G8에 포함됐던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인데요, 예전 기사들을 훑어보니 일본은 러시아의 참여도 대놓고 반대했었네요. 어찌된 일인지 30년 전 흔적부터 함께 찾아가보겠습니다.
G7은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세계 경제 당면 과제의 해결책을 논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어려움을 겪자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대책 마련을 위해 모였고, 75년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각국 원수가 참여하는 G5 정상회의로 격상합니다. 이후 이탈리아(75년)와 캐나다(76년)가 참여하면서 G7체제가 갖춰졌죠.
그런데 베를린 장벽 붕괴(89년), 독일 통일(90년), 옛 소련 해체(91년) 등으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G7에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G7은 옛 소련의 경제 개혁을 지원하고 냉전 이후 각 나라 사이에서 분출하는 경제적 이견을 해소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련의 참여를 논의하기 시작했죠.
1991년 7월 런던에서 G7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 영국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정식으로 초대합니다. 물론 G7을 주도하는 미국을 비롯해 다른 회원국과 사전에 의견을 조율한 것이죠.
당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G7 정상회담에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참석해, 소련의 경제 개혁안을 설명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경우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힙니다. 소련도 서방에 원조 요청은 물론 자국의 개혁을 위해 세계 경제에 편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그해 G7 정상회담은 세계가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게 된 역사적 전환기에 열립니다.
초청국(옵서버)으로 참석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티(개방) 정책을 기반으로 한 경제개혁 진로를 설명하고, 서방의 개혁 지원 선언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회원 자격 등을 얻어 냅니다.
그러나 G7의 러시아 초청 방침에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공식적으로 참석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며 반대했었습니다. 다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초청인사 자격으로 참석, 연설하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밝힙니다. 일본의 딴지 걸기가 시작됐네요.
일본이 러시아의 G7 참여에 반대한 주요 이유는 바로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영유권 분쟁으로 오랫동안 갈등이 지속돼 왔기 때문입니다.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동북쪽의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입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1875년 조약을 통해 이 섬들과 북쿠릴 남단 섬까지 포함해 일본령으로, 공동 관리하던 사할린을 러시아령으로 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사할린 남부 지역을 쟁취했지만, 러시아는 1945년 얄타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일본이 점령한 사할린 남부 지역과 쿠릴열도 양도를 보장받습니다.
1951년 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또는 대일강화조약)에 따라 쿠릴열도 전체가 소련에 귀속돼 실효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포기한 쿠릴열도 권리에 남쿠릴 열도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인 92년에도 해체된 소련의 지위를 승계한 러시아에 G7 정상회담 멤버로 가입시키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일·러 사이에는 북방영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평화조약도 맺어지지 않았다"며 "선진 7개국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가 가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힙니다.
일본은 쿠릴열도(북방 4개 도서)를 반환하기 전에는 러시아가 바라는 경제 원조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하네요. 또 영국, 독일 등 다른 회원국과 접촉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92년 G7 정상회담에서는 '정치선언'에 북방영토 문제를 집어넣는 데 성공합니다.
러시아도 가만 있지 않습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G7 수뇌들과 접촉, 93년 일본에서 개최될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G7 각료회의에서 일본이 대러시아 지원 방안(343억 달러 규모)을 받아들이면서도 영토 문제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합니다.
일본의 반발에도 러시아는 꾸준히 G7 회의에 참석하면서 존재감을 높여갑니다. 초청국으로서 G7의 일부 토의에 초대받았던 러시아는 94년부터는 정치분과 토의에 공식 참석하기 시작합니다.
97년에는 의장국으로서 당시 정상회의를 주최했던 미국이 공식 명칭을 'G8'으로 바꿉니다. 여전히 초청국 지위는 유지되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제 목소리를 낼 정도로 강한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한 겁니다.
반면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어 마지막 날의 핵심적인 경제회담에는 러시아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회담은 정치적으로 'G8 회담', 경제적으로는 'G7 회담'이었죠.
