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노조 "소수 경영진에 권한 집중... 직장 내 괴롭힘 방치"

입력
2021.06.02 11:30
수정
2021.06.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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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윤 지회장 "연봉·승진 탓 윗선 눈치"
괴롭힘 문제 제기한 사람이 퇴사하기도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성남=배우한 기자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성남=배우한 기자

오세윤 네이버노조 지회장은 한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자살한 사건이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에 걸쳐 만연한 '겉으로만 수평적이고, 안으로는 위계가 뚜렷한 조직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1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한 오 지회장은 "IT(업계)가 (외부) 생각과 다르게 소수의 경영진에게 권력이 굉장히 많이 집중돼 있다"며 "그 경영진이 아끼는 사람, 원해서 데려오는 사람의 경우 잘 자정되거나 견제되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너 서클(조직 내 핵심 집단) 쪽에 권력이 계속 집중돼 있고, 상위 조직장이 평가를 통해 연봉과 스톡옵션, 승진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며 "그분에게 잘 보여야 하고, 잘못 보이면 모든 게 사라지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불합리하게 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지회가 소속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IT위원회가 1일 공개한 IT·게임업계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7.4%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 또는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는 "적극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답변이 82.5%로 절대 다수였다.

오 지회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자살한 네이버 직원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도 결국 이런 문화 때문에 본인의 상황이 개선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으로부터 (A씨에게) 폭언과 고과 압박, 부당하거나 과도한 업무 지시, 강도 높은 업무 등으로 위계를 이용한 괴롭힘이 있었다"며 "해당 임원이 들어온 2019년 초부터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지회장에 따르면, 2019년 5월에는 A씨를 포함한 다수 직원들이 해당 임원의 밑에서 일할 수 없다며 경영진에게 호소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묵살했다. 또 불과 2개월 전에는 해당 조직의 윗선에서 발생한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이 오히려 퇴사하는 상황도 있었다.

IT 업계 종사자들은 A씨의 비극적 죽음에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오 지회장은 "(네이버 본사) 1층에 애도 공간을 마련했는데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며 "고인과 생전에 인연이 있었던 다른 회사 분들도 오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애도가 이어지는 데 대해 "(이번 일이) 비단 네이버 조직에서만 특별히 일어난 게 아니라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죄송함 같은 것도 있으신 것 같다"고 추측했다.

오 지회장은 "저도 노동인권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제가 잘했더라면 불의의 사고를 막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도 있다"며 "다 같이 연대를 해서 비극적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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