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재개발… 그 곳에 불안과 눈물이 있다

입력
2021.06.13 11:00
철거 앞둔 경기 광명·남양주·고양·구리, 서울 명동
그곳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시리즈를 마치며>갈 곳 없는 12인의 이야기

편집자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철거민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을 표방한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은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개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브랜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합니다.


‘철거민’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자기 땅도 아닌 세입자면서 뭘 달라는 거야?" "버텨서 보상 더 받으려는 거잖아." 용산참사의 비극도, 셋방에서 쫓겨나 자살한 30대 세입자 사건에도 이런 조롱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에서조차 토지 개발 시 ‘동등한 대체주택 제공 없이는 이전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입자의 기본 권리라는 점을요. 땅 주인, 건물 소유주만 '사람' 취급 받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세입자도 재개발 주민투표에 참여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개발로 인한 그림자를 보듬어 줄 제도가 거의 없습니다. 개발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이 그림자도 함께 돌아보자는 겁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21세기 난쏘공’ 기사를 준비하며 개발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십년 간 그곳에서 살거나 일해 온 이들은 빠르면 몇 개월 안에 사는 곳, 일하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대부분 어디로 갈지조차 모르는 상황입니다. 더 괜찮은 곳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요.

우리가 만난 12명의 이야기입니다.

재개발로 사는 곳, 일하는 곳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

신길선 할머니가 살고 있는 경기 광명시 철산3동 쪽방촌. 남보라 기자

신길선 (89·가명)

사는 곳 : 경기 광명에서 30여년 째 거주

이주하는 이유 : 광명 뉴타운 재개발 12구역 철거 예정

이주 예정지 : 미정

“여기 판자촌을 방 한 칸에 (보증금) 500만원 주고 들어왔어요. 나가야 된다고 하는데... 애들도 60대 노인들이고 형편이 어려워서 같이 못 살아요. 나갈 데도 모르고, 몰라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여기서 머물러서 사는 동안 있는 거예요. 갈 곳이 없으니까 막막하죠. 죽는 것도 어렵네요. 사는 것도 어렵고…”


경기 광명시 철산 3동 박희석 할아버지의 반지하 전세 단칸방. 남보라 기자

박희석 (79·가명)

사는 곳 : 경기 광명에서 20여년 째 거주

이주하는 이유 : 광명 뉴타운 재개발 12구역 철거 예정

이주 예정지 : 미정

“원래 광명 소하동 판자촌에 세 들어 살았어요. 근데 몇 년전에 큰 도로(강남순환도로) 생긴다고 쫓겨났어요. 여기(철산 3동 반지하 전세)로 왔는데 또 뜯긴다고 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새로 생기는 아파트는 꿈도 못 꾸고…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건데. 아무도 없는 시골에나 가서 살까 싶어. 아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까 싶어.”


김선이 할머니가 지난해까지 살았던 경기 광명시 철산 1동 연립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현재 철거가 진행중이다. 홍인기 기자

김선이 (79·가명)

사는 곳 : 경기 광명에서 50여년 째 거주

이주하는 이유 : 광명 뉴타운 재개발 11구역 철거 예정

이주 예정지 : 광명 5동 연립주택. 5년 내 철거 예정

“사기로 집 잃고 10년 전부터 전세 살았어요. 그런데 5년 전에 광명 뉴타운 재개발 철거한다고 이사하고, 작년에 살던 데도 헐린대서 또 나왔어요. 근데 지금 사는 데도 헐린다네요. 세 번째에요. 복덕방에서는 계약할 때 또 헐린다고 말도 안 해줬어요. 네 번째로 이사가는 데는 도로가 생긴대요. 5년 안에 헐리다고 하는데 그 때 또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어요.”


홍정희씨가 세 들어 있어 서울 명동의 꽃 가게에서 꽃 다듬고 있다. 홍인기 기자

홍정희(61)

일하는 곳 : 서울 명동에서 28년째, 지금 상가에선 16년째 세 들어 꽃집 운영

이주하는 이유 : 상가가 명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제2지구로 지정됨

이주 예정지 : 미정

“우리 딸 여섯 살 때, 딸 세례명 딴 지금 꽃 가게 열어서 16년 간 애들 뒷바라지 했어요. 근데 재개발한다고 나가라네요. 우리나라 법(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은 10년 넘게 장사한 오래된 가게는 아무 소리 못하고 비워주게 돼 있어요. 여기서 벌어서 여기서 먹고 사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대책이 없죠. 주변 가게들도 예순 넘은 여자들이 혼자 장사하는 데가 대부분이에요.”


강성진씨가 세 들어 있는 서울 명동의 일식당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강성진(45)

일하는 곳 : 8년째 서울 명동에서 세 얻어서 일식집 운영

이주하는 이유 : 명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제2지구로 지정됨

이주 예정지 : 미정

“재개발로 건물이 밀리고 문화 공원이 생긴대요. 그런데 건물주는 ‘재건축 한다’고 나가래요. 법적으로 재건축 할 때는 건물주가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고, 세입자한테 보상도 안 해줘도 돼요. 결국 보상 안 해주려고 저러는 거죠. 이제 언제 가게가 철거될지 몰라요. 이런 일은 겪어본 적도 없고… 어디 가서 누굴 붙잡고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기 구리시 인창C구역에 있는 여관 '성일장' 옥상에 있는 이해옥(가운데)씨와 김경석(맨 오른쪽) 김수연씨. 이들은 철거에 반대해 이달 1일부터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혼잎 기자

이해옥(60)

