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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처럼 유인구에 안 속아야 주식으로 돈 번다

입력
2021.06.05 12:00
수정
2021.06.05 12:36

편집자주

여러분의 주식 계좌는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25년 연예 전문기자 김범석씨가 좌충우돌하며 겪은 스타들의 이야기와 가치투자 도전기를 전해드립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아저씨'의 원빈. 한국일보 자료사진

원빈이 이나영과 사귀기 전 소속사 스타제이 이상훈 부장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오전 9시에 기자를 찾는 전화는 확률상 좋지 않은 상황 쪽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님, 방금 포털에 올라온 기사 봤는데 내용은 크게 반박할 게 없는데 제목이 좀 그렇네요. 원빈씨한테 올림픽 배우가 뭡니까? 제목을 고쳐 주실 수는 없을까요."

줄잡아 평균 4년에 한 편씩 작품 활동하는 원빈을 '올림픽 배우'라고 타이틀을 붙였는데 그게 못마땅했던 거다. 아무리 선의로 작성된 기사라도 흥미유발성 제목 때문에 티격태격 소모전을 벌이는 일이 많았던 터라 이때도 겨우겨우 설득해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SBS 드라마 '야왕'을 시작으로 JTBC '로스쿨'까지 드라마 제작자로 거듭난 이상훈 대표는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할 말이 부쩍 많아진다.

"어휴 이제야 말하지만, 원빈씨도 그런 기사를 달가워할 리가 없죠. 왜 이런 뜬금포 기사가 나는 거냐며 매니저에게 한마디 하죠. 근데 진짜 문제는 화난 팬들이에요. 회사가 얼마나 배우 관리를 못 하고 무능하면 이런 기사가 나냐며 한바탕 난리가 나요. 항의 전화 빗발치고 팬클럽 임원들은 소속사에 당장 기사 내리라며 대책을 촉구하죠. 정말 울고 싶은 날이에요."

원빈의 연기를 자주 보게 해달라는 취지로 기사를 썼지만, 막상 본인과 매니저는 심기가 불편했다고 하니 표현력과 전달력이 부족한 기자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궁금한 건 못 참는 난 결국 이렇게 물으며 어렵게 형성된 동지애를 망가뜨리고 만다.

"근데 진짜 원빈은 왜 이렇게 활동을 안 해요?"

"기자님, 원빈씨가 드라마, 영화 안 찍으면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회사가 최대 피해자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아세요? 활동을 안 하면 보통 광고가 줄어야 하는데 원빈씨는 희소성 때문에 오히려 광고 제의가 더 들어오거든요. 그것도 업계 최고 대우로요. 그러니 굳이 작품 선택할 때 모험을 강행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 심사숙고의 결과물이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였으며 '아저씨'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대체할 배우가 별로 없는 원빈은 작품성과 상업성 면에서 검증된 프로들과 작업하기도 바쁘다.

그런 그가 굳이 신인이나 실험정신 가득한 작품을 골라 헛발질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돈은 아쉽지 않을 만큼 벌었고, 금융이나 커피 등 언제든 고급스러운 콘티로 모시겠다는 광고들이 대기표 뽑고 줄을 섰으니 그야말로 선택권 부자인 셈이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벌려면 원빈처럼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윳돈으로 저평가된 우량주를 사놓은 뒤 적정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가치 투자 전략이 최선이다. 빨리 벌고 싶은 욕심에 빚을 내거나 신용 미수를 끌어 시간에 쫓기는 투자를 해선 절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워런 버핏이 강조한 투자 원칙 역시 두 가지뿐이지 않은가.

제1원칙 :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

제2원칙 : 제1원칙을 절대 잊지 마라

버핏은 또 "주식 시장은 스트라이크가 없는 야구와 같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구질의 공만 노려라"라는 유명한 말도 했다. 실제 야구에선 스트라이크에 방망이가 안 나가면 타자에게 불리한 볼 카운트가 적용되지만, 주식은 다르다. 삼진 아웃이 없으므로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환 기일이 있거나 대출 이자가 붙는 돈으로 투자한다면 스스로 불리한 볼 카운트를 자청하는 격이다. 그 결과는 조급함이 빚은 그릇된 의사 결정과 반대 매매, 시장 퇴출이다.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싸게 거래될 때 바구니에 나눠 담고, 제 가격이나 비싸지면 그때 내다 팔면 된다. 유인구에 속아 매수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고, 설사 스트라이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직구나 커브만 노려 마음껏 배트를 휘두르면 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승부처는 우직한 기다림이다. 버핏이 언급한 '미스터 마켓'으로 불리는 '시장 아저씨'는 곧잘 조울증 환자로 비유되곤 하는데, 어떤 날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자기 물건을 1만 원에 사라며 배짱 부리지만, 어떤 날은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시무룩한 얼굴로 같은 물건을 5,000원에 가져가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자기 원칙이 확고한 현명한 투자자라면 시장 아저씨의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에 휘둘려 지갑을 열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의 원빈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흑역사 없이 남들보다 일찍 주인공 반열에 오른 행운아인 건 맞지만 그 역시 첫 영화 '토요일 오후 2시'에선 대사 한 마디 없는 과묵한 배달원으로 나왔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욕쟁이 감독과 대기실 군기 잡는 선배들에게 커피 심부름도 해야 했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곱절 어려운 법인데 원빈이 25년 동안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유인구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은 덕분이다. 버핏처럼 고수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기와 환호, 더 많은 돈과 갈채를 위해 또는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과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예인이 지금 이 순간 배트를 휘두르고 있을까 떠올려보면 원빈의 절제와 기다림은 평가해줄 만하다. 주식 투자할 때도 내가 다른 시장 참여자보다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순간 어김없이 낭패가 찾아오는 법이다.

100만 원으로 주식할 땐 돈을 버는데 왜 1,000만 원으로 판돈을 키우면 막대한 손실을 볼까. 그저 운이 좋아 돈을 벌었을 뿐인데 이를 실력으로 착각하고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과열 지표 중 하나는 주린이가 펀드 매니저에게 종목을 추천할 때라고 한다.

주식 시장은 그런 어설픈 쭉정이 투자자를 어김없이 발견하고 일정 시간 머물게 한 뒤 퇴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주식 시장은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활용해 남의 돈을 먹으려는 무서운 정글이란 사실을 명심하자.

김범석 전 일간스포츠 연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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