98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G7 회의에는 러시아가 전면 참석합니다. G7이 러시아의 전면 참가를 인정해 G8 정상회담으로 공식 확대돼 열리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러시아가 G7과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지적합니다.
98년 당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G7과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어서였습니다. 실제로 G7 정상은 G8 회담이 열리기 전에 따로 만나 러시아를 빼고 의견을 조율했다니 기존 회원국들과 동등한 지위라고 하긴 어렵겠네요.
다만 G8 정상회담에서는 참가국 모두가 동의한 내용에 한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반대하는 사안은 공동성명에서 발표할 수 없었답니다.
일본은 이처럼 G7 회원국 사이에서 높아진 러시아의 위상이 달가울 리 없겠죠. 일본은 북방영토 문제가 앞으로 더욱 꼬일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서의 입지가 한층 고립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경제토의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하네요.
또 당시 일본 언론은 "G8 정상회담이 주요 현안인 인도 핵실험과 인도네시아 사태 등 아시아 관련 문제에 아무런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G8 무용론'을 내세우는 기사를 쏟아냅니다.
일본의 러시아 견제 노력은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서방 선진 7개국 및 러시아(G8)는 2002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 정식 회원국 지위 부여하고, 2006년 러시아에서 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합니다.
러시아가 같은 해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조건부로 참여키로 한 데 이어 자본주의 부국의 배타적 클럽에도 정식 가입함으로써 서방 진영의 지도적 국가로서 명실상부한 지위를 확보한 셈입니다.
당시 의장국이었던 캐나다는 "러시아도 우리 모두가 처한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보여줬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 후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눈부신 경제 및 민주적 변화를 반영했다"고 밝힙니다.
정치 대화에 참석할 뿐 경제 관련 회의에서는 빠져야 했던 러시아는 정식회원 지위가 발효된 2003년부터 경제 대화에도 참여합니다. G8이 비로소 선진국 정상 간 완전한 대화 체제가 갖춰진 겁니다.
이 같은 결정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당시 외교 소식통들은 "①핵감축 협정 체결 ②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폐기 ③대 테러전쟁에 협력한 데 대해 미국이 부여한 반대 급부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때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G8에서 퇴출당합니다.
옛 소련 내 러시아공화국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의 결정에 따라 연방 내 우크라이나공화국 소유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러시아계가 주류인 크림반도의 자치의회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 분리 독립을 결의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귀속을 결정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자치정부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합병을 승인합니다.
서쪽의 유럽과 러시아의 가운데에 끼어 있어 지정학적으로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자 미국과 유럽은 강력 반발합니다.
결국 원조 G7 국가 정상들은 만장일치로 G8에서 러시아를 제명시킵니다. 러시아도 "우리는 G8 체제에 전혀 연연하지 않으며 G8 회의가 안 열려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쿨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G8 정상회담도 취소됩니다. 대신 G7 정상들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따로 정상회의를 엽니다. G8 체제가 16년 만에 G7으로 바뀐 겁니다. G7 정상회의가 비회원국에서 열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네요.
일본 아베 정권도 러시아를 견제하는 다른 회원국들과 뜻을 함께했지만, 다소 결이 달랐다고 합니다.
아베 총리는 집권 후 1년 남짓 기간 쿠릴열도 반환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 푸틴과 다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지며 협상을 벌여왔던 터라, 푸틴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지도력이 저하될 경우 협상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네요.
여기까지 살펴보니 어떠세요.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지난 1년 6개월간 안정적으로 관리해 온 덕분에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주요 선진국들이 K방역을 부러워 할 정도니까요. 이를 계기로 그 위상에 걸맞은 'G8' 지위를 얻는다면 좋겠지만, 이번 G7 회의에서 약식 정상회담을 취소한 일본이 또 심술을 부리지 않을까요?
러시아에도 딴지를 걸었던 일본의 전례를 보면 G8이든, 미국이 제안한 G11이든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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