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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폐그물에 갇혀... 죽어가는 해양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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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한 마리에 3,500원, 냉동 갈치 한 마리는 4,000원, 조미김 한 봉(4g)에 400원, 참치캔은 한 통(100g)에 1,500원. 서민들의 밥상에 든든한 영양공급원이 되어 온 이 값싼 재료들은 모두 '아낌없이 주는' 바다에서 왔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바다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먹는다. 한 마리의 생선이 상에 오를 때마다 수백kg의 폐그물이 바다로 던져진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로.
"고기잡이에 사용한 그물의 85%가 바다에 버려진다고 해요. 이걸 ‘폐어구’ 쓰레기라 불러요. 사용한 그물, 밧줄, 통발 등 어업으로 만들어진 쓰레기죠. 바다에 얼마나 많은 폐어구가 잠겨 있는지 아시나요?” (시셰퍼드 코리아 박현선 대표)
자그마치 연간 4만4,000t에 달한다. 전체 해양쓰레기의 절반 규모다. 해양 정화 예산 2,000억 원 중 1,000억 원 이상을 쓰레기 수거에 쓰고 있지만, 그중 반의 반도 건져 올리지 못한다. 그 많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갈까. 바다 가장 깊은 곳에 고스란히 쌓인다. 새끼 물고기부터, 바다거북, 돌고래에 이르기까지 폐어구에 걸린 바다 생물은 종을 불문하고 목이 잘리고 숨이 막힌 채 죽는다. 인류가 ‘어머니’로 여겼던 ‘아낌없이 주는 바다’는 이제 없다. 이미 ‘소리 없는 학살지’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지난달 29일 글로벌 해양 환경보호단체 ‘시셰퍼드’ 한국지부 회원들과 함께 동해 바닷속에 잠겨 있던 쓰레기를 끌어올려 보았다. 해양 쓰레기 수거를 위해 고난도 다이빙 기술을 익히고 배운 아마추어 다이버 활동가들과 ‘쓰레기 천지’가 된 바닷속 사정을 들여다보았다.
“눈앞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보이는데도, 다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래된 폐그물과 밧줄, 통발의 철사들이 한번 서로 엉키기 시작하면 저희가 나이프로 일일이 절단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보고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 나올 때가 많아요.” 시셰퍼드의 수중청소 활동을 이끄는 채호석 활동가는 잠수를 마치고 뭍으로 나오자마자 수중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해저 바닥 면에 가라앉아 있던 통발을 뜯어내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새끼 볼락이 피를 뿜으며 튀어나왔다. 다른 통발을 뜯자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새끼 게들이 아장아장 모습을 드러냈다.
다이버들이 건져 올리는 쓰레기 중 가장 흔한 것은 ‘통발’이다. 한 번 들어간 물고기가 반대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설계된 이 원통형 어망은 어민들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즐겨 사용한다. 해저 바닥면에 가라앉은 폐통발 안에선 바다 생물이 걸려 죽는 ‘고스트 피싱(유령 어업)'이 일어난다. “통발 그물이 어찌나 억센지, 우럭 한 마리가 걸려 있었는데 몸통은 다 분해되고 머리 쪽 사체만 하얗게 썩어서 남아 있더라고요. 상괭이(보호종으로 지정된 토종 돌고래) 사체가 해안에 떠밀려 온 모습을 봤을 땐, 다들 말을 잇지 못했어요. 바다에 버려진 밧줄에 걸려들어 해안까지 떠밀려왔다가 물이 빠질 때 미처 탈출하지 못한 거였죠.” (김혜린 활동가)
낚시 쓰레기 역시 심각하다. 낚싯줄, 바늘, 찌, 미끼 등의 쓰레기는 폐어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해양 생태계에 끼치는 피해가 훨씬 크다. “바다에 남은 낚싯줄, 바늘 한 개가 필연적으로 한 마리의 물고기를 죽인다고 보시면 돼요. 우리나라 바닷속은 ‘암반 지형’이라 울퉁불퉁한 돌 표면에 낚싯바늘이 걸려 줄이 끊어지기 일쑤거든요. 이게 바닷속에 가라앉아 물고기들 목구멍에 박히는 겁니다.”(채호석 활동가)
방부제가 다량으로 첨가된 낚시 미끼는 썩지 않고 갯바위에 남는다. 갈매기들이 와서 쪼아 먹다가 낚싯줄을 삼키거나 낚싯줄에 발이 감겨 죽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엔 낚시 취미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도시 어부>(채널A)와 같은 TV프로그램의 대유행으로 낚시 인구가 1,000만 가까이 늘어났다. 특정 지역이 방송을 탈 때마다, 그곳의 바다 환경은 그야말로 초토화된다. 주말 동안에만 수백 척의 낚시 어선이 뜨기 때문에, 한동안은 물고기 구경이 힘들 정도로 ‘싹쓸이’된다. “서해는 조류가 강하고 시야가 어두워 다이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저희 같은 아마추어는 들어갈 수 없는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청소된 적이 없어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마어마한 수의 낚시 바늘이 쌓여 있을 겁니다.” (채호석 활동가)
“한번은 너무 답답해서, 인근 어민 분들께 냅다 여쭤본 적이 있어요. ‘대체 이 많은 쓰레기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라고요. 다들 멋쩍어하시면서 ‘우리가 버려서 그렇죠, 뭐’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바다 위에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사람들이 바다를 쓰레기장 취급하고 있다는 게.” (김혜린 활동가)
바다를 거대한 욕조에 빗대어, 쓰레기를 쏟아내는 수도꼭지가 틀어져 있는 상태를 가정해보자. 넘쳐 흐른 쓰레기를 ‘치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수도꼭지부터 잠그는 것'이다. 쓰레기가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온 동아시아 해양공동체 ‘오션’의 홍선욱 박사는 "청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껏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어업 종사자들의 책임부터 복원해야 한다. 이들이 더는 바다를 ‘감시자 없는 무주공산’으로 여기지 않도록 말이다.
