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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과 칠성사이다, 식음료 가치투자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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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주식 계좌는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25년 연예 전문기자 김범석씨가 좌충우돌하며 겪은 스타들의 이야기와 가치투자 도전기를 전해드립니다.
HOT와 젝스키스 팬들이 싸움을 벌이던 1990년대 후반은 하이틴을 겨냥한 패션잡지 전성기였다.
중앙m&b에서 낸 쎄씨가 매달 100만 부 넘게 팔리며 중철지 시대를 활짝 열었고, 일본 잡지 논노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이었다. 쎄씨를 잡기 위해 에꼴, 피가로, 유행통신, 씬디더퍼키 등 후발 주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1위 쎄씨를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실상 은메달 쟁탈전이었다.
당시 에꼴 기자이던 나의 최대 미션은 선호도 1위 연예인 김희선 섭외였다. 곱창 헤어 밴드와 누드 메이크업을 유행시킨 김희선만 지면에 등장시키면 판매 부수와 광고가 동반 상승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희선은 잘나가는 쎄씨와 친했다. 쎄씨 사진이 가장 ‘고 퀄리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때 눈치챘다. 여자 연예인이 잡지를 고를 때는 기사 내용도 보지만 예쁘게 나온 사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그리고 업계 최초로 사진 촬영을 외부 스튜디오에 맡기며 경쟁력을 높인 쎄씨가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갔었다는 사실을.
궁여지책으로 에꼴은 김희선을 '모시기' 위해 그녀와 친분 있는 브랜드 관계자와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통해 러브콜을 보냈지만, 매번 쎄씨에 순번을 뺏겼다.
선배 기자와 단둘이 연예면을 담당한 나는 김희선 매니저에게 2, 3일에 한 번씩 문안 인사하며 섭외를 부탁했다. '우리 매체 안 해줄 거면 다른 데도 해주지 말아 달라'고 했던 걸 보면 참 철이 없었다.
당시 김희선의 매니저는 7월기획 이철삼 실장이었다. 그는 전화 잘 안 받는 다른 매니저들과 달리 사람이 좋았다. '벽돌폰'을 들고 다니며 늘 거절하는 게 일이었을 텐데 상대가 굴욕감 느끼지 않게 돌려서 말하며 늘 다음을 기약하는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삐삐에 '8282'가 찍혔다. 이철삼 실장이었다. 통화해보니 '지금 여의도 MBC로 올 수 있느냐. 기분파 희선이가 지금 컨디션이 좋은데 이럴 때 현장에서 한번 부딪쳐봐라' 하는 얘기였다. 안 되면 꽝이지만 이게 당분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란 말과 함께.
그리고 그가 통화 말미에 팁을 하나 던져줬다. 혹시 사이다와 새우깡을 사서 오면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귀띔이었다. 김희선의 최애 군것질거리인데 사이다는 반드시 차가운 칠성사이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의점에 들를 때까지 반신반의했지만 효과는 대박이었다.
대기실에서 스타일리스트 이기우씨와 수다 떨던 김희선은 "사이다와 새우깡 사 온 기자님은 처음"이라며 "에잇, 기분이다. 어디라고 했죠? 에꼴? 사진기자님 같이 오셨죠"라며 흔쾌히 촬영을 자청하는 게 아닌가. 뒷 배경 열악하기로 유명한 MBC였지만 김희선의 미모로 충분히 커버되고 남았다.
그날 30분 남짓 촬영한 사진으로 속지 브로마이드를 포함해 김희선 독점 12페이지 와이드 인터뷰가 완성됐다.
당시 유행하던 김희선 투명 메이크업 과정과 파우치 속 콤팩트, 아이섀도까지 애독자 선물로 털어가자 이 실장은 "오늘 우리 희선이 뽕을 다 뽑아가네. 이제 그만"이라며 막아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희선 뒤에서 내게 한쪽 눈을 깜빡이며 작전 성공을 축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희선이 당시 롯데칠성과 농심 광고를 노린 건지, 매일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워런 버핏처럼 요즘도 칠성사이다만 즐기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식음료 취향이 명확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작진이 대기실에 준비해놓은 크라운산도, 펩시콜라, 해태 홈런볼에는 일절 손도 대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다.
가치투자자에게 식음료는 밑반찬처럼 늘 포트폴리오에 기본 세팅돼 있는 섹터다. 가끔 일화의 맥콜 같은 의외의 다크호스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식음료에 투자할 땐 업종 대표주, 1등 회사에 주목해야 한다.
2등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높은 시장 점유율과 원재료, 환율 변동 시 소매가를 올릴 수 있는 가격 결정권까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롯데칠성은 서울 서초동 금싸라기 부지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좋은 자산주로도 대접받고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에셋플러스 강방천 회장은 "사람들이 무얼 먹고 마시는지 살피는 데서 투자가 시작된다"라며 "식음료는 보통 2년에 한 번씩 히트 상품이 나오는데 이 상품이 회사를 짧게는 2년 길게는 수 년 동안 먹여 살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요즘 어디에 지갑을 여는지 유심히 관찰하면 트렌드 변화를 알 수 있고 해당 기업에 투자하면 반드시 실적으로 보답받게 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때 반드시 1등 기업을 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황이나 불경기가 닥치면 열등 기업부터 사라지는데 그렇게 경쟁자들이 없어지면 1등 기업이 이들 몫까지 차지하기 때문이다.
VIP 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는 최준철·김민국 대표도 2000년대 초반, 정우성 전지현이 광고한 음료 '이프로 부족할 때' 빈 캔이 학교 쓰레기통에 쌓이는 걸 보고 롯데칠성에 투자했다가 큰 수익률을 기록했다.
히트상품이 기업 브랜드 자체의 변화까지 꾀할 수 있다는 버핏 스타일의 가치투자였다. 예전 같진 않지만, 신라면과 새우깡을 만드는 농심 역시 한때 막대한 시장 독점으로 후발 주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았다.
독점은 소비자와 정부 입장에서 마냥 반길 수 없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최고의 그린 라이트다. 주식으로 돈 벌려면 독점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에 돈을 쌓아둬야 한다. 한류 붐을 타고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에 진출해 괄목할 실적을 보이는 오리온도 빼놓으면 섭섭한 식음료 간판 기업 중 하나다.
잘 팔리는 껌을 보면 은박지 회사에도 궁금증을 품어 보자. 음료 역시 플라스틱 페트병으로 관심을 넓히면 또 다른 돈맥을 발견하게 된다. 국내 페트병 점유율 1, 2위 업체 삼양패키징과 동원시스템즈가 대표적이다. 둘 다 무균 상태에서 음료를 용기에 채우는 기술인 아셉틱 공정을 발 빠르게 도입한 곳이다.
아셉틱 공정의 음료 충전 온도가 섭씨 25도인데 기존 90도에서 충전하는 핫필링 방식에 비해 얇은 페트를 사용하다 보니 원가도 줄고 친환경이라 일석이조다. 기존 차 음료에서 커피나 유제품, 탄산, 기능성 음료까지 확장할 수 있고 높은 초기 투자비 때문에 경제적 해자가 있다는 점도 투자 매력도를 높인다.
김범석 전 일간스포츠 연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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