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와 ‘만에 하나’ 사이

입력
2021.06.18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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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낮의 더위는 매서웠다. 점심 전에 마늘을 다 뽑아내느라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피부까지 벌겋게 익어버린 우리는 해가 순해지는 저녁나절까지만이라도 안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우리를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던 늙은 부모가 더 지체할 수는 없다며 기어코 밖으로 나간 건 거실 시곗바늘이 오후 4시를 가리킬 때였다. 땡볕의 기세는 완강했다. 밭에 널어둔 마늘 뿌리의 흙을 털고 마당으로 옮겨서 한 접씩 묶어 갈무리하는 작업을 오늘 안에 끝낼 수 없다며 서두르는 부모를 장성한 아들이 막아섰다. “아이고, 아버지. 지금 나가시면 탈진해요. 두 시간만 기다리면 한낮 더위 수그러들 거고, 내일 오전에 끝마쳐도 아무 문제 없는 일인데 왜 자꾸 고집을 부리세요.” “만에 하나, 밤에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 대꾸하는 엄마를 따라나서려는데 동생이 내 팔목을 잡고 애원했다. “누나, 제발 엄마 아버지한테 젊은 사람들 얘기 좀 들으시라고 말씀드려. 일기예보 확인했는데, 오늘 밤에 비 안 와.”

허벅지 근육이 뻐근하고 졸음까지 세차게 몰려왔지만, 나는 부모님 뒤로 찰싹 붙었다. ‘만에 하나’ 진짜 비가 온다면 4개월간 땅속에서 몸집을 불려온 저 탐스러운 마늘에, 올겨울 우리 집 김장에 치명타가 될 터였다. 눈을 부라리는 동생에게 나는 속삭였다. “노인들 조바심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입 다물고 조용히 따라와.” 외바퀴손수레, 일명 똥차를 몰고 마늘밭으로 내달리는 딸의 뒷모습을 아버지가 흡족한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다는 걸 굳이 돌아다보지 않아도 나는 다 알았다. 그렇게 어른들 마음 편하시게, 괜스레 조바심내지 않으시게 처신하려고 애쓴 지 20년쯤 지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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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럴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30대 청춘에게는 여전히, 어른들의 염려가 적잖은 인내심과 예절을 요구하는 시대착오적 간섭이었다. 늦은 밤 혼자 다니지 마라, 건강 챙겨라, 과음하지 마라, 말인즉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사나운 세상을 못 믿는 거다…. 심신이 지친 어느 날, 오랜만에 과음했고 자정 넘은 시간에 골목을 혼자 걸었다. 아뿔싸! 마주 오던 남성이 개자식으로 돌변하던 순간, 동물적인 생존본능이 솟구친 나는 개자식의 가랑이를 정통으로 걷어차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잠든 동네 사람들을 불러냈다. 하지만 다이내믹했던 그 밤의 무용담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 노출된 딸을 또 걱정할 게 뻔해서, ‘만에 하나’ 자식에게 닥칠지 모를 불상사를 염려하는 절절한 마음을 ‘설마하니 나에게’로 치부해온 게 미안해서. 다만 그 일 이후 부모님의 조바심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어린 조카들까지 달라붙어 마늘 작업을 끝내고 저녁을 먹는데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큰소리 탕탕 치던 동생이 웅얼거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일기예보는 왜 틀려서 사람 무안하게 만들어.” 조용히 식사만 하는 부모님 대신 내가 나섰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거 아녀.” 가만 보면 매사가 다 그런 듯싶다. 얼마나 많은 ‘만에 하나’가 우리를 가두고, 또 얼마나 많은 ‘설마’가 사람을 잡는지. 두 관용어 사이에서 길을 찾는 건 늘 힘들지만, 그 오후 내가 줄을 제대로 섰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티 없이 개운한 기분, 그걸로 다 좋은 저녁이었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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