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매너"라고? SBS에 제대로 뿔난 인도네시아

입력
2021.06.17 21:34
수정
2021.06.18 16:4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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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다룬 드라마 '라켓소년단'?
인도네시아 비하·모욕성 대사 문제 삼아?
항의 빗발치자 SBS 댓글에 사과문 올려?
?"댓글 사과, 매너 없다" 분노 더 키워

SBS 드라마 공식 SNS 계정에 오른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의 사과 요구. SNS 캡처

SBS 드라마 공식 SNS 계정에 오른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의 사과 요구. SNS 캡처

인도네시아가 우리나라 방송사에 단단히 뿔났다. SBS 드라마에 인도네시아 국민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대사와 설정이 여럿 등장한 데다, 뒤늦은 사과마저 무성의하다는 것이다.

17일 현지 매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따르면 14일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라켓소년단' 5회가 도마에 올랐다. 주인공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선수와 경기를 치르는 설정의 몇몇 장면에서 배드민턴 코치들이 나눈 대화가 문제였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질 나쁜 숙소와 경기장을 배정하고, 인도네시아 관중들의 태도도 무례하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인도네시아를 비하하는 듯한 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 '라켓소년단' 5회 장면. 화면 캡처

인도네시아를 비하하는 듯한 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 '라켓소년단' 5회 장면. 화면 캡처

"정말 개매너", "숙소 컨디션도 엉망이다. 지들은 돔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우리는 에어컨도 안 나오는 다 낡아 빠진 경기장에서 연습하라고 한다", "공격 실패 때 환호는 개매너 아닌가요", "매너가 있으면 야유를 하겠냐" 등이다. 여기에 주인공이 우승하자 인도네시아 관중들이 야유하는 장면도 등장했다.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은 "국가에 대한 모욕"이라며 발끈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배드민턴을 국기(國技)로 여길 만큼 자부심이 강하다.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은 SBS드라마 공식 SNS 계정에 영어로 항의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현재 5만 개 가까이 항의 댓글이 달렸다. "우리나라를 경멸했다", "인도네시아에 사과하라", "SBS에 실망했다" 등이다. 어떤 이는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팬들의 응원을 받은 이용대 선수에게 직접 (인도네시아 관객이 어떤지) 물어보라"고 적었고, 어떤 이는 "드라마 내용이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는데, 그 장면 때문에 정말 실망했다"고 썼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까지 나섰다. 한국문화원을 통해 SBS에 현지 여론 동향을 전하고 적절한 조치를 요청한 것이다. 결국 이날 오후 SBS는 드라마 SNS 계정 댓글에 인도네시아어로 사과문을 올렸다. "특정 국가, 선수, 관중(관객)의 품위를 떨어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한 몇몇 장면에 대해 사과합니다."

SBS가 드라마 SNS 댓글에 올린 인도네시아어 사과문. 관중(관객)을 뜻하는 penonton을 penonon으로 잘못 쓰기도 했다. SNS 캡처

SBS가 드라마 SNS 댓글에 올린 인도네시아어 사과문. 관중(관객)을 뜻하는 penonton을 penonon으로 잘못 쓰기도 했다. SNS 캡처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돋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SBS가 사과문을 따로 노출시키거나 게시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는 SNS 댓글에 올렸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은 사과의 진실성을 의심하면서 사과문을 공식적으로 따로 게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SBS 불매 운동을 거론하거나 더 이상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겠다는 네티즌도 있다.

한 네티즌은 "드라마에서 매너 운운하던데 (SBS의 사과 방식이) 정말 매너 없는 사과"라고 꼬집었다. 다른 네티즌은 "한국의 주요 방송국 중 하나가 댓글로 사과한 게 실화냐? 진심으로, 제대로 사과하라"고 적었다. "문제 장면을 삭제하고 출연진 모두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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