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멜론?"...백화점 포장은 무려 5겹, 저탄소 생산 무색

입력
2021.06.23 04:30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13>친환경 농산물 포장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백화점에서 유통되고 있는 친환경 인증 농작물 포장 모습. 왼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현대백화점의 '저탄소 신고배'와 '무농약 캠벨포도', 신세계백화점의 '저탄소 하미과 멜론', 롯데백화점의 '유기농 바나나'와 '무농약 파프리카'다. 낱개 하나의 포장에 과다한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스티로폼 등이 사용됐다. 한진탁 인턴기자

모든 '생산'은 온실가스 배출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공산품이 아닌 농업 부문도 마찬가지. 한국은 농업 부문에서만 매년 약 2,040만 톤(전체의 약 2.4%)의 탄소를 배출한다. 비료·농약·농자재를 만들고 폐기할 때나 온풍기·경운기 등 기계를 작동시킬 때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가들에 '저탄소 인증'을 부여하는 방식 등으로 온실가스 저감책을 마련해왔고, 실제 백화점 등에서는 이런 '고급 농산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포장이다. '고급=과대포장' 등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유통가의 관성 때문에 저탄소 농법으로 생산된 배에는 하나하나 플라스틱 용기가 씌워져 있다. 이미 스티로폼 완충재로 둘러싼 배를 플라스틱으로 다시 한번 감싸는 식이다. 또 '저탄소 멜론' 1개를 포장하기 위해 종이·스티로폼·비닐을 5겹이나 사용했다.

포장재를 만들면서 배출한 탄소가 농산물 재배에서 아낀 탄소를 상쇄하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실제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저탄소 배의 탄소 감축량과 포장의 탄소 배출량을 비교해본 결과, 배출량이 감축량의 최소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농가 노력의 3분의 1 이상이 포장 탓에 사라지는 셈이다.

백화점은 "상품 품질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과대포장 이유를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농산물 품질과 포장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백화점의 저탄소 농산물 포장 실태를 분석했다.


배 낱개마다 플라스틱 포장, 저탄소 재배 노력 헛되게

백화점에서 유통되고 있는 농산물의 포장을 제거해 진열했다. 농산물과 포장 부피가 1 대 1로 보일 정도로 포장이 과도하다. 한진탁 인턴기자

현대백화점ㆍ롯데백화점ㆍ신세계백화점 본점 농산물 코너에서 무농약ㆍ유기농ㆍ저탄소 작물 5개를 골랐다. 현대백화점의 '저탄소 신고배'와 '무농약 캠벨포도', 신세계백화점의 '저탄소 하미과 멜론', 롯데백화점의 '유기농 바나나'와 '무농약 파프리카'를 택했다.

이들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됐다. 농림부가 인증하는 친환경 농산물은 △무농약 △유기농 △GAP △저탄소 인증 농산물로 구분되는데, 이 중 무농약ㆍ유기농ㆍ저탄소 농산물이 탄소 저감 효과가 있다. 무농약ㆍ유기농은 일반 작물에 비해 약 10~70%의 탄소를 줄이며(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저탄소 농산물은 약 7만7,000톤의 탄소를 감축했다(농림부).

저탄소 농법은 보온커튼을 활용해 비닐하우스 난방에너지를 아끼거나, 풋거름 작물(콩·볏과 작물)을 기른 뒤 갈아엎음으로써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식이다. 농가들은 농장 환경에 따라 이 같은 저탄소농업 기술 몇가지를 섞어 사용한다.

GAP는 오염물질 잔류 여부 등을 기준 삼는 인증으로 온실가스 감축과는 큰 관련이 없다.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저탄소 하미과 멜론. 초록색 스티로폼 완충재로 감싼 멜론을 흰색 스티로폼 두 장으로 받치고 종이 상자에 넣은 뒤 랩으로 전체를 감쌌다. 5겹이다. 한진탁 인턴기자

가장 많은 포장재를 사용한 농산물은 신세계백화점의 하미과 멜론이었다. 멜론 1개를 포장하기 위해 종이 상자 1개, 스티로폼 완충재 3장, 비닐랩까지 5겹의 포장재를 사용했다. 특히 스티로폼은 흰색만 재활용이 되기 때문에 멜론을 감싼 녹색 완충재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비슷한 저탄소 하미과 멜론을 판매하는 롯데백화점이 하얀색 스티로폼 1장으로 포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저탄소 신고배(왼쪽 사진)와 무농약 캠벨포도(오른쪽). 각각 스티로폼 완충재, 비닐(플라스틱 필름)로 감싸고 이를 다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한진탁 인턴기자

현대백화점은 저탄소 신고배 1개를 스티로폼 완충재와 PET 재질 상자로 포장했다. 현대백화점 내에서 일반 신고배는 종이 받침에 얇은 랩 하나만 씌워 판매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또 무농약 캠벨포도는 비닐에 싸여 있는 것을 PET 재질 상자에 한 번 더 담았다. 스티로폼과 비닐은 플라스틱 재질이기 때문에 각각 2겹씩의 플라스틱 포장이 이뤄진 것이다.


