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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파트너이고, 정체성이고, 추억이다

입력
2021.06.07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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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딸 육아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면서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한다며 옷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 안에는 그가 평소 입는 연한 회색 티셔츠와 진한 회색의 모자 달린 후디(hoodie)만이 여러 벌 걸려 있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항상 청바지와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터틀넥(turtleneck)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이 이런 캐주얼 복장으로 공식석상에 나왔다고 흉보는 이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옷차림보다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화려한 패션쇼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에게 우리가 열렬한 갈채를 보내면서도, 정작 그 사람의 의상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옷차림에 관대한 태도는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서양인들은 평상시에 아주 검소한 차림이다가도, 특별한 모임이나 행사에는 시간, 장소, 경우(TPO: 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옷을 근사하게 잘 차려입는다. 일반인도 그러하거니, 그들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의 복장에 대한 관심은 정말 유별나다. 미국 할리우드 시상식 시즌이 되면 ‘누가 무슨 의상을 입었느냐’에 쏠리는 흥분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2011년 영국에서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왕실 결혼식이 거행되었을 때, BBC 방송은 영국패션이 승리하였다고 자축했다.

한국인의 옷에 대한 태도에는 ‘보수성’과 ‘유행에 민감함’이 공존한다. 눈에 너무 띄는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을 칭송하고,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자칫 사치와 결부되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리고 날이 덥다고 서양인들처럼 노출이 심한 것을 입는다면, 엄마에게 바로 등짝을 맞거나 동네 어른들에게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복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옷이 날개’라는 충고나 ‘단벌신사’라는 별명을 듣게 된다. 옷을 잘 입기 위해서 그때그때 유행을 따르는 것도 좋아한다. 한국 중년층이 평상시 즐겨 입는 등산복도 빼놓을 수 없는 패션이리라.

옷장은 회사와 같은 유기적인 조직체다. 옷은 회사의 직원이고, 쇼핑은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다. 사원들이 서로 협업을 하며 일하듯, 장롱 속의 의상도 다양하게 섞어가며 조화롭게 입는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가 중요하다. 그리고 부족한 인원과 새로운 분야의 인재를 충원하듯, 새로 구매한 옷들은 작금의 유행을 보여주고 신선한 스타일링을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회사에 기여도가 낮거나, 연로한 직원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 재교육, 재취업, 정년퇴직 등의 방법이 있다. 마찬가지로, 많이 입은 일이 없거나 오래되어 낡은 옷들은 새롭게 수선해서 입고, 다른 사람에게 주고, 또는 기부한다.

진정한 패션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양한 옷차림을 시도하되 개성을 찾아내는, 즉 보편성 속에 독자성을 이루는 일이다. 패셔니스타에게 옷장은 단순히 의상을 넣어 보관해두는 곳만도 아니다. 색깔별, 길이별, 계절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장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하나하나에 사연과 역사가 있고, 만남과 추억도 떠오른다. 옷들이 마치 살아서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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