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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성교육' 책들은 아직도 도서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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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수명(壽命)은 언제까지일까.
고전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은 불멸이라 말할 테지만, 예외는 있다. 바로 교육 도서들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도 달라지며 교육 도서는 이에 가장 민감해야 한다. 성을 가르치는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뒤로 가는 아동콘텐츠' 기획에서 성교육 도서의 문제점(5월 4일자 1·8면, 관련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3010060001126)을 고발한 후, 해당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 도서관 중 일부를 골라 소장 및 열람 제한 여부를 질의했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옷차림 탓으로 돌리는 2차 가해 내용 등을 담고 있는 총 6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 중 상당수의 도서는 제작된 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판매조차 되지 않지만, 전국의 공공도서관에서는 여전히 접할 수 있었다. 오늘날 아이들 역시 시대착오적 성교육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다행히 한국일보가 질의한 전국 16곳의 도서관 중 13곳으로부터 "열람을 제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전국의 공공도서관만 1,134곳이며, 민간 도서관까지 합치면 수천 곳에 이른다. 문제의 책이 어느 도서관에 있는지 일괄적으로 알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정부가 아동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문제의 도서에 대한 소장과 열람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가 살펴본 '성교육' 도서 중 성폭력과 조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나 만화는 '너는 알고 있니? 사춘기의 비밀' '내 몸은 소중해' '내 몸이 이상해' '내 성은 건강해' '내 몸이 궁금해' '궁금한 성 아름다운 성' 총 6권이다.
전국 국립도서관 4곳 중 두 곳(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국립세종도서관)에서도 이 책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또 각 광역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현지 공공도서관들을 살펴본 결과, 제주의 도서관만 이들 문제의 책이 없었다.
한국일보의 질의를 받은 총 16개 도서관 중 13곳(81%)이 "기사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심의를 통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3곳은 "내부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해당 도서를 검토한 결과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열람을 제한해 관리하고 이를 대체할 올바른 성 관념을 심어줄 도서를 구비, 안전한 독서환경을 조성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부산 정관도서관의 답변이다.
광주 금호평생교육관 도서관과 대전 한밭도서관, 울산도서관, 충남 천안의 아우내도서관 등도 어린이·청소년에게 올바른 성 인식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고 열람이나 대출 제한을 결정했다. 아우내도서관은 "천안시 산하 도서관과 해당 정보를 공유했다"고도 했다.
역시 열람 제한을 결정한 의정부과학도서관 측은 이렇게 말했다. "성교육 도서는 어린이들이 주로 읽는 책이기에 보다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최근 아동 성추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동화작가 한예찬(53)씨 사건을 비롯, 아동 도서를 둘러싼 문제가 계속 지적되자, 규정 정비에 나선 도서관들도 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측은 6월 초 운영규칙 시행세칙을 개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 도서관 관계자는 "과거 시행세칙에서는 어린이 및 청소년의 성차별적 고정관념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료의 이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았다"면서 "성범죄자의 도서나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 도서관 시행세칙 제6조 3항에서는 선정적인 내용과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자료 등의 경우에만 이용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여기에 차별, 배제 등 어린이·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자료도 포함한 것이다. 또 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자료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고, 도서관 심의위원회에 소장 자료에 대한 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립세종도서관은 6월 1일자로 시행세칙을 개정, 선정성 및 차별 등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도서의 이용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개별 도서관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책의 선정, 폐기 등을 결정한다. 그러나 운영위원회의 상세 운영 기준은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논란이 된 도서 처리 방법은 도서관마다 제각각이다.
현장에서는 이로 인한 혼란을 호소하기도 했다. 경기지역에서 도서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사무관은 "특정 도서의 소장이나 열람에 대한 규정은 없다"면서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관련 지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동화작가 한예찬씨의 경우, 문체부 도서관정책기획단에서 전국 공공도서관에 관련 내용을 안내, 대응이 가능했다.
또 다른 사무관도 "한국일보의 질의를 보고 주변의 사서들과 얘기를 나눠봤지만 다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나라에서도 관련 출판물에 심의를 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이를 다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현재 간행물윤리위원회는 만화 또는 동화로 제작된 아동청소년 성교육 관련 도서를 별도로 심의하지 않는다. 문체부는 2014년 ‘양성평등 관점에서의 영유아?아동용 문화콘텐츠 생산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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