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은 여성, 김영준은 남성… 디지털 성범죄 안전지대 없다

입력
2021.06.11 10:00
수정
2021.06.1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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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가장 남성들에 접근… 1300여 명 피해
박사방 조주빈, n번방 문형욱은 여성 대상 범행

남성 1300여명의 나체영상을 녹화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영준(29)이 11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남성 1300여명의 나체영상을 녹화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영준(29)이 11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이어 '제2의 n번방' 사건까지 일반인의 나체 사진·영상을 인터넷상에 대량으로 불법 유통하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물론 성인까지,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는 셈이다.

최근 검거돼 신상이 공개된 '몸캠 영상 유포' 사건의 주범 김영준(29)은 남성들을 목표로 삼았다. 여성으로 가장해 영상통화를 하면서 옷을 벗게 하거나 특정 동작을 하게 한 뒤 이를 녹화했다. 이렇게 촬영돼 인터넷상에 불법 유통된 영상은 경찰이 압수한 것만 총 2만7,000여 개에 달한다. (관련기사: 여성 가장해 남성 알몸 촬영·유포 피의자는 '29세 남성 김영준')

몸캠 영상을 피해자를 협박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몸캠 피싱과 달리 김영준은 영상을 판매해 돈벌이에 활용했다. 협박을 해오거나 금전을 요구하지 않아 남성들은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몰랐다. 피해 남성은 확인된 것만 아동·청소년 39명을 포함해 총 1,300여 명이다.

자신의 범행을 일종의 성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으로 여겼던 김영준의 범행은 치밀했다. 랜덤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주로 이용했고, 미리 다운로드받은 여성 BJ 등의 음란 영상을 활용해 여성 행세를 했다. 김영준이 소지하고 있던 여성 음란 영상은 4만5,000여 개나 됐다. 이 중에는 불법적으로 촬영된 영상도 있었다. 음성변조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성들의 입 모양과 비슷하게 말하며 피해 남성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김영준의 연기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속아넘어갔다.

지난해 3월 25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25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들의 피해는 더 극심하다. 지난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에 접수된 피해 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95%가 여성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 국민을 공분케 했던 'n번방' 사건의 주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은 아동·청소년 8명과 성인 17명을 대상으로 성착취물 등을 제작하고 텔레그램에서 판매·배포했다. 'n번방' 운영자 문형욱(26)은 아동과 청소년 등 34명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대다수 피해자가 여성이지만, 전문가들은 김영준 사건에서도 확인됐듯 남성에게도 디지털 성범죄의 안전지대는 없다고 지적한다. 성범죄 전문 신중권 변호사는 "남성이 등장하는 영상물에 대한 수요도 있어서 여성에 비해 적더라도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오히려 남성은 여성보다 심각성이 부각되지 않아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령·성별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디지털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는 불법 영상물을 보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제도·문화적 한계 탓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불법 영상물을 손쉽게 판매·유통할 수 있는 통로가 좀처럼 차단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성폭력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 한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플랫폼 운영자와 이용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해답을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불법 영상 생산자뿐 아니라 이용자, 운영자 등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유통로를 차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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