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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법 논란에 비친 혐오의 자화상

입력
2021.06.02 00:00
26면

국적법 개정 반대청원 31만 명 돌파
내용 불문한 맹목적 반중정서 반영
정부는 비이성 혐오여론에 당당해야


송소영 법무부 국적과장이 지난달 28일 서울고등검찰청 의정관에서 국적법 개정안 논란 관련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송소영 법무부 국적과장이 지난달 28일 서울고등검찰청 의정관에서 국적법 개정안 논란 관련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4월 말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국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1만 7,000명을 넘는 동의를 얻었다. 각종 SNS도 비난 발언으로 들끓고 있다. 그러한 여론에는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혐오가 담겨 있다. 중앙 일간지와 방송들조차 그런 혐오를 방조 또는 조장하고 있다.

국적법 개정안은 영주자격(F-5)을 취득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녀를 출생할 경우 국적 취득의 의사를 신고함으로써 그 자녀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질 수 있게끔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6만 명에 달하는 모든 영주자에게 그러한 길을 열어주려는 것은 아니다. 동포, 즉 한국계 외국인과 재한 화교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그렇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영주자 자녀는 기존 출생자 3,900여 명, 향후 매년 600~7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다수는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국민청원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융화되어 자국의 문화를 흐리고 그들이 한국인으로서 함께 살아갈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외부의 침투로부터 한민족으로의 유대감과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외국인을 한국 사회와 문화에 융화시키는 게 경을 칠 일인가? '한민족'이라면 국적과 무관하게 역사적 뿌리를 같이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중국동포는 한민족이 아니란 말인가?

여론을 들끓게 하는 발언들에는 감정적 반중정서가 담겨 있다. 거두절미하고 국적법 개정안이 중국인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대상이 되는 '화교'는 모든 재외 중국인을 뜻하는 게 아니다. 2002년 영주자격 도입 이전 거주자격(F-2)을 가진 화교로서, 수 세대에 걸쳐 우리와 함께 고락을 같이한 타이완 국적의 사람들이다. 더 큰 혐오의 대상은 중국 국적을 가진 동포인데, 우리 법제상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졌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이다. 마치 모든 중국 국적자에게 쉽게 국적을 주는 것처럼 여론을 왜곡하고 동포와 화교를 위험집단으로 만드는 발언은 무지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소수자들의 정신을 상해하는 폭력이 된다.

영주자 자녀에게 출생지주의를 적용하려는 목적의 하나는 국내에 상주할 외국인 아동을 처음부터 의무교육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6세 이전의 아동은 신고만에 의해, 7세 이상의 아동은 5년 이상의 거주를 추가적 요건으로 해 국적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정책의 혜택을 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재한 화교의 경우 한국인 배우자를 가진 사람이 많아 어차피 자녀는 한국 국민이 된다. 중국 국적자의 경우, 중국 국적법이 거주국 국적을 취득하는 해외 출생자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정책의 효과가 제한된다는 것은 위험도 없다는 뜻이 된다. 개정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중국인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법적으로만 본다면 중국 국적법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복수국적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대상 집단이 강력히 원하는 것도 아닌 정책을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섣불리 채택함으로써 오히려 해당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상처만 받게 만든 정책입안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비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정부는 비이성적 혐오여론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반대 여론에는 현 여권과 정부에 대한 혐오도 느껴진다. 그러나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은 2005년부터 여러 정부를 거쳐 지속적으로 모색되었고, 이번 국적법 개정안은 그것의 작은 일부를 실행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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