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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이 4000원… "구걸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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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낯설지만 곧 익숙해진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들. 온델온델(ondel ondel), 마누시아실버(manusia silver), 바둣맘팡(badut mampang), 픙아맨(pengamen) 등 명칭은 제각각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뭉뚱그려 구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걸인은 아니다. 거리를 무대 삼아 각자 지닌 투박한 예능을 애써 선보인다. 실제 평범한 걸인을 뜻하는 픙으미스(pengemis)는 따로 존재한다.
이 땅의 거리를 채우는 풍경은 인도네시아 특유의 해학과 삶의 긍정을 담고 있다. 먹고 살기 팍팍한 현실이 투영된 사회의 그늘이기도 하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실업률은 15~19세 24.34%, 20~24세 18.71%, 25~29세 9.77%였다. 전염병 사태가 일자리를 더 앗아갔다.
출퇴근길 차창 너머로 동전을 건네거나, 산책길 지나쳤던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자카르타 도심과 외곽, 근접 도시에서 사흘에 걸쳐 그들을 만났다. 한 달 전 일체의 구걸 행위를 금지하는 대대적인 단속 탓에 1,300명이 자활시설로 옮겨진 영향으로 만남은 더뎠다.
4,000원에 불과한 하루 벌이(올해 자카르타 최저임금은 월 34만4,000원)가 그들에겐 엄연한 직업이다. 대부분 취재에 당당히 응했고 사진 촬영도 허락했다. 이들의 지나친 구걸 행각을 문제 삼는 보도도, 이들에게 불쾌한 경험을 당했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무작정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직접 만나 귀를 기울이니 불법 꼬리표를 달고도 최선을 다하는 직업의식, 소박하지만 울림이 있는 삶의 꿈이 이방인의 오만과 편견을 녹였다. 그들을 소개하고 각 직업을 부연한다.
자카르타 도심 블록엠(Block M) 스퀘어에서 뒤뚱거리는 온델온델을 만났다. 온델온델 인형을 벗자 선한 눈빛의 청년 하산(19)씨였다. 그는 원래 편의점(인도마렛)에서 일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해고됐다. 온델온델 일을 한 지 2개월째다. 직접 대나무랑 옷감이랑 플라스틱 가면을 사서 무게 3㎏짜리 온델온델 인형을 만들었다. 하루에 10만 루피아(약 8,000원) 정도 버는데 함께 일하는 친구와 똑같이 나눈다. 편의점 월급이 450만 루피아였던 걸 감안하면 적은 금액이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동생 세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직장을 구할 수 없고 뭐라도 해야 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오후 6시까지 인형을 쓰고 걸으면 다리가 너무 아프고 더워요. 동생들 학교 잘 보내는 게 꿈입니다."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다시 인형을 쓰고 금세 사라졌다.
자카르타 외곽 데폭 도로에선 제대로 된 3m짜리 온델온델을 만났다. 무게 15㎏인 온델온델 인형을 몸무게 37㎏인 테피(19)씨가 쓰고 있었다. 중심 잡기도 힘들 텐데 그는 인형을 쓰고 제자리를 빙빙 도는 전통 춤을 췄다. 체리(19)씨는 돈을 받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파렐(19)씨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확성기를 밀었다. 하루 벌이를 나누면 일인당 5만 루피아(약 4,000원)가량이 수중에 들어온다. "춤은 동호회에서 배웠어요. 인형은 매일 10만 루피아씩 주고 빌려요. 집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죠. 식비랑 휴대폰 데이터 충전비용은 벌 수 있으니까요. 꿈이요? 원래 경찰이었는데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조금만 더 벌면 좋겠어요."
