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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연기천재'라 한 심은경... 일본에만 있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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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연기 천재다.” 배우 이병헌이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촬영 전 심은경(27) 출연 영화를 보고 내린 평가라고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촬영하면서 이병헌의 평가는 확신으로 변한 듯하다. 그가 설립한 매니지먼트 회사 BH엔터테인먼트는 심은경이 미국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전속 계약을 맺었다. 천재라는 형용사가 과용돼 진정한 천재를 가리키기 어려워진 시대지만 심은경은 천재라는 수식이 딱 들어맞는 배우다.
심은경은 9세 때 데뷔했다. 드라마 ‘대장금’(2003)을 통해서다. 연기 입문 계기는 좀 특이했다. “성격을 좀 더 자신감 있게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피아노학원 (한번)더 다닌다는 생각으로 연기학원을 다녔다”고도 한다.
취미처럼 입문한 연기로 그는 10대 시절 이미 충무로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을 성취를 일궜다. 영화 ‘써니’(2011)로 관객 745만 명을 모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000만 관객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촬영한 ‘수상한 그녀’(2014)는 866만 명이 봤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3연타석 만루홈런을 쳤다고 해야 할까.
인상적인 연기를 꼽자면 한둘이 아니다. 그중 뇌리에 박혀 간혹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써니’에서 나미(심은경) 일행이 이웃 학교 노는 학생들과 욕 대결을 펼칠 때 심은경의 재능이 번뜩인다. 나미는 귀신이 빙의한 듯 눈동자를 뒤집고선 욕을 두서없이 쏟아낸다. 친구 춘화(강소라)가 나미를 ‘맨발의 광녀’라고 소개할 때 입술에 머금게 된 웃음은 이 장면에서 폭발하게 된다. 욕설을 끝내고선 나미가 낮은 목소리로 내는 말은 “배고파”다. 심은경이 이전에 출연한 공포영화 ‘불신지옥’(2009)을 본 이들이라면 이 짧은 대사에 함축된 서늘한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 소녀 소진(심은경)이 신들려서 하는 말이 “배고파”이기 때문이다. 강형철 감독은 심은경을 통해 심은경 연기에 대해 오마주를 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성인이 된 후 출연한 영화들은 10대 시절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 ‘널 기다리며’(2016)와 ‘조작된 도시’ ‘특별시민’(2017), ‘염력’ ‘궁합’(2018) 등이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봤다. 영화들에 대한 평가도 호평보다 혹평이 앞섰다. 심은경의 연기 역시 빛바래 보였다. 아역배우는 성인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영화계의 오랜 속설을 심은경 역시 넘지 못하는 듯했다.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걸까. 심은경은 2019년 이후 활동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일본 영화 ‘신문기자’(2019)와 ‘가공 OL일기’ ‘블루아워’(2020) ‘동백정원’(2021)에 연이어 출연했다. 2019년엔 ‘착한 아이는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로 일본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아노니머스 경시청 ‘손가락 살인’ 대책실’(2021)에 출연했고, 방송 중인 드라마 ‘7인의 비서’에도 나오고 있다.
심은경은 ‘신문기자’로 지난해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올해 3월 열린 시상식에선 사회자로 나서기도 했다. 일본에서 자란 적 없고, 일본 유학을 한 적도 없는 배우가 만들어낸 성과라 믿기 어렵다. “일본어에는 (한국 배우가) 넘을 수 없는 미묘한 발음이나 느낌들이 있는데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언어가 안 되는 배우를 막 캐스팅하지 않을 텐데 (심은경이) 정말 노력하는 거 같다.” 일본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주희 앳나인필름 이사의 평가다.
심은경이 열도에서 전해 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아쉽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보석을 일본 영화계에 뺏긴 듯해서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은 심은경의 근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깝다”고 탄식 섞인 반응을 보인다. 심은경은 일본 매니지먼트 회사 유마니테에 소속돼 있고, 한국에는 소속사가 없다. 심은경은 지난해 국내 드라마 ‘머니게임’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당분간 한국보다 일본 활동에 주력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국 영화로 심은경의 신들린 연기를 보고 싶다는 바람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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