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버스 태울걸" "머리로 뭔가 떨어질 듯" 광주 참사 트라우마 심각

입력
2021.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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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 "구조 직전 신음소리에 고통스러워"
주민 "사고 영상 머릿속 남아 매일 잠 설쳐"
유족·시민들, 심리지원 기관에 상담 요청도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공사 관계자가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공사 관계자가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엿새째인 14일 지하철 학동증심사입구역에서 전남 화순 방면으로 이동하는 54번 버스는 한산했다. 54번은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그 버스다. 이따금씩 보이는 승객들은 대부분 버스 앞쪽에 탑승하거나 인도에서 떨어진 왼쪽 좌석에 앉아 있었다. 붕괴 사고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버스 뒤편에서 나온 영향이 커 보였다. 승객 안병순(65)씨는 "늘 타고 다니는 버스다. 뉴스에서 사고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50대 승객 박모씨도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나"라면서 "사고 영상이 머릿속에 남아 매일 잠을 설친다"고 괴로워했다.

이처럼 사고의 충격은 주민들의 일상으로까지 번졌다. 사고 현장 일대를 매일 돌며 트럭에서 굴비를 판매한다는 이진석(64)씨는 "그날 이후로 공사장 근처를 지날 때는 가급적 인도와 멀리 떨어진 1차선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만난 안모씨도 "사망한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뜰 줄 몰랐을 것 아닌가"라며 "머리 위에서 뭔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족과 살아 남은 부상자들의 트라우마는 더욱 크다. 친정어머니를 만난 뒤 귀가하던 길에 사고를 당한 김모씨의 언니는 "그 버스에 사람이 많았는데 다음 버스를 타게 할걸 그랬다"며 자책하고 있다. '곧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어머니 시신을 확인해야 했던 20대 아들에게도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버스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잃었다는 부상자 A씨는 "너무 고통스럽다. 내가 이 정도인데 유족들 마음은 어떻겠나"라며 간신히 입을 뗐다. 구조되기 전까지 버스 안에서 들렸던 신음소리도 생생하다고 했다. 의료진은 A씨가 입원 후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광주시가 24시간 재난심리지원 핫라인을 통해 12일부터 심리상담 지원을 안내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자, 이틀 동안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시민 6명이 상담을 요청했다. 유가족과 부상자 심리상담을 전담하고 있는 동구청 보건소에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발인이 진행된 최연소 사망자 김모(17)군의 고교에선 학생들 심리상태를 감안해 추모 관련 공식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학교 측은 "사고 관련 잔상이 아이들 기억에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주=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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