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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코로나19를 설명할 수 있나

입력
2021.06.03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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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 동안 코로나19 범유행 위기 속에서 우리는 정보의 홍수를 겪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영역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감염재생산지수가 1을 넘었다’ ‘코로나19 예방 백신의 효과가 95%이다’ ‘초과사망자가 우리나라에서 4,000명 발생하였다’와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과학적 정보가 흔히 전해진다. 이런 수치는 주장의 근거가 훨씬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복잡한 방법으로 산출된 정보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백신의 효과를 둘러싼 비교가 대표적이다. 어떤 백신의 감염 예방효과가 95%이고, 다른 백신은 그것보다 수치가 낮게 나온다는 사실은 전 국민이 대부분 알고 있는 정보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제품이 비교 대상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숫자가 모든 정보를 단순하게 결정해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백신의 효과는 임상 3상 시험의 결과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출된 숫자는 임상시험이 시행된 기준, 국가, 시기가 다르므로 우열을 비교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가 서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대중에게 상세히 설명해주는 이는 드물다.

또 같은 수치라 하더라도 산출되는 환경, 조건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기간 발생한 초과사망자는 10만 명당 11명에 불과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코로나19 대응이 적절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초과사망자 중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우리의 대응이 완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숫자의 해석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코로나19에 대한 피해를 수치로 다루는 일은 정서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대중과 전문가는 숫자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현실과 거리를 두게 된다. 미국의 사망자가 수십만 명이라거나 우리나라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말은 그 속에 담긴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담지 못한다.

활발히 접종 중인 백신의 안전성을 수치로 이야기할 때는 더욱더 조심스러워진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며,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83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백신 접종 기간에는 이러한 사망자가 백신 접종과 관련되었다고 오인될 수 있다. 따라서 인과관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가족의 아픔을 감안하면 냉정하게 표현하거나 단정짓기 힘들다.

백신의 중증 이상반응인 희귀혈전 문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백신의 이상반응이 증명되었을 때는 숫자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1,000명의 삶을 지키기 위해 1명의 위험을 무릅쓴다는 결정을 과학적으로 내려야 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피해를 감내할 수 없다는 원칙은 중요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수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숫자는 특히 코로나19 위기에서는 오롯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냉정해 보이는 결정은 수치가 바탕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이 숨어 있다. 반드시 이 과정은 전문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함께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와 과정에 대한 성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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