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철거공사 사고 돌아보니… 광주 붕괴 사고와 판박이

입력
2021.06.14 10:00
구독

대형 참사마다 대책 마련해도 닮은꼴 사고 반복
실효적 제도 집행 안 되고 현장 안전불감증 만연
철거 주택 10년 새 1.85배 급증… 사고 위험 증가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현장에서 인부들이 쓰러진 비계(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딛고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발판)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현장에서 인부들이 쓰러진 비계(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딛고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발판)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 지난 11일 오전 1시 55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 현장에서 시스템 비계(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일체형 작업 발판)가 느닷없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10m 높이 가림막이 인근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밤중 큰소리에 깬 주민들은 현장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9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철거 건물 붕괴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지 고작 이틀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

건물 철거 과정에서 붕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명 피해를 수반한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당국은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제도 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공사 현장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해 닮은꼴 사고가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철거가 필요한 노후 건물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현실에서 참사의 고리를 끊으려면 보다 근본적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만 최근 5년 철거 붕괴사고 18건

2017년 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 호텔 건물 철거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119 구조대원들이 현장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 호텔 건물 철거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119 구조대원들이 현장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만 해도 최근 몇 년간 철거 공사 과정에서 이번 광주 참사와 유사한 붕괴 사고가 잇따랐다. 서울시 건축물 재난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시내 철거 공사장 사고 건수는 2015년 4건, 2016년 5건, 2017년 5건, 2018년 3건, 2019년 1건이다.

2017년 1월 7일엔 종로구 낙원동의 호텔 철거 현장에서 지상 1층 슬래브 붕괴로 두 명이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고층부터 해체하는 '톱다운' 방식에 따라 굴착기를 건물에 올렸다가 지상층이 하중에 못 견뎌 무너진 사고였다.

서울시는 이후 건축 조례를 개정, 사전 철거 심의제와 상주 감리제를 도입했다. 지상 5층 또는 높이 13m 이상, 지하 2층 또는 깊이 5m 이상의 건물을 철거할 때는 사전에 자치구 심의를 통과해야 하고, 자치구 건축위원회가 건물주와 시공사 등이 제출한 철거설계도를 사전 검토해 허가를 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22일 강남구 역삼동 지하 1층 슬래브 붕괴(부상 2명), 12월 28일 강서구 등촌동 이동식 크레인 전도(사망 1명, 경상 1명) 등 사고는 계속됐다. 이듬해(2018년)에도 3월 31일 강동구 천호동 굴삭기 전도(부상 2명), 6월 16일 동작구 신대방동 지상 4층 슬래브 철거 중 저층부 붕괴(부상 1명) 등이 잇따랐다. 피해 규모는 각기 달랐어도 허술한 관리·감독과 현장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한 사고란 점은 매한가지였다.

2019년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난 서울 잠원동 붕괴사고 현장에서 지난달 5일 경찰 관계자 등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난 서울 잠원동 붕괴사고 현장에서 지난달 5일 경찰 관계자 등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과 두 달 전 참사 잊은 안전불감증

지난 4월 30일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 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 관계자들이 매몰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30일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 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 관계자들이 매몰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결국 재작년 이번 광주 사고를 예고하는 듯한 참사가 발생했다. 2019년 7월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건물의 외벽이 붕괴, 30톤가량의 잔해물이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것이다. 숨진 이모(당시 29세)씨는 예비 신부로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는 길에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조사 결과 철거업체는 공사기일 단축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애초 구청에 제출한 계획서와 달리 지지대를 적게 설치하는 등 안전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업체가 공사 전 진행된 안전 심의를 한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재심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 당국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5월 건축물관리법을 개정 시행했다. 기존 신고제였던 해체 공사를 허가제를 원칙으로 변경하고, 허가권자인 지자체에 사전 제출해야 하는 해체계획서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럼에도 잠원동 사고 발생 2년 만에 광주 동구에서 판박이 사고가 재발했다.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철거업체가 공사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 기준을 무시했고, 구청 허가를 받은 해체계획서를 어겨 공사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올해는 앞서 철거 관련 대형 사고가 두 건이나 발생한 터였다. 4월 4일 광주 동구 계림동 목조주택 리모델링 현장에서 내부 벽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건설노동자 두 명이 숨졌는데, 건축법령을 어긴 채 임의로 공사를 하고 안전 조치와 현장 관리에 미흡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달 30일에도 서울 성북구 장위10구역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주상복합건물이 무너져 작업자 한 명이 사망했다.

노후 건물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철거 붕괴 사고 위험성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토부의 주택 멸실 현황에 따르면 2010~2018년 전국에서 철거 공사가 진행된 멸실 주택 수는 2010년 6만2,486건에서 2018년 11만5,119건으로 1.84배 증가했다.


손효숙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