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산불 잡는다' 미국이 산불 감시 위해 선택한 국내 스타트업 알체라 

입력
2021.06.01 06:00
17면
구독

황영규 알체라 대표 "가스 누출과 송전탑 점검까지 AI로 가능"
"열매와 그늘 주는 사과 같은 회사 만들 것"

날씨가 건조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최대 고민은 산불이다. 건조한 기후 탓에 나무가 바짝 말라 조그만 불씨에도 큰 불이 곧잘 일어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5월 들어 산불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지난 14일에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로스앤젤레스 일대에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산불 피해는 화재 현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산불은 전력선을 끊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대규모 정전 피해를 입힌다. 미국은 산불 때문에 발생한 공장, 병원, 건물 정전으로 연간 170조 원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그만큼 산불에 대한 고민이 깊은 캘리포니아의 소노마 카운티가 지난 3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알체라와 손잡았다. 알체라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술로 산불을 조기에 발견해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서울 봉은사로에 위치한 알체라 데이터센터에서 산불 잡는 AI 기술을 개발한 황영규(47) 대표를 만났다.

황영규 알체라 대표가 서울 봉은사로에 위치한 알체라 데이터센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 설치된 산불 감시용 AI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황영규 알체라 대표가 서울 봉은사로에 위치한 알체라 데이터센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 설치된 산불 감시용 AI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무서운 미국 산불 직접 경험하고 개발

황 대표가 산불 감시용 AI 기술을 개발한 것은 2019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출장 갔다가 무시무시한 산불을 직접 본 것이 계기였다. "산불로 치솟은 연기가 하늘을 새까맣게 가릴 정도로 엄청났죠. 무섭고 안타까운 마음에 산불이 번지기 전에 막을 방법을 고민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던 AI 영상인식 기술을 접목할 생각을 했죠."

원래 알체라는 AI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출입을 통제하는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한 업체다. 이를 산불에 적용해 초기 화재 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감지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이 황 대표 생각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재 감시를 위해 산에 설치된 수백 대의 폐쇄회로(CC)TV를 알체라의 AI와 인터넷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카메라에 연기 발생 등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AI가 빠르게 영상을 분석해 화재 여부를 판단한 뒤 산불 감시센터에 알리는 시스템이다.

이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CCTV 영상을 봤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 CCTV 200대에서 100만 장의 영상이 들어와요. 사람이 이를 모두 보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니 놓칠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알체라의 AI 시스템 덕분에 산불 감시원들은 100만 장의 영상 중 1,000장만 살핀다. 나머지는 모두 알체라의 AI가 대신 판독한다. 그만큼 인력과 비용이 절약되고 산불 감지 시간도 빨라졌다.

구글보다 많은 산불 데이터 확보

이때 중요한 것은 진짜 산불을 가리는 일이다. 단순 지표면의 열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지랑이인지, 실제 불이 시작돼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인지 구분해야 한다. "AI의 판단 정확도는 97%예요. 이 수치는 데이터를 통한 기계학습으로 꾸준히 올라갑니다."

모든 AI가 그렇듯 더 똑똑해지려면 데이터로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산불 감시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황 대표는 미국 산불 감시회사 얼럿와일드파이어에서 7년간 축적한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받았다. "2019년 6월에 산불 감시용 AI를 개발하면서 얼럿와일드파이어를 찾아가 영상 데이터를 받았어요. 구글보다 산불 데이터가 많아요. 처음에는 정식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자료를 달라고 하니 의심하더군요. 기존 얼굴인식 사업을 예로 들며 열심히 설득했죠."

황 대표는 이렇게 개발한 산불 감시 AI로 지난 3월 소노마 카운티에서 실시한 산불 감지 서비스 공모 입찰에서 수많은 경쟁업체를 제치고 당당히 사업을 따냈다. 소노마 카운티는 알체라의 AI 도입 후 최근 효과를 봤다. "지난달 발생한 산불을 기존 인력 감시 시스템보다 10분 먼저 찾아 조기 진화했어요. 소노마 카운티 당국에서 다들 놀랐죠."

덕분에 황 대표는 소노마 카운티와 산불 발생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는 후속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위치 정보를 함께 통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에요. 이 기술은 2개월 내 개발돼 여름부터 적용될 겁니다."

드론을 이용한 산불 감시도 검토 중이다. "미국은 24시간 산불 감시를 위해 CCTV가 없는 곳에 유선으로 연결된 드론들을 띄워요. 여기에 AI를 접목하는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스탠퍼드대학 등 후속 계약 문의 이어져

알체라가 산불 감시용 AI 시스템을 미국에 수출한 것은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AI로 기존 산업을 혁신시킨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많은 미국 기업들을 물리치고 우리 기술이 인정받은 계기가 됐어요. 일반 CCTV에 AI를 연결해 똑똑한 카메라로 변신시키는 기술은 처음이었죠."

더불어 국내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수출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한 번 팔면 그만인 완제품과 달리 SaaS는 다달이 정기 수익이 발생하는 서비스 사업이다. "소노마 카운티와 매달 비용을 받는 조건으로 2년간 계약했어요."

