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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안의 이 중사들

입력
2021.06.16 00:00
26면

은폐·회유에 가려진 이 중사 성폭력 사망
군, 대통령 분노하기 전까지 요지부동
폐쇄적 성차별적 조직 개방·혁신해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모 중사의 분향소. 뉴스1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모 중사의 분향소. 뉴스1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대통령이 연거푸 사과할 때까지 군(軍)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55일이 지나도록 공군 검찰은 단 한 차례도 가해자를 조사하지 않았다. 참모총장이 사임하고 장관이 사과하기까지 18일이 걸렸다. 공군 부사관 이 중사 성폭력 피해와 사망 사건이다.

국가를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청년 여성이 국가의 지킴을 받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 긴 시간 동안 성희롱과 성추행에 시달렸지만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동료가 가해자가 되고 사건 처리의 책임을 진 상사는 2차 가해를 계속했다. 변호인은 얼굴도 보기 어려웠고 24시간 병영 안에 가둬졌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강력한 은폐와 회유, 억압이 지속됐다.

군이라는 특성이 있지만, 일터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현상부터 살펴보면 이렇다. 일상 업무나 회식, 회식 후 귀갓길에서 동료나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해도 ‘견뎌야 할 사회생활’의 일부다. 참다 못한 여성이 괴로움을 토로하면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면박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땐 ‘무고’나 ‘거짓말’로 되레 처벌받을 수 있다는 협박이 ‘조사 과정’에 끼어들기도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때로 피해자 신상 유포의 진원지가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즉각 분리되어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사 조치는 미뤄진다. 그 사이 가해자는 ‘죽어버리겠다’며 피해자를 겁박한다.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도 개인적 행위로 덮어버리는 은폐 행위가 ‘조직의 안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일터 성폭력 사건이 갖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성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이를 조장하는 조직적 특징이 있다. 성차별적이고 위계적이며 폐쇄적인 조직이다. 군대는 이런 조직의 전형이다. 이 중사가 ‘군이라서 외부에 알릴 수가 없다’며 괴로워했을 때 그가 지적한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군이 갖는 무서운 힘 중 하나는 내부 비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조사는 물론 판결까지 사법제도 전반을 내부조직으로 두고 내부인사로만 충원하는 시스템은 아마 21세기 사회에서 군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 안의 국가, 군대에서 여성은 소수자집단이다. 성별과 계급, 연령이 교차하는 위계질서에서 청년 여성은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다.

둘째, 조직 내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는 1대 1의 관계가 아니다. 1대 다(多), 소수와 다수의 관계가 대부분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조직 내 구성원들이 피해자나 가해자에 동조하며 무리 짓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개 가해자는 권력이 있고 남성이라 동조자를 구하기 쉽다. 피해자는 반대다. 이 중사가 몰렸던 상황은 이런 불균형한 집단관계의 극단적 전형이다. 그는 혼자였고 조직은 가해자들 편이었다.

셋째,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된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가해자의 위치로 몰린다. ‘그 정도 일로 남자의 밥그릇을 뺏느냐’는 비난이 시작되며, 피해자는 가해자로 바뀐다. 가해자는 한순간의 실수로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동정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는 자해의 위협으로 피해자를 압박한다.

너무 오랫동안 보아와 이제는 넌덜머리가 난 이 상황을 또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아내를 잃은 유가족의 마음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을 것이다. 군이라는 오래된 성채의 벽은 허물어야 한다. 군은 더 이상 국가 안의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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