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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해 환자에게 치료법까지… 의사들이 개발한 AI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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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정복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의사 출신 서범석(38) 루닛 대표도 같은 꿈을 꾼다. 그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의사 가운을 벗고 몸 담은 신생기업(스타트업) 루닛은 인공지능(AI)을 통해 암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다.
많은 의사와 대기업들이 하지 못한 일을 과연 스타트업이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한데 루닛의 행보를 보면 가능성이 보인다. 이 업체가 개발한 암 진단 AI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는 이미 국내외 250개 병원에 도입됐고, 최적의 암 치료법을 찾아주는 또 다른 AI 솔루션 ‘루닛 스코프’는 개발 완료 단계에서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찍으며 우주탐험 시대를 열었듯 루닛은 암 정복이라는 여정에 큰 발자국을 찍은 셈이다. 서울 강남역 인근 루닛 사무실에서 서 대표를 만나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봤다.
서 대표는 최근 정신없이 바빴다. 세계적 바이오기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 때문이다. "기업명을 밝힐 수 없지만 세계 정상급 기업이 수백억 원대 전략적 투자를 하기로 했어요. 이달 중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입니다." 해당 기업은 루닛이 최근 개발한 암치료법을 판단하는 루닛 스코프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전 세계에 판매하는 의료기기와 함께 보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 대표는 "암 정복의 핵심은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문이 있다. 빨리 발견하는 것과 정확한 치료를 하는 것이다.
루닛은 폐암과 유방암을 조기 발견하는 AI로 첫 도전을 시작했다. 2017년에 개발돼 2018년 식약처 승인과 유럽CE 인증을 받은 루닛 인사이트는 폐암과 결핵, 기흉 등 9가지 폐 질환을 찾아내는 ‘루닛 인사이트 CXR’과 유방암 진단용 ‘루닛 인사이트 MMG’ 등 두 종류다. "폐암과 유방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전 세계 발병률 1, 2위 암이기 때문이에요. 발병률이 높으면 환자가 많아 시장이 크죠."
루닛 인사이트는 환자의 가슴 엑스레이(CXR)와 유방촬영술(MMG) 영상을 AI로 분석해 폐 질환 및 악성 종양이 의심되는 부분을 다른 색으로 표시해 준다. AI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엑스레이 영상 등 숱한 데이터를 학습한다. 루닛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외 30개 대형 의료기관과 공동 연구를 통해 500만 장 이상의 대규모 학습 데이터를 수집했다. 루닛 인사이트를 사용할수록 학습 재료인 데이터가 늘어나 AI의 정확성이 올라간다.
또 루닛은 후지필름, 필립스, GE 등 세계 3대 의료기기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 업체들이 의료기기를 전 세계에 판매하며 루닛 인사이트를 함께 공급하는 것이다. "루닛 인사이트의 가능성을 높게 본 후지필름은 2018년 루닛에 전략적 투자를 했어요. 이후 GE와 필립스와도 손을 잡았죠. 덕분에 빠르게 시장을 키웠어요."
루닛 인사이트의 AI는 얼마나 정확하게 암을 진단할까. "이상 현상이 너무 작거나 뼈 뒤에 숨으면 의사가 눈으로 봤을 때 놓칠 수 있어요. AI는 눈으로 찾기 힘든 미세한 흔적까지 놓치지 않아요. 육안 검사 때보다 20% 이상 정확도가 높습니다. 특히 엑스레이 판독은 정확도가 97%까지 올라갑니다."
덕분에 루닛 인사이트는 20개국 250개 의료 기관이 사용한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국립암센터, 서울성모병원, 경희의료원 등 국내 톱10 대형병원 중 7곳이 사용해요."
세계보건기구(WHO)도 루닛 인사이트를 높게 평가해 지난 4월 발표한 '결핵 검진 통합 가이드라인'에서 의사를 대신해 결핵을 판별할 능력을 지녔다고 인증했다. WHO가 AI의 진단 능력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WHO는 2년 이상 루닛 인사이트에 대한 심사 끝에 '15세 이상 결핵 환자의 경우 전문의를 대체할 만한 수준'이라고 가이드라인에 명시했다.
개발이 거의 끝난 루닛 스코프는 암 진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암 정복의 두 번째 관문인 정확한 치료를 위한 도구다. 루닛 스코프는 암 환자에게서 떼어낸 조직 세포를 AI가 분석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준다. 특히 10년 전부터 빠르게 뜬 면역 항암제 투약 여부를 가늠한다. "암을 이기려면 치료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항암제 반응 확률은 25%에 불과해요. 항암제가 듣지 않는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거죠. 같은 암이라도 환자의 세포 분포 등 상태에 따라 치료법을 다르게 써야 합니다."
면역 항암제란 암 세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암 세포 주변에 면역 세포가 갖고 있는 공격력을 키워 암 세포를 공격하게 만드는 약이다. 따라서 빠르게 분화하는 암 세포를 죽이면서 마찬가지로 분화 속도가 빠른 정상 세포까지 죽여 머리가 빠지고 속이 뒤집히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세포독성 항암제와 달리 면역 항암제는 부작용이 없다.
