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넷추왓추] ‘자연인’ 자처 참전용사… 딸까지 세상과 단절돼 살아야 하나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부녀 사이는 좋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뜨겁고, 딸은 아버지를 잘 따른다. 문제는 생활 방식이다. 아버지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택했다. 숲에서 지내며 소비를 최소화하려 한다. 자연에 피해를 최대한 안 주면서 자연에 기대 살아간다. 혼자는 지속 가능한 삶일 수 있지만, 딸까지 가능한 일일까. 영화 ‘흔적 없는 삶’(2018)은 소박하지만 남다른 이야기로 공명 큰 메시지를 전한다.
아버지 윌(벤 포스터)은 참전 용사다. 명확히 묘사되진 않지만 참전 후유증에 시달린다. 동료의 전사를 지켜보고 마음의 상처를 얻은 건지, 잔혹하게 죽은 적의 시신을 목도하고 가치관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문명을 혐오한다. 인간이 지구를 망친다고 여긴다. 사는 동안 삶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올바른 인생이라 생각한다. 거주지는 숲 속 텐트다. 이슬이나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쓰거나 몸을 씻는다.
10대 딸 톰(토마신 맥켄지)은 아버지의 생활 방식을 묵묵히 따른다. 아니, 따를 수 밖에 없다. 홀로 살기엔 어리다. 세상에 나가 기댈 곳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두 사람의 삶은 종종 위협 받는다. 둥지를 튼 깊은 숲은 취사 불가다. 국립공원이라 사람이 허가 없이 야영할 수 없다.
부녀는 단속반을 피하기 위해 훈련하고 대비한다.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보호소 신세를 지게 된다. 톰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안락한 생활을 누린다. 문명이 톰의 삶을 흔든다. 톰이 접한 세상은 호화롭지 않다. 소박해서 더 매혹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 통조림 토마토로 만든 수프는 간편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데워준다.
톰은 의문이 생긴다.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우리도 남들처럼 살면 안 될까, 도시의 삶은 어떤 느낌을 줄까. 윌은 그런 딸이 불안하다. 남들처럼 살면 안 된다고, 신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안다. 윌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윌도 안다. 자신이 딸을 붙잡아 둘 수 없음을. 톰은 고뇌한다. 새롭고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 것인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아버지 곁을 지킬 것인가. 이별은 가슴 저미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삶은 미래가 없다.
영화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의 신념으로 자녀의 삶을 한정 짓는 건 올바른가. 극단적인 이상 추구는 옳은 것인가. 영화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각자의 삶이 있다고 은근히 이야기한다. 자연을 존중하는 삶도, 문명에서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는 삶도 존중 받아야 한다고.
넓게 보면 부모와 자녀에 대한 은유다. 자녀는 자라면 부모 품에서 멀어진다. 크든 작든 갈등은 따른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삶을 개척해야 한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생각이 다른 이들끼리 또는 삶의 방식이 다른 이들끼리 소통과 교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데브라 그래닉이다.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중 한 명이다. 영화 ‘윈터스 본’(2010)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사회 낮은 곳 또는 감춰진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 보편적인 감성을 불러내 온 감독이다. ‘윈터스 본’이 제니퍼 로런스라는 걸출한 배우를 발굴했다면, ‘흔적 없는 삶’은 토마신 맥켄지라는 될 성 부른 신인을 소개한다. 톰은 “아빠(Dad)”라는 단어를 당연하게도, 종종 쓰는데, 맥켄지는 이 단어에 호기심과 놀라움과 절망과 기쁨과 슬픔을 각기 담아낸다. 숨은 연기파 배우 벤 포스터의 연기도 명불허전이다. 울음을 참아내는 연기가 마치 터질 듯한 댐 같다. 이 영화는 왓챠에 숨어 있는 보석이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100%, 관객 80%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