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와 연대”... ‘봄의 혁명’ 미얀마의 또 다른 혁명

입력
2021.06.19 05:30

지난 2012년 6월 발생한 로힝야족 학살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매년 6월 열리는 'Black4Rohingya' 캠페인 연대 트윗. 올해 참여 건수는 50만 건을 웃돌았다. 트위터 캡처

13일(현지시간) 미얀마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온통 “#Black4Rohingya” 해시태그로 뒤덮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변호사 샤브남 마이엣 주도로 운영되는 ‘Protect The Rohingya(PTR)’ 계정이 2013년부터 계속 해 오고 있는 캠페인이다. PTR은 취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2012년 6월 아라칸주(라카인주)에서 발생한 로힝야 학살을 잊지 말자는 것”이라며 “(인종차별 정책을 경험한) 남아공 시민들로서 우리는 미얀마가 (아파르트헤이트 구조에 갇힌) 로힝야들과 함께 하지 않는 한 진일보할 수 없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런데 올해 캠페인은 단위부터 달라졌다. 지난해 2만6,000건에 비해 무려 50만 건이 넘는 ‘Black4Rohingya’ 해시태그가 SNS를 도배한 것이다. 로힝야에 ‘연대’를 표하는 목소리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자유로힝야연합’ 공동 창시자인 로힝야 활동가 네이 산 르윈은 이메일을 통해 “동료 미얀마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 물결에 깜짝 놀랐다”며 “쿠데타 이후 로힝야에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연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르윈은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군부 탄압과 시민 저항 상황을 SNS를 통해 시시각각 전하고 있다. 2016~2017년 로힝야들이 미얀마군에 처참하게 학살당하던 시기, 그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면서 쌓았던 경험과 숙련된 노하우는 이제 시민 저항 역사를 기록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그의 정보력은 ‘지역(주)에서, 타운에서 끊임없이 업데이트와 제보를 보내오는 시민기자들’로부터 나온다. 미얀마는 이제 “로힝야 형제 자매들과 연대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쓰기 위해 적어도 왕따와 협박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의 공기를 되찾는 중이다.

여성 활동가 틴자 슌레이(27)는 쿠데타 전부터 이미 로힝야와 연대 목소리를 내 온 극히 드문 활동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장 억압받는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이번 (캠페인) 플랫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음성 메시지를 통해 연락이 닿은 슌레이는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모두 역사의 같은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절망 중이고, 우리 모두 억압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니 우리 모두 억압자들에 맞서 일어나야 한다. 로힝야들에게도 사과하고 연대하기도 좋은 기회”라고 역설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14일 만달레이에서 횃불 시위를 하고 있다. 만달레이=로이터 연합뉴스

미얀마 곳곳에서 목격되는 ‘로힝야 연대’ 메시지는 지난 넉 달간 이 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봄의 혁명’ 중에서도 가장 혁명적인 장면들이다. 이 움직임은 반(反)군부 정치 전선에서 싸우는 정치권에도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선출됐음에도 이번 쿠데타로 취임 선서조차 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올해 2월 7일 ‘연방의회대표단(CRPH)을 결성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입법기관인 CRPH는 외교전과 정치활동으로 대(對)군부 ‘반격’에 나섰고, 지난 2008년 군부가 만든 헌법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임시정부 성격인 국민통합정부(NUG) 출범의 헌법적 토대 마련을 위해 3월 31일 ‘연방민주주의 임시헌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NUG는 4월 16일 공식 출범됐다.

그리고 이달 3일, NUG는 로힝야 문제를 정책발표의 첫 주제로 올렸다. NUG는 로힝야 정책 기조문을 통해 “미얀마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물론, 미얀마 태생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모두 미얀마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국제사회 비판을 받아 왔던 ‘국민검증카드(NVC)’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로힝야는 외국인’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NVC는 “3등 시민에 준하는 귀화시민 자격 여부를 심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당국자들 설명이지만, 사실은 이를 뛰어넘어 시민권 거부를 위한 ‘방향 전환 카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슌레이는 NUG의 ‘로힝야 시민권 부여’ 발표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 접근과 의혹의 눈길을 유지하며 NUG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윈도 “NUG의 정책은 아직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만큼, 실행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요할 것”이라고 지적한 뒤, “NUG가 실질 통치로 들어가면 그 약속을 지킬 거라 믿는다”고 했다. 특히 그는 “(NUG의 로힝야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로힝야가 미얀마의 토착민이라는 걸 인정했다는 점”이라며 “우린 지금 당장 무슨 권리를 달라고 구걸하는 게 아니라,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래 빼앗긴 모든 권리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NUG가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로힝야 이슈를 해결하면서 NUG가 추구할 연방민주주의의 ‘혁명적’ 미래까지, 그 앞길이 험난하다는 점이다. 특히 로힝야들과 공존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인 라카인 커뮤니티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라카인 무장단체 중 하나로 반로힝야 레토릭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온 아라칸해방당(ALP)과 아라칸 정당, 시민사회 등의 연합체인 ‘전 아라칸 연대 위원회(AASC)’는 8일 성명에서 “NUG의 로힝야 정책이 라카인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ALP는 으레 그래 왔듯, 대변인 성명에서 로힝야를 향한 인종주의적 표현인 ‘벵갈리’를 사용하며 “벵갈리 이슈가 이 나라에서 민감하다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로힝야족 여성과 아이들이 4일 인도네시아 동아체의 이다만섬 해변에서 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캠프를 떠나 보트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곳에 상륙했다. 이다만=AP 연합뉴스

9일엔 라카인족 최대 무장단체인 아라칸군(AA) 총사령관 트완 므랏 나잉의 가족이 감옥에서 대거 석방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반테러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인 상태였다. ‘전쟁 PR’과 선전전략이 뛰어난 AA는 그러나 이번 쿠데타에 대해선 비판도, 수긍도 없이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군부와 모종의 ‘딜’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진 이유다. 이처럼 라카인 정당과 무장단체, 일부 ‘시민사회’는 쿠데타 이후 반군부 전선에서 똘똘 뭉친 미얀마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점점 더 선명히 하고 있는 중이다.

분석가들은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했던 아웅산 수치의 NLD 정부가 무너진 ‘포스트-쿠데타’ 혼란의 국면에서 군부 통치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AC)와 ‘반NLD’ 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AA가 이번 기회에 자치 협상을 밀어붙이려는 심산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게다가 라카인족 최대 정당인 아라칸민족당(ANP)은 SAC에 공식 참여 중이다. ANP에서 탈당한 후 아라칸전선당(AFP)을 창당한 극우정치인 에 마웅도 SAC에 호의적 입장이다. NLD 정부하에서 반역죄로 옥살이를 했던 그는 쿠데타 직후 사면으로 풀려나자,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72년간 단 한 번도 전쟁을 멈춰 본 적이 없다. 동시에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벌인 적도 없다. 휴전과 협상을 복수의 내전 현장에서 분열책으로 잘 활용해 온 능수능란한 조직이 바로 미얀마 군부다. 로힝야와 연대하는 미얀마 사회의 ‘혁명적’ 물결에도 불구하고, 그 혁명이 넘어야 할 장벽은 높기만 하다. 라카인주는 그 대표적 도전지이고, 로힝야 이슈는 미얀마 ‘봄의 혁명’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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