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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없는 공정이 보수 미래인가

입력
2021.06.03 18:00
수정
2021.06.06 1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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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변화 기대 속 커진 이준석 바람
약자 내모는 변화에 환호해도 좋은가
기성 정치 실패에 ‘나쁜' 세대 교체 씁쓸

3일 대구시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조경태, 나경원, 주호영 후보. 뉴스1

3일 대구시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조경태, 나경원, 주호영 후보. 뉴스1


세대 교체는 미래지향적이고 변화는 늘 좋은 것인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돌풍에 박수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경쟁을 더 격화시킬 위험천만한 능력주의가 20대 남자의 소외감을 덜어줄 해법처럼 제시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 기존의 보수 정치와 다르기만 하면 혐오 정치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당대표 공약, 인터뷰, 저서를 통틀어 이 후보가 유일하게 제시한 비전은 ‘공정 경쟁’이다. 공정이란 말로 청년층을 유혹하지만, 그의 지향점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려치 않은 무한경쟁이니 사실상 '능력자들끼리의 줄세우기'라 할 것이다. 많은 비판을 받은 할당제 폐지 주장에 대해선 그 자신이 수혜자였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엑셀, 토론 등으로 겨뤄서 공천 자격을 주자는 제안도 문제적이다. 고학력자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소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시험 잘 치르는 머리, 토론 잘하는 언변이, 예컨대 이선호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공감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정치인의 자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달 노동자 과로사에 대해서도 시장의 자유경쟁을 책으로만 배운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일감을 줄이지 않은 본인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의 언어는 공감이 아닌 공정·경쟁이어야 한다”(5월 31일 MBC ‘100분 토론’)는 이 후보의 발언은 그의 정치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시사한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발언 속 메시지에 나는 아연했다. 정말 보수 정치는 약자의 삶에 공감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건가. 애초에 정치가 공감 없이 가당키나 한가. 소수자·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공동체 연대를 와해하는 부작용이 능력주의의 본질적 문제임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누누이 지적한 바 있다(‘공정하다는 착각’).

그러니 이준석 바람의 발원지가 반페미니즘이었고 그가 한중문화타운 사업을 ‘저급 차이나타운’이라며 외국인 혐오를 자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수자·약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지지층을 동원한 점에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와 닮았다.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인종차별 시위, 아시안 혐오, 백신 기피 등을 선동해 일으킨 사회적 분열과 비용은 막대했다. 2021년 한국에서는 포스터 속 손가락 디자인이 남성 혐오라는 황당한 주장 때문에 GS25가 사과하고 해당 직원을 징계했다. 페미니즘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아동복지재단이 후원 중단 압박에 시달리고 포스텍의 디지털 성범죄 강연이 무산되는, 믿을 수 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광풍이 공공연히 페미니즘을 20대 남자의 적으로 몰아간 이 후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혐오 정치의 폐해는 이미 시작됐다.

이 후보가 당대표에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한국형 트럼피즘의 성공 가능성을 보인 ‘이준석 현상’이 나는 심각하게 걱정스럽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인기를 끄는 포퓰리즘 정치가, 기득권층의 이해에 복무할 능력주의를 청년 문제의 해법인 양 제시하면서도 환영받는 현실이, 이 때문에 공동체적 해결이 더 어려워질 미래가 두렵다. 2000년대부터 청년층의 불안과 불만이 심상찮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기성 정치가 이를 무시하고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은 결과다.

정당들은 청년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엉뚱한 표적에 분노를 쏟아내도록 하는 트럼피즘을 해답으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숨막히는 경쟁을 완화하고 기회를 늘리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최고의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는 일자리로서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1990년대부터 뿌리내린 신자유주의 질서를 바꾸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정치가 외면해 온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김희원 논설위원
대체텍스트
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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