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주인 몫인데, 그린벨트 해제 이익은 LH가 챙겨

입력
2021.06.10 04:30
수정
2021.06.10 12:5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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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철거민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을 표방한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은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개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브랜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합니다.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뉴스1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뉴스1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인 경기 남양주 왕숙지구는 전체 면적 약 1,133만7,000㎡ 중 95%에 해당하는 1,077만3,000㎡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역이다. 당연히 비그린벨트지역에 비해 토지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다.

신도시를 짓기 위해 그린벨트가 해제될 예정인데 문제는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땅값 상승의 수익은 원래 땅주인이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점이다.

왕숙지구의 한 주민은 “내 땅을 강제수용한 후에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토지용도를 농지에서 대지로 바꾼 뒤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데, 그러면 이곳 부동산 가격이 최소 몇 백 배는 뛰는 것 아니냐”라며 "그 차익을 고스란히 LH가 챙기게 되는데,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공기업 배를 불린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허탈해했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전답(농지) 1평당 15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왕숙지구의 또 다른 주민은 “인근 다산지구의 30평대 아파트가 9억~10억 원에 거래되는 등 이 일대 부동산 가격은 평당 3,000만 원을 넘어섰다”며 “이 지역도 개발이 완료되면 결국 다산지구의 땅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할 텐데, 보상금으로 평당 150만 원을 지급하는 게 사실이라면 LH는 평당 2,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남긴다는 소리”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LH 측에 최근 5년간 그린벨트 해제 후 부동산 분양으로 얻은 수익을 문의했지만 “사업손익 평가에는 토지 취득 및 공급 유형과 시기, 자본과 손익의 관리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다양한데, 각각의 세부단위를 구분 산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신련) 자료를 통해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LH 수익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는 있다. 경실련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그린벨트 해제 후 조성한 판교신도시 분양 과정에서 LH는 ‘부동산 장사’로만 수조 원대의 이익을 올렸다. 경실련 측은 “추정 조성원가(3.3㎡당 530만 원)보다 높은 1,270만 원에 땅을 파는 등의 방식으로 당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6조1,000억 원의 이익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영업비법 덕분인지 최근 LH의 이익은 증가 추세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LH의 영업이익은 △2015년 1조4,711억 원 △2016년 3조1,756억 원 △2017년 3조14억 원 △2018년 2조6,136억 원 △2019년 2조7,827억 원 △지난해 4조3,34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무려 56%나 급증했다.

폭리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라는 지적에 대해 LH 관계자는 “의도적인 폭리가 아니고,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토지 매각이 호조를 보인 결과”라며 “늘어난 영업이익은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에 쓰이는 등 주거복지의 재원이 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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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 곳 없는 세입자·영세가옥주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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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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