롯데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바나나와 무농약 파프리카. 한진탁 인턴기자

롯데백화점은 유기농 바나나 4개를 PET 재질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고, 무농약 파프리카 1개를 비닐에 담아 판매했다. 파프리카는 작은 낱개가 모두 비닐로 포장돼 있어서, 여러 개를 구매하면 비닐도 여러 장 딸려 온다. 파프리카를 포장 없이 진열하고 소비자가 여러 개를 골라 담는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는데도, 낱개 포장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 저탄소 신고배를 토대로 생산 과정의 탄소 감축량, 포장재의 탄소 배출량을 비교해봤다. 포장이 투명 PET 용기로 이뤄지는 등 구성이 단순해 탄소 배출량 계산이 용이했다. 배의 탄소 감축량은 농림부로부터 해당 농가의 측정값을 제공받아 계산했다. PET 용기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이 제공하는 배출계수를 참고했다.


현대백화점의 저탄소 신고배와 이 배를 포장한 플라스틱 등의 무게를 비교해 봤다. 한진탁 인턴기자

901g인 이 배는 탄소를 일반 농법 배출량의 절반인 약 310gCO₂를 줄였다. 그런데 38g인 PET 재질의 포장재를 만들며 배출한 탄소는 약 90gCO₂. 포장의 배출량이 재배 감축량의 약 3분의 1이나 차지했다.

이 역시 PET 원료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이 원료를 용기로 만들며 배출한 탄소까지 감안하면 감축량의 절반까지 배출량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백화점 "상품 품질 위해"… 전문가들 "효과 없어"

과대 포장된 저탄소 농산물들은 다른 곳에서는 간단한 포장만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왼쪽부터 롯데백화점의 저탄소 하미과 멜론, 현대백화점의 파프리카와 저탄소 신고배가 간소하게 포장돼 있거나 아예 포장 없이 고를 수 있게 돼 있다. 과대포장을 한 백화점들은 "상품 품질을 위해 포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유통업체에 따라 같은 품종도 포장을 달리한다. 김현종 기자

백화점은 이런 포장의 이유로 상품 품질, 소포장 트렌드, 고급화 전략을 꼽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포도 알맹이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로 포장을 한 뒤, 유통 과정에서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을 둘렀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배나 사과는 유통 과정에서 긁혀 스크래치가 나거나 멍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산지에서부터 개별 소포장을 해 보낸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1인 가구가 늘다보니 소포장을 하고 있다"며 "백화점 특성상 일반 마트처럼 상자·매대에 두고 판매하는 것을 꺼리는 소비자들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생이나 품질 문제와 포장의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성현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장은 "외국이나 일반 마트에서도 박스 째 포장된 과일을 일반 매대에 늘어놓고 판매한다"며 "과일의 손상·위생·품질과 플라스틱 소포장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백화점 내에서도 같은 품종의 과일을 간단히 포장하는 경우도 있어서 품질 보존을 위해 포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농산물 포장 규제 손 못 대는 정부... "저탄소 생산 취지 훼손"

2018년 한 청과물 시장에서 상인들이 상자째 진열돼 있는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농림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농림부 관계자는 "상품 생산업체가 포장과 유통까지 도맡는 제조업체와 달리, 농산물은 농가와 포장·유통업체가 나뉘어 있는 구조"라며 "친환경 인증은 농가를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인증 기준에 운송·포장을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직거래·도매시장·백화점 등 유통 경로가 복잡하고 통계적으로 파악된 바가 없어서 일괄적으로 바람직한 포장 형태를 제시하기 어렵다"며 "유통·판매업체에 별도의 인센티브 없이 포장 관련 규제를 할 경우 극단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아예 판매하지 않겠다'고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부의 정책 중에 제품과 포장 부피 차이를 규제하는 '포장공간비율' 제도가 있지만 농산물에 대해서는 선물세트 같은 종합제품에만 적용된다.

플라스틱 사용량에 따라 생산자에게 분담금을 부여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도 비켜가기는 마찬가지. 플라스틱 포장 분담금은 1kg당 150원꼴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포장업체를 대상으로 해서 백화점은 제외된다. 또 '매출 10억·포장 4톤 이상'이어야 분담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위의 5개 농산물의 포장업체 중 신고배(원농산영농조합법인) 포장업체만 부과대상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매출과 포장량 기준을 초과하고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업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해부터 기준 미만 업체들도 매출과 포장출고량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탄소 농업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백화점 등 유통·판매업체가 적극적으로 포장을 감축하는 한편, 정부도 대안을 제시하고 업계를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탄소 인증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길재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농업환경에너지팀장은 "농림부의 인증 정책에서 포장과 관련한 부분이 빠진 점은 분명한 한계점"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예 손을 놓기보단 대안을 마련하고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유진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농산물 자체의 탄소저감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포장 과다가 있다고 해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면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소비를 위해서 과대포장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탄소 농업을 하는 농부들 사이에서도 "어렵게 탄소를 저감해도 유통업체나 산업 부문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노력하는 유통업체도 있다. 이마트는 지난 1일부터 농산물 플라스틱 포장에 재생 플라스틱을 50%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새 플라스틱으로만 만들던 용기를 재생품과 신품을 50%씩 섞어 만들겠다는 취지다. 재생 플라스틱은 신규 플라스틱보다 이산화탄소를 약 79%까지 낮게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비용도 신규 플라스틱만 쓸 때보다 약 10% 정도 적다.

이번 취재 대상이 된 3사 백화점 관계자들도 모두 "플라스틱 포장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재생 플라스틱이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등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박고은 PD
최서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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