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학생에게 노예제도 아픈 역사 장난친 美 백인 교사 논란

입력
2021.06.07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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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6월 2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베데스다=AFP 연합뉴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6월 2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베데스다=AFP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州) 사카자위아중학교에 다니던 흑인 쌍둥이 자매 엠자이와 피젤ㆍ지에쇼엔 피젤은 최근 학교를 자퇴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3일 사회 수업 시간. 자매의 사회 교사는 산업경제학을 가르치던 중 목화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냈다. 이어 “재미있는 활동을 하자”면서 누가 면화를 가장 먼저 청소하는지 보자고 했다. 흑인 노예가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주로 일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행동이었다.

자매는 엄마에게 이런 상황을 전했다. “우리는 노예 무역이나 노예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요. (그 수업의) 교훈은 노예가 단지 목화를 따고 청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엄마 브랜디 피젤이 학교 교감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건 “자매를 수업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답이었다. 백인인 사회 교사와 두 자매가 접촉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피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 USA투데이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 미국시민자유연합’의 성명을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죽음 이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1년 동안 이어진 미국. 그러나 인종 문제와 관련된 학교 교육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지는 양상이다.

앞서 2월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에게 채찍질을 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인종차별 용어인 ‘N단어’를 두고 “무식하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말한 사실이 논란이 된 뒤 급여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한 달 뒤에는 미시시피주의 한 중학교 관계자가 학생들에게 노예가 된 것처럼 행동하도록 요구했다가 사과해야 했다.

이런 일 이전에도 테네시주에서는 ‘노예 만들기’ 숙제를 냈던 교사가 문제가 됐고, 뉴욕주에서는 흑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백인 학생의 모의 노예 경매가 비판을 받았다. USA투데이는 “전문가들은 이런 부주의한 과제와 교훈이 학생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며 “미국의 교사들이 오랫동안 노예제도의 복잡한 역사를 가르치는 데 갈등을 겪고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금지된 것은 1964년 민권법 통과 덕분이다. 하지만 노예제도와 흑백 인종 분리 정책에 따른 흑인 차별의 유구한 흐름은 여전하다. 흑인들의 선거 참여를 막아 정치 권리 행사를 저해할 것이라는 투표 제한 관련 법도 각 주에서 잇따라 통과되고 있다.

쌍둥이 자매의 엄마 피젤은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안전한 환경을 갖는 것이라는 점을 내 딸들이 알게 하고 싶다”며 “딸들이 자신들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흑인 차별 완전 해소까지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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