정부도 마냥 손놓고 있지는 않다. 당장 내년부터 어구 보증금제를 도입한다. 어구에 보증금을 매기고 사용 후 쓰레기 집하장으로 되가져오면 돌려주는 제도다. 어민들에게 일반 어망이 아닌 ‘생분해성 어망’ 사용을 권장하는 한편, 잘게 부스러지는 스티로폼 부표 대신 ‘친환경 부표’를 배급하기도 한다. 2025년까지는 스티로폼 부표를 아예 없앤다는 계획이다.
하나같이 ‘그럴듯’해 보이나, 뜯어보면 허점투성이다. 일단 ‘어구·부표 보증금제’에 실효성에 있으려면 보증금의 액수가 충분히 커야 한다. 반납하지 않아도 딱히 손해보지 않을 정도의 액수라면 ‘있으나 마나’다. 생분해성 어망은 한참 과대평가됐다. 홍 박사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분해되는 데 최소 2년은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발생하는 ‘고스트 피싱’은 막을 수 없다”며 “어민들 또한 ‘어획 강도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용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부표 역시 자세히 보면 사실상 스티로폼을 플라스틱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잘게 부서지는 스티로품에 비해 '덜 해로울 뿐' 플라스틱 부표 역시 바다 환경에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홍 박사는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친환경 부표는 스티로폼의 대체제로서 강도나 내구성 등의 기능성만을 내세운 것"이라며 "실제로 바다 환경에 얼마나 무해한지에 대해선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현선 대표 역시 "아무데나 '친환경'이라는 명칭을 갖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어구 실명제’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어민들이 자신의 실명으로 사용할 어구를 등록하고, 사용 후엔 의무적으로 반납하는 제도다.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어구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2016년 해양수산부가 이와 같은 내용을 직접 반영한 ‘어구관리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어민들의 눈치를 보는 사이 장기 계류하다 자동 폐기됐다.
또 한 가지 대안은 ‘유실 어구 신고제’다. 폐어구를 바다에서 잃어버렸을 때,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제도다. 어구는 바다 표면에 떠 있을 때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바로 건져올리면 상당 부분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해양환경 평가를 통해 인근 생태에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는 곳이거나 선박이 자주 다니는 곳 위주로 유실된 폐어구를 찾아내면 적은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홍 박사는 "24만 명가량 되는 어민들이 정부가 통제 가능한 제도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어구의 생산부터 유통, 소비, 수거,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양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이상한 사람’ 보듯 해요. 이렇게 쓰레기를 버려대다간 딱 27년 후부터 바다 생물이 모조리 멸종한다고 해도요.” (박현선 활동가)
없는 시간 쪼개고, 자비를 들여 하는 활동이지만 주변의 인식은 아직도 처참한 수준이다. 해양 쓰레기의 문제점에 대해 설파하려 들면, 사람들은 해맑게 반문한다. "해변에서 잘 놀고, 뒷정리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바다에 버려지는 폐어구들은 해양동물만 죽이는 게 아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부서지고 흩어진다. 5mm 이하로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어 축적되고, 이를 소비하는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날 동행 취재한 시셰퍼드 코리아의 ‘수중 청소 현장’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투에 가까웠다. “흔히들 ‘다이빙’ 하면 투명하고 맑은 바다 속을 헤엄치는 낭만적인 모습을 떠올리시잖아요. 여기선 정반대예요.(웃음)” (박현선 활동가)
이날의 수온은 5도였다. 물 밖은 완연한 여름이어도 물속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이가 딱딱 부딪히는 추위죠. 게다가 동해바다는 시야도 어두워서 능숙하지 않은 초보 다이버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에요. 통발 철사에 찔려 파상풍을 입거나 낚시줄에 몸이 감기는 경우도 많고요.”
열악한 인식, 척박한 조건에서도 해양정화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를 물었더니, ‘인간 없는 바다를 본 적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필리핀의 투바타하라는 해양 보호구역은 1년 중 딱 3개월만 인간의 출입이 허용되거든요.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천연색 산호 위에 고래상어와 온갖 희귀 어종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더라고요. 그 아름다움이 저는 너무나 슬펐어요. '아, 인간 없는 바다는 이토록 천국 같은 모습이구나' 싶어서요. 이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찾고자 움직이게 됐죠.” (채호석 활동가)
또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래가 변할 거라는 확신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있으니, 그걸 하는 것일 뿐이죠.”(김혜린 활동가)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나 하나쯤이야’보다 ‘나 하나라도’에 미래를 걸겠다는 의지였다.
다행스러운 건, 희망이 아주 없진 않다는 거다. "물론 지금처럼 하다간 '공멸'을 면치 못하겠지만, 솔직히 늦진 않았어요. 바다는 인간이 손만 대지 않으면 ‘무서운 속도’로 회복하거든요." (홍선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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