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검찰총장 김도언은 1995년 총장 퇴임 직후 민자당 부산 금정을 지구당 위원장이 된 후 이듬해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검찰총장이 재임 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집권당 의원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총수가 초선의원이 된 것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회는 1996년 검사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도록 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경찰청장도 퇴임 직후 정치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1997년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은 퇴직일부터 2년 이내에는 공직에 임명되거나, 정당의 발기인이 되거나 당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날 개정된 경찰법에도 같은 내용이 신설되었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재직 시 공정한 직무수행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경쟁력 있는 퇴직자들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견제하려고 국회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과 7명의 고등검사장은 법이 통과된 지 9일째 되던 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했다. 그들은 위 법 때문에 검찰총장 퇴직 후 2년 이내에 모든 공직에의 임명이 금지되고, 정당활동을 제한받게 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6개월 만에 매우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 검찰총장은 퇴임 후 2년 이내에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직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에의 임명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국·공립대학교 총·학장, 교수 등 학교의 경영과 학문연구직에의 임명도 받을 수 없게 되었기에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위헌결정을 내렸다.
다만, 재판관 조승형은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임명될 당시부터 퇴임 후의 보다 나은 공직이나 정당 특히 집권 정당에의 유혹을 배제하게 함으로써 집권자나 집권층(집권정당)을 의식하지 아니한 채 소신을 가지고 검찰권 행사를 공정하게 지휘할 수 있게 하고, 그 금지 기간이 2년에 불과하고, 이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으므로 그 적절성이 인정된다”는 합헌의견을 냈다. 생각건대 퇴직 후 선출직 공무원에 취임하는 것만을 금지시켜야 하는데, 금지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다 보니 위헌결정이 난 것 같다.
그 후 경찰청장과 경찰청 차장 등도 경찰청장의 퇴직일부터 2년 이내에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경찰법 규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1999년 위 법률조항이 경찰청장 직무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했다. 공직자가 퇴직 후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은 계속되었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 퇴직 후 2년간 교육공무원이 아닌 공무원 임명 또는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위헌결정이 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재직 시에 대선후보로 거론되자, 지난해 12월 검사가 퇴직한 후 1년 동안 공직후보자로 출마하는 것을 제한하자는 법안이 나왔다. 이미 위헌결정된 선례가 있음에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검찰총장의 영향력 때문이다. 지방을 떠돌던 검사가 중앙지검장이 되고,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발탁한 정권을 뒤집어엎을 '기대주'가 되어 있다. 아직 대선후보로서의 능력이 검증된 바도 없는데, 아침 안개 같은 지지율만 오르내리고 있다. 과거 검찰총장은 초선 국회의원도 감지덕지했는데, 지금은 대통령을 넘보고 있다. 정권의 동반자로 머물던 검찰이 이제는 정권 교체자로 직접 나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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