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제징용 노동자의 고귀한 정신

입력
2021.06.15 04:30

강제동원 자료와 희생자 위패가 있는 홋카이도 슈마리나이댐 옆 ‘옛 고켄지(光?寺)-사사노보효(笹の墓標)전시관’이 폭설로 무너져 재건을 위한 인터넷 모금이 진행 중이다. 사진은 슈마리나이댐 강제노동 현장 자료 사진. 모금운동 사이트 캡처

2015년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돼 홋카이도 등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다 숨진 조선인 유골 115위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70년 만의 귀향’이 이뤄진 데는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 스님과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평화디딤돌 이사장) 등 40년 넘도록 함께 유골을 발굴해 온 한일 양국 시민의 노력이 있었다.

도노히라 스님은 홋카이도 슈마리나이댐 공사에 동원돼 노역을 하다 숨진 조선인 희생자 유골에 대해 1976년 처음 알게 되어 발굴을 시작했다. 당시 재일 조선인 채만진씨 등에게 직접 겪은 강제노동 체험을 듣고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1984년 작고한 채씨가 1977년에 쓴 글을 스님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렸다. 채씨는 가혹한 ‘다코베야(タコ部屋·문어방, 강제노동 수용소를 가리킴)’ 노동 중 탈주했다가 잡히는 등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런데도 고등학생에게 “일본인에 원한을 갖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받자 “그런 건 없다. 우리가 고통받던 시절에는 당신들의 아버지, 어머니도 고통에 시달렸다”고 답했다. 그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동료를 위해, 동포를 위해, 이웃을 위해 하는 일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썼다.

스님은 “(채씨는)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으로서 풍요로운 마음을 계속 간직했다”며 “저희는 이 말에 이끌려 오늘까지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강제징용 유골 발굴 사업의 시작에는 극한의 고통을 겪고도 인간에 대한 증오 대신 포용의 마음으로 살다 간 옛 강제징용 노동자의 고귀한 정신이 있었다.

강제동원 노동자의 자료와 위패가 있는 슈마리나이댐 옆 ‘옛 고켄지(光?寺)-사사노보효(笹の墓標)전시관’은 1997년부터 해마다 한일 대학생들이 유골을 발굴해 온 상징적 장소다. 이곳이 2019년 초 폭설로 무너졌다. 도노히라 스님은 전시관 재건을 위한 인터넷 모금(바로가기)을 최근 시작했다. 강제징용 손배 소송에 대한 의외의 판결로 분노하는 이들이 많은 지금, 시민의 힘으로 이어 온 징용 노동자 유골 발굴 사업이 계속될 수 있도록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강제동원 희생자의 자료와 위패 등이 있는 슈마리나이댐 옆 ‘옛 고켄지(光?寺)-사사노보효(笹の墓標)전시관’은 1997년부터 해마다 한일 대학생들이 유골을 발굴해 온 상징적 장소다. 모금운동 사이트 캡처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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