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스타 아나운서 프리 진출은 수익률 높이는 '당근' 경로

입력
2021.06.20 12:00

편집자주


배성재, 장예원, 도경완

배성재, 장예원, 도경완


방송사 출입 기자 시절, 봄 개편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이뤄진 게 신입 아나운서 라운드 인터뷰였다. 새내기 아나운서들을 만나 합격 소감과 첫 직장 에피소드, 앞으로의 포부 등을 듣는 자리였다.

홍보 팀장과 인사 고과를 담당하는 근엄한 표정의 부장님들이 동석하는 자리인 만큼 군기 바짝 든 '미생' 아나운서들의 앳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파 아나운서가 된다는 건 요즘도 가문의 영광이자 의사고시 부럽지 않은 신분 상승 루트다. 높은 연봉과 지성을 갖춘 선남선녀가 됐다는 자기효능감, 여기에 좁은 문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각종 레드카펫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크기로 웃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면접 때부터 선배들에게 눈도장 받은 몇몇 신입들은 '생생 정보통'이나 '섹션 TV 연예 통신' 같은 프로에 리포터로 투입돼 얼굴을 알리는데 이 과정에서 생방송 울렁증이나 인성 문제가 발견되면 다른 동기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게 된다.

이 중 군계일학 능력자는 보도국으로 파견돼 앵커가 되지만 대다수는 야근과 당직을 서며 샐러리맨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심야 라디오 DJ로 발탁되는 것도 험난한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차지다.

그래서 아무리 궁금해도 "아나운서 됐다는데 그 집 아들은 왜 TV에 안 나오냐" 같은 질문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이처럼 기회가 생명인 만큼 다른 어느 곳보다 연줄과 배경, 처세와 뒷담화가 난무하는 곳이 바로 아나운서실이다.

과거엔 타사 아나운서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무한 경쟁의 피로감 때문일까. 10여 년 전부턴 장벽을 허물고 알음알음 만나 친분을 쌓고 정보 교환도 하며 이 과정에서 남녀끼리 눈도 맞는다.

문제는 회사가 공들여 키워놓은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어느 시기가 되면 너나없이 사직서를 낸다는 사실이다. 김성주 전현무에 이어 올 초 배성재 장예원 도경완이 잇따라 프리를 선언하며 공중파의 자존심에 금이 쩍쩍 가고 있다.

초기엔 퇴사한 아나운서에게 2년 동안 친정 방송국 출연을 금하며 추가 이탈자 단속에 나섰지만, 다매체 다채널 환경으로 약발이 사라졌다. 배성재가 SBS 퇴사 후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와 축구 중계를 계속하는 걸 보면 말이다.

퇴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조직에 남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득이 되기만 한 걸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보상에 대한 가격 불균형이다. 아무리 에이스라도 조직에 있는 한 평균 연봉 1억 원의 급여 생활자에 만족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프로에 출연해도 몇만 원의 시간 외 수당만 붙을 뿐이다.

엄연히 선후배가 존재하는 직장인 만큼 야근, 당직도 서야 하고 겸업 금지 규정에 따라 공익 광고, 외부 행사도 일일이 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예능 프로 1회 출연료가 월급보다 많은 김성주 전현무를 보며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는 게 당연하며 '네가 뭐가 부족한데'라는 주위의 유혹도 사직서를 클릭하게 만드는 요소다. 여기에 카카오TV와 디즈니플러스 등 플랫폼 증가도 이들의 사직 욕구에 기름을 붓는다.

물론 김정근처럼 현실의 벽에 부닥쳐 다시 MBC로 돌아간 사례도 있지만 탬버린을 흔들 정도의 예능감을 갖춘 아나운서라면 문제 될 게 없다.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은 주식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을 높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재무 행동 패턴이다. ROE란 당기순이익을 자기 자본으로 나눈 값인데 투입한 자본으로 연간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내는지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다.

예를 들어 ROE가 20%라면 주주가 맡긴 자산으로 매년 20%의 수익률을 올린다고 보면 된다. ROE는 높을수록 좋은데 그러려면 수익률이 높아지거나 자기자본 회전율이 높아져야 한다. 즉 ROE가 높다는 건 자기자본에 비해 그만큼 순이익을 많이 내는 효율적인 영업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아나운서들의 경우 투입되는 프로그램 수와 시청률이 동반 상승할 때 ROE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간과하면 안 되는 함정이 하나 있다. 무조건 높은 ROE 기업이라고 해서 투자 대상으로 최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네 떡볶이 가게나 트럭 과일 장수는 ROE가 100%에 육박하지만 이런 업종의 전망이 항상 밝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ROE는 수익성 지표일 뿐 미래 성장성까지 보장하는 시그널이 아니므로 이 수치만 보고 투자하는 건 초음파 검사만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것처럼 무모할 수 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ROE가 최근 3년 평균 15% 이상인 종목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실제 그가 보유한 종목의 평균 ROE는 늘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뛰어넘는다. 보통 12% 정도의 ROE를 꾸준히 기록하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최고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사 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예외 없이 높은 ROE를 보여주는데 애플은 87%, 마이크로소프트는 14%, 코카콜라와 삼성전자는 각각 22%, 13%의 ROE를 보여주고 있다.

김범석 전 일간스포츠 연예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