온델온델은 자카르타 토착 부족인 브타위족의 전통 문화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대나무로 엮은 큰 인형(보통 크기 2m, 무게 15㎏)으로 악귀 등 모든 재난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다. 브타위어로는 걸을 때 인형 움직임을 따서 '곤델곤델(흔들거리다)'이라 불린다. 서양 문헌에는 16세기부터 등장한다. 영국 연구자는 온델온델이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썼다. 환영 행사에서 공연도 하고, 정부도 이를 활용하는 등 자카르타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10여 년 전부터 빈자와 실업자가 온델온델 공연을 빌미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면서 용도가 변질됐다. 대부분 청소년이다. 주로 온델온델 동호회가 무료로 춤을 가르치고 인형을 빌려준 뒤 대여료를 받는다. 통상 한 명이 인형을 쓰고 다른 한 명이 확성기를 민다. 인형 가격이 250만 루피아(약 20만 원)로 비싼 편이라 하산씨처럼 재료를 구해 직접 만들기도 한다. 2014년 온델온델의 구걸 행위가 금지된 바 있으나 흐지부지됐다가 예술계와 시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최근 자카르타주정부가 단속 및 처벌을 강화했다. 4월 말엔 온델온델 100명이 붙잡혔다. 이 때문에 자카르타 외곽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마누시아실버는 '은색 인간'이라는 뜻이다. 자카르타 도심 대형 몰 주차장에서 만난 레나(35)씨는 정산을 하려고 대기 중인 차량과 오토바이에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그는 온전한 은색 인간이 아니었다. 동료 리안(30)씨는 적색 인간에 가까웠다. "원래 붉은색 염료를 발라요. 그게 마르면 은색으로 변하죠. 이거 보세요, 여긴 말라서 은색이죠. (실제 그의 얼굴은 은색인 반면 들고 있는 종이 상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를 때 5분, 씻어낼 때 5분 정도 걸려요. 가렵고 따가워도 어쩔 수 없죠. 하루에 보통 10만 루피아를 버는데 이틀치 염료 값을 빼면 5만 루피아가 남아요."
그는 15, 12, 8세 3남매의 엄마다. 마누시아실버로 일하던 남편이 3개월 전 죽자 일을 물려받았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일은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다. "1,000루피아(80원) 동전도 주고, 지폐를 주는 분도 있어요. 부끄럽지는 않은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남편이 힘들었겠구나 싶어요. 그래도 사람들 덕분에 아이들을 먹여 살리니 감사하죠." 그는 인터뷰 중에도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들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누시아실버는 제 몸을 상해가며 남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등유 등을 섞어 몸에 바르는 염료는 발진과 물집 등 피부에 해를 끼친다. 장기적으로 폐와 신장, 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주방세제나 빨래세제로 씻어내야 한다. 현지인들은 약 8년 전부터 관광지와 거리에서 마누시아실버를 목격했다고 말한다. 레나씨가 말했다.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으면 안 하죠. 남편도 저도 초등학교만 나왔어요. 매일 염료를 바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이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자카르타 동남쪽 치부부르의 교통 정체 구간에서 황토색 쥐 인형이 쉴 새 없이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량 20대가 지나가면 겨우 한 대가 차창을 열고 돈을 건네는 정도였다. 탈을 벗으니 아내와 7세 아들을 둔 에코(30씨)였다. 그는 건설 노동자로 일했지만 일이 끊겨 4년 전부터 거리로 나왔다. 인형도 자기 것이 아니다. "매일 번 돈의 절반을 인형 대여료로 지불하면 5만 루피아가량 남아요."
바둣은 광대, 맘팡은 남부자카르타의 지역 이름이다. 맘팡 지역에 처음 나타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짧은 인형이었으나 최근엔 미키마우스, 도라에몽, 텔레토비 등 만화영화 주인공들 인형이 많다. 주인공 이름을 따서 '바둣도라에몽'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라 130만~150만 루피아(약 10만~12만 원)인 인형을 빌려 쓴다. 해질녘 주택가에선 머리에 쓴 탈을 벗어 들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끌며 가족에게 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퇴근길에 아구스(18)군 형제를 만났다. 아구스군이 기타를 치고 동생(8)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차들 사이를 누볐다. 거리 악사 픙아맨이다. 차량들은 대개 무심히 지나쳤지만 형제의 낯빛은 밝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게 좋아서 힘들지 않아요. 가끔 (운 좋게) 1만 루피아(800원) 지폐를 주는 분도 있거든요."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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