그런데 면역 항암제를 사용하려면 암 세포 주변에 충분한 면역 세포가 있어야 한다. 만약 면역 세포가 부족하면 면역 항암제를 써봐야 소용없으니 다른 항암제를 써야 한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기존에는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조직 세포를 일일이 눈으로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세포가 너무 작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다 보면 잘못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
루닛 스코프는 눈으로 발견하기 힘든 면역 세포를 찾아내 AI가 올바른 치료법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암 세포 주변에 분포한 면역 세포의 발현 비율이 조직 전체에서 1% 미만이면 면역 항암제를 쓸 수 없어요. 그런데 1%보다 많은데도 눈으로 발견하지 못해 면역 항암제 대신 다른 치료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루닛 스코프는 면역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를 기존보다 50% 이상 더 많이 찾아줘요."
서 대표는 현재 국내외 다양한 제약사들과 루닛 스코프의 임상시험을 논의 중이다. 임상시험이 잘 되면 협업한 제약사들이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할 수도 있다. "어디와 임상시험을 할지 하반기에 발표 예정입니다. 임상시험이 끝나고 각국 정부에서 사용 인허가를 받아 판매하려면 3~5년 걸릴 겁니다."
원래 서 대표는 2005년 카이스트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의대 본과에 편입했다. 2009년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인턴)와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돼서 서울대병원에서 4년간 의사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암에 관심이 많았어요. 암의 정체를 알려고 카이스트에서 생명과학을 배웠고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 의대에 갔죠."
이후 서 대표는 군의관 복무를 하고 연세대에서 보건학 석사, 경희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2018년 루닛에 합류했다. 그는 의대 시절부터 창업을 생각했다.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때 창업에 대한 도움을 구하려고 카이스트 동기인 백승욱 루닛 전 대표를 만났죠."
루닛은 카이스트에서 AI를 전공한 사람들이 2013년에 창업한 회사였다. 서 대표는 백 전 대표를 자주 만나면서 AI를 의학의 미래로 봤다. 서 대표가 합류하면서 루닛은 AI를 의료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됐다. 2018년부터 대표를 맡은 그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의료계가 도입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했다.
현재 루닛에는 서 대표 포함 11명의 전직 의사가 있다. "의사들이 일하는 AI 업체는 별로 없어요. 우리는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내부, 피부과, 영상의학, 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의로 일한 의사들이 기술 개발에 참여해요. 의료계를 이해해야 어떤 제품을 만들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의사들의 합류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단적인 예로 루닛 인사이트와 루닛 스코프의 데이터 학습을 들 수 있다. "AI에게 엑스레이 데이터를 학습시킬 때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데이터를 함께 학습시켜요. 그래야 AI가 엑스레이에서 놓친 것들을 CT 영상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이런 결정은 의사들의 경험에서 나왔어요."
서 대표는 AI로 의사와 경쟁할 생각이 없다. "AI 기술로 의사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AI는 청진기나 엑스레이처럼 의사를 위한 도구예요. 현대 의학은 피, 소변, 영상 검사, 유전자 분석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 행위를 결정하는 데이터 과학이에요. 앞으로 데이터는 점점 늘어나고 복잡해질 겁니다. 이때 AI는 의사가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야 합니다."
루닛 인사이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진단한다. "루닛 인사이트가 폐렴 등 9개 폐 질환을 찾다 보니 코로나19로 발병한 폐렴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기능을 업데이트해서 내놓았죠. 신속 유전자증폭검사(PCR)를 하면 빠르면 6시간, 늦으면 하루 이틀 지나야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알 수 있는데 루닛 인사이트는 이보다 빨리 찾아요."
PCR보다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더 빨리 가려내는 루닛 인사이트는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10개국에서 사용한다. "브라질처럼 코로나19가 마구 확산된 국가에서 유용하게 쓰이죠. 국내에서도 서울대병원 등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어요."
올해 서 대표는 신기술 개발과 증시 상장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루닛 인사이트의 AI 분석을 기존 2차원의 엑스레이 영상에서 3차원의 CT 영상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 폐암 진단 과정을 보면 엑스레이로 발병 가능성을 가려낸 뒤 CT 촬영으로 정밀 진단을 합니다. 이때 AI가 CT 영상을 판독하는 거죠. 이 기술을 올해 안에 개발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의사와 개발자도 더 뽑을 예정이다. "현재 직원이 미국, 유럽, 중국지사를 포함해 200명입니다. 내부에 의사와 개발자들이 많으면 AI의 정확도를 개선할 수 있죠."
더불어 해외 시장도 확대한다. "두 달 뒤 일본에서 루닛 인사이트 인가가 나올 예정이에요. 또 하반기에 루닛 인사이트에 대한 미 식품의약국(FDA) 인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기 맞춰 미국과 동남아, 남미에서 활발하게 제휴 관계를 맺고 판매를 할 겁니다."
여기에 1, 2주 내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결정되면 루닛은 누적으로 1,000억 원 이상 투자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 카카오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미래에셋벤처투자, KT인베스트먼트,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LG CNS를 비롯해 미국 포메이션8, 중국 레전드 캐피탈, 일본 후지필름 등으로부터 600억 원을 투자받았어요.”
상장 준비도 진행 중이다. 루닛은 14일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헬스케어 기업으로 역대 최고 등급인 ‘AA-AA’를 받아 통과했다. 서 대표는 이를 토대로 하반기 중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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