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으로 참모총장 경질, 창군 이래 처음... 공군의 '치욕'

입력
2021.06.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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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80분 만에 수용했다.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뜻이다. A중사 사망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 나흘 만이다.

군 최고 지휘관인 참모총장이 성폭력 사건 대응 실패로 물러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군 최고 지휘부가 경질된 것도 이례적이다. 국민의 분노가 크고,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수사 상황에 따라 서욱 국방부 장관을 추가 경질할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수사 막 시작했는데 사퇴... "엄중 문책성 경질"

이 전 총장은 "성추행 공군 사망 사건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고인에게 깊은 애도와 유족께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면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취임했다.

이 총장의 불명예 퇴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지난 3월 성추행을 당한 공군 소속 A중사가 상부의 조직적 은폐 시도와 2차 가해에 괴로워하다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군의 대응은 '총체적 무능'이었다. A중사를 성추행한 상관이 최소 2명 더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수뇌부 문책은 '시간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격노했다. 3일 "최고 상급자까지의 보고·조치 과정을 포함해 지휘 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굉장히 가슴 아파한다"(2일) "문 대통령의 목이 메었다"(3일) 등 문 대통령이 격분한 사실을 가감 없이 알렸다.

이에 따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연쇄 경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고 지휘라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서 장관 경질까지 검토하느냐는 질문엔 "(수사) 과정을 지켜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전 총장 경질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요법'인 데다 장관 교체 시 국회 인사청문회 리스크가 생기는 만큼, 문 대통령이 서 장관 거취 문제는 보다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군검찰, 공군본부 압수수색... 초동수사 부실 입증 주력

군 당국 수사는 뒤늦게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군검찰은 4일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압수수색했다. 15비행단은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전속한 부대다. 유족들은 A중사가 15비행단에서도 '관심 병사' 취급을 당하는 등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도 A중사의 성추행 피해 당시 소속 부대인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 성범죄수사대를 투입했다. 성범죄수사대는 부대에 상주하면서 초동 수사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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