일하는 곳 : 13년동안 경기 구리에서 세 얻어서 여관 ‘성일장’ 운영

이주하는 이유 : 구리인창C구역 재개발정비사업으로 건물 철거

이주 예정지 : 미정

“최소한 ‘수평이동’은 가능하게 해줘야죠. 성일장이 딸이랑 살아가는 집이자 일터였어요. 집 수리도 직접 다 했고, 꽃나무 묘목 하나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그런데 무작정 재개발을 할 테니 몇 푼 쥐어주고 그냥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김경석(가명·62), 김수연(가명·60)

일하는 곳 : 5년 동안 경기 구리에서 세 얻어서 ‘전주밥상 전라도 정식’ 식당 운영

이주하는 이유 : 구리인창C구역 재개발정비사업으로 건물 철거

이주 예정지 : 미정

“5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겨우 번듯한 식당 키워냈는데... 하루 아침에 나가라는 거에요.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90만원 냈었어요. 이 돈으로는 주변에 식당 새로 얻기도 어렵고 기껏 얻은 단골들도 다 잃게 생겼고요. 평생 시위같은 건 생각도 안 해보고 살았는데 이렇게 내가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3기 신도시 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비닐하우스에서 시금치 작업을 하는 김현자씨. 홍인기 기자

김현자(가명·64)

일하는 곳 : 38년간 경기 남양주시에서 땅 빌려서 농사 지음

이주 이유 : 3기 신도시 개발로 빌린 땅이 강제 수용됨

이주 예정지 : 미정

“남양주에서 38년을 땅 빌려서 농사 짓고 살았어요. 비닐하우스에 열무, 배추, 대파, 시금치, 얼갈이 번갈아 심으면서요. 그런데 정부가 아파트 짓는다고 이 땅을 강제로 수용한대요. 우리는 땅이 없으니 토지 보상은 못 받고 농업손실보상만 받아요. 근데 그 돈이 실제 수입의 5분의 1밖에 안돼요. 개발된다니까 주변 땅값 다 올라서 이제 근처에선 땅도 못 빌리고요. 30~40km 더 먼 여주, 포천으로 가야되는데 그러면 또 채소 유통비가 늘어나지요…”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자신의 축사 앞에서 선 송한준씨. 홍인기 기자

송한준(72)

일하는 곳 : 52년간 경기 남양주시에서 축산업을 함

이주 이유 : 3기 신도시 개발로 땅이 강제 수용됨

이주 예정지 : 미정

“560평 토지에서 소 60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보상금 받는다 해도 축사를 딴 데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주민들이 축사 신축에 동의를 해줘야 지자체가 허가를 내주는데, 포천 가서 주민들 물어보니 동의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이 많은 소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폐업하면 소를 마리당 시세보다 100만원은 싸게 팔아야돼요. 이러나 저러나 너무 막막해요.”


경기 고양시 창릉에서 오재웅(오른쪽)씨가 땅을 빌려 운여하고 있는 화훼 상가. 박주희 기자

오재웅(54)

일하는 곳 : 17년간 경기 고양시에서 화훼업 종사

이주하는 이유 : 3기 신도시 개발로 임대한 땅이 강제 수용됨

이주 예정지 : 미정

“땅 140평을 빌려서 화초를 팔고 있어요. 영업손실금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1,000만원 정도 될 것 같아요. 근데 주변 땅값이 다 올라서 이제 토지주들이 화훼업에는 임대를 안 주려고 해요. 임대준다해도 임대료 감당이 안되고요. 사람들을 이주시켜 놓고 개발을 해야지, 지금처럼 ‘선 개발 후 이주’를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개발 다 될때까지 4,5년간 어디서 영업을 합니까.”


경기 고양시에서 사업을 하는 최상필씨가 자신이 일하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박주희 기자

최상필(가명·54)

일하는 곳 : 10년간 경기 고양에서 개인사업

이주 이유 : 3기 신도시 개발로 소유토지 강제수용

이주 예정지 : 미정

“원래 고양 향동지구에서 사업을 했었어요. 근데 10년 전에 재개발되면서 땅이 강제 수용 돼서 창릉으로 왔어요. 그나마 여긴 땅 사놓은 게 있어서 토지 보상은 받을 수 있는데 보상금이 실거래가 절반밖에 안돼요. 보상금으로 여기서 다시 땅 사려면 절반밖에 못 사는거죠. 일 잘 하고 있는 사람들 땅 강제로 뺏아서 나가라면서 보상도 제대로 안 해주는 거죠. 땅 팔고 싶어서 파는것도 아닌데 양도세까지 내라니까 정말 화가납니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문화마을에 사는 박한규씨가 마을회관에 걸린 옛 사진을 보며 이웃들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박한규(가명·77)

사는 곳 : 14년간 경기 남양주 진건문화마을에 거주

이주 이유 : 3기 신도시 개발로 땅이 강제 수용됨

이주 예정지 : 미정

“원래는 진관리 법골에서 세 들어살았어요. 비가 새는 집인데 주인은 고쳐주지도 않았고요. 그러다가 정부가 국가예산 투입해서 ‘진건문화마을’ 조성한다고 해서 1억 정도 대출 받아서 집 지어 이사왔어요. 그 때가 2007년인데 아직도 대출금을 다 못 갚았어요. 국가 믿고 대출 받아서 집 지었는데, 이제 정부가 또 집을 뺏어가려고 하네요.”


◆21세기 난·쏘·공 : 글 싣는 순서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4>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 시리즈를 마치며

▶21세기 난·쏘·공 기획기사 전체를 보시려면 아래 이미지 속 링크를 눌러주세요.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아래 주소를 복사한 후 인터넷 창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Series/S2021060415310005606


남보라 기자
박주희 기자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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