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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로 숨진 34㎏ 남성, 작년 음료수 훔치다 적발 "행색 남루"

입력
2021.06.17 20:30
수정
2021.06.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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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인데도 반팔 차림… 몸에는 폭행 당한 흔적
감금 살해되기 전에도 장기간 괴롭힘 당한 정황
편의점 점주·경찰 조치로 대구 사는 부모에 인계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C씨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C씨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에서 발생한 이른바 '오피스텔 감금 살인' 사건 피해자 A씨가 지난해 11월 남루한 행색으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훔치다가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이번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20)·안모(20)씨와 교류하던 시기로, A씨는 편의점 점주와 경찰의 도움으로 대구 본가로 인계된 뒤 피의자들을 상해죄로 고소했다. A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감금 폭행 이전에도 피의자들로부터 장기간 괴롭힘을 당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대구 집과 서울에 있는 피의자들 집을 오가며 생활했다. 두 피의자는 중학교 동창이자 같은 대학을 다니는 사이로 지난해 초부터 같이 살았는데, 이 중 한 명이 A씨와 고등학교 동창 사이였다. 이들은 1년 사이 주거지를 양재동-영등포동-서교동-연남동으로 옮겼는데,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자주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11월 4일 오후 7시 40분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을 훔치다가 점주에게 적발됐다. 점주는 경찰 신고 후 A씨 행색을 보고 빵까지 챙겨준 것으로 파악됐다. 양재파출소 직원 2명이 도착했을 땐 A씨를 처벌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경찰이 A씨를 파출소로 연행한 뒤 김씨와 안씨는 A씨를 데려가고 싶다며 파출소로 찾아왔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11월인데도 반팔티 차림이었고 폭행을 당한 흔적도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인계를 거부했고, 대구에 있는 A씨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A씨는 묻는 말엔 대답할 수 있는 상태였고, 피의자들이 어떻게 파출소에 찾아왔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버지와 함께 대구 집에 간 A씨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11월 7일 대구 달성경찰서를 찾아 피의자들을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올해 1월 24일 피의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이 과정에서 A씨에게 앙심을 품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3월 31일 피해자를 서울로 데려와서 통제 상태에 뒀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피해자에게 대질조사 출석을 위해 연락했을 때 '지방에 있다'고 말하게 하거나 전화를 못 받게 하는 등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이 기간에 A씨에게 일용직 노동을 강요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피해자와 채무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물류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할 것을 강요하고 수백만 원을 빼앗은 걸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A씨의 몸에서 사망에 이를 만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폐렴·저체중 등이 사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구두 소견을 받았다. A씨는 숨질 당시 체중이 34㎏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건 장소인 연남동 오피스텔로 이사 온 지난 1일에는 A씨가 혼자 걸을 수 없어 두 피의자가 부축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촬영되기도 했다. A씨는 지난 13일 이 오피스텔에서 나체 상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앞서 피의자들 혐의를 중감금치사에서 살인죄로 변경한 경찰은 재차 혐의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은 살인 혐의로 발부됐지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보복범죄의 가중처벌 규정을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가법이 적용되면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유기징역을 적용할 수 있다.

이정원 기자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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