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더 강경해진다… 오늘 판세 확 기운 대통령 선거

입력
2021.06.18 00:10
수정
2021.06.23 09:5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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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 개혁파 후보 고전… 정권 교체 불가피
"투표 기권해 체제 부담 주자"… 젊은층 기류
핵협상엔 암운… "서방 맞선 中 밀착 가능성"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1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 지지자들이 그의 대형 사진을 벽에 걸고 지지 집회를 하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1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 지지자들이 그의 대형 사진을 벽에 걸고 지지 집회를 하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중동의 대표적 반미(反美) 이슬람 국가의 대미 노선이 한층 더 강경해질 전망이다. 미국에 뻣뻣한 보수파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로 여겨질 만큼, 18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의 판세가 크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한 미국 등 서방의 협상도 강경파 정권을 상대로는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16일 이란 언론에 따르면, 선거 이틀 전인 이날까지 강성 보수 진영 내 대표적 성직자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선 레이스에서 압도적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이란 국영 방송 여론조사 결과, 투표 참여 의향을 보인 응답자의 58.4%가 그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현재 최고지도자 사망 또는 유고 시 후임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부의장이기도 한 라이시는 사실 애초 가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였다. 2위와의 격차가 워낙 큰 데다, 이날 사퇴한 두 보수 후보인 사이드 잘릴리(2.5%)와 알리레자 자카니(2.1%)의 표까지 사실상 흡수했다.

반면 온건 개혁 진영 단일 후보가 된 압돌나세르 헴마티 전 중앙은행 총재는 고전 중이다. 이날 개혁파 모센 메흐랄리자데도 레이스를 포기했지만, 효과는 미미할 게 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헴마티 지지율은 3.1%에 그쳤고, 여기에 보태질 메흐랄리자데는 0.6%에 불과하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온건파 후보가 선두 강경파 후보에 맞설 방법은 유권자 수백만 명을 설득해 투표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8년간 집권한 온건 개혁파 정권의 재창출도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이란의 개혁파 대통령 후보 압돌나세르 헴마티의 지지자들이 16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유세에 참여해 그의 사진을 들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란의 개혁파 대통령 후보 압돌나세르 헴마티의 지지자들이 16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유세에 참여해 그의 사진을 들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는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결과를 바꾸지 못할 바엔 차라리 기권으로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게 새 보수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실제 젊은 층 위주의 대선 보이콧 기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리가 눈앞인 보수파는 대선 자체보단 집권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이날 TV 연설에서 “지배층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이란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적들(미국·서방의 언론)이 선거 참여를 막으려 한다”며 투표를 독려한 배경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 대선 투표율이 40%대에 머물 것으로 예측된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권 교체로 골치가 아파지는 건 서방, 특히 미국이다. 따지고 보면 이란 보수 정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세워 주는 셈이다. 어렵사리 맺은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멋대로 깨 버리고 대(對)이란 제재를 부활시켜 온건파 하산 로하니 정권을 곤란에 빠뜨렸다. 경제는 엉망이 됐고, 보수파들은 미국을 왜 믿었냐고 몰아붙였다. 올 1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은 그래서 현 이란 정부엔 기회였다. 4월 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이 시작됐고, 미·이란 양측 모두 서둘렀으나 끝내 타결엔 이르지 못했다.

군사 강국을 지향하는 이란 강경파의 집권이 협상에 암운인 건 사실이다. 여간해선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난이 정권까지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제재 해제는 진영을 막론한 최우선 과제다. 때문에 협상 판이 완전히 엎어지진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다만 최근 새 변수가 불거졌다. 중국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17일 “미·유럽 대서양 동맹의 대중국 압박이 가시화한 만큼 중국의 이란 진출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며 “이란의 대중 경사(傾斜)를 걱정하는 미국을 상대하기에, 이란 입장에서 중국은 좋은 협상 지렛대”라고 분석했다.

이란의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1회 연임이 가능하다. 2017년 연임에 성공한 로하니 대통령은 8월 임기를 마친다.

권경성 기자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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