덩달아 산불 때문에 피해를 보는 미국 기업들에서도 계약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리조트나 부동산 회사 등 산불로 피해보는 기업들 5, 6곳이 계약을 원해요. 일부 기업들은 밝힐 수 없지만 계약을 마쳤어요. 스탠퍼드대학도 부동산 감시에 우리 시스템 사용을 논의 중이에요."

황영규 알체라 대표는 앞으로 얼굴인식 기술이 본인 확인을 넘어 전자서명까지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황영규 알체라 대표는 앞으로 얼굴인식 기술이 본인 확인을 넘어 전자서명까지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전자여권 발급과 카드 결제에 쓰이는 얼굴인식 기술도 개발

알체라의 또 다른 축은 AI를 이용한 얼굴인식 기술이다. AI가 등록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알체라의 얼굴인식 기술은 국내 전자여권 발급을 비롯해 인천국제공항,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출입 관리 등에 쓰인다. "전자여권을 온라인으로 갱신할 때 사진을 제출하는데 나중에 여권을 찾으며 제출 사진과 본인이 맞는지 확인 작업을 알체라의 얼굴인식 시스템으로 해요. 이를 위해 국내 구청과 전 세계 200여 개 외교부 해외공관에 설치돼 있어요."

황 대표는 여러 가지 인증 수단 가운데 얼굴인식이 가장 편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고 믿는다. "지문인식은 초음파 감지기가 바뀌면 여기 맞춰 기술 개발을 다시 합니다. 얼굴인식은 카메라가 바뀌어도 기술을 다시 개발할 필요가 없어서 비용이 덜 들죠. 홍체 인식은 카메라에 따라 인식 여부가 달라져서 사용할 때 어려움이 많아요."

이런 장점 때문에 얼굴인식은 최근 전자결제 수단으로 쓰임새가 확대됐다. 신한카드는 2019년부터 비밀번호를 대신하는 수단 중 하나로 알체라의 얼굴인식 기술을 도입했다. "얼굴을 등록해 놓고 신용카드를 결제할 때 얼굴로 인증을 합니다. 이미 서울 한양대의 CU 편의점과 상암동 홈플러스 매장 등에 얼굴인식 단말기가 설치됐어요. 얼굴인식은 짐을 들어서 손이 자유롭지 못할 때 아주 편하죠.”

황 대표는 얼굴인식이 장차 전자서명을 대체할 것으로 본다. 여기 맞춰 얼굴인식 기술의 해외 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못지않게 얼굴인식 기술이 발달한 곳이 우리나라예요. 지난해 일본건설 기업 카지마와 미국 산페드로 스퀘어마켓에 출퇴근 관리 및 출입자 체온 검사용으로 수출을 했어요."

네이버와 스노우, 제페토로 이어진 인연

황 대표는 성균관대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와 위스콘신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삼성종합기술원에 취직했다. 그는 삼성에서 9년간 일하며 얼굴인식 기술을 연구했다. 이후 2년간 근무한 SK텔레콤의 미래기술원에서도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했다. "SK텔레콤에 근무하던 2015년 영상과 사진을 이용한 채팅 서비스인 네이버의 스노우 개발을 자문해 주다가 창업 제의를 받았어요. 그래서 2016년 동료들과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죠."

네이버는 황 대표의 남다른 얼굴인식 기술을 알아보고 스노우에 적용할 테니 창업하라며 권유했고 투자까지 했다. 황 대표가 개발한 기술은 스노우에서 눈의 중요한 포인트를 인식해 사람의 얼굴 방향이 달라져도 자연스럽게 3D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서비스로 발전했다. "운이 좋았어요. 운이란 스노우 관계자들을 만난 겁니다. 스노우의 초기 멤버들은 알체라의 은인이에요. 그런데 스노우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운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창업하기 잘했죠."

네이버와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알체라는 지난해 네이버 스노우와 함께 합작기업 플레이스에이를 설립했다. 플레이스에이가 개발하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은 네이버의 가상공간(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에 적용된다. 황 대표는 최근까지 플레이스에이 대표를 겸직하다가 지난 25일 알체라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물러났다.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알체라가 하지 않는 새로운 AI 관련 사업을 앞으로 플레이스에이를 통해 많이 할 겁니다."

황영규 알체라 대표는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로 스타트업 창업을 꼽았다. 그는 "고객이 누군지 알고 시장을 파악하면 나가서 창업하라"며 직원들에게도 창업을 권한다. 배우한 기자

황영규 알체라 대표는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로 스타트업 창업을 꼽았다. 그는 "고객이 누군지 알고 시장을 파악하면 나가서 창업하라"며 직원들에게도 창업을 권한다. 배우한 기자


"AI로 가스 누출과 송전탑도 관리...사과나무 같은 회사 만들 것"

앞으로 황 대표는 AI를 이용한 이상상황 감지기술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심각한 것 중 하나가 메탄가스예요. 미국은 연간 메탄가스 배출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30억 달러에 이릅니다. 유전과 송유관 등에서 가스 누출이 많이 발생합니다. 산불 감시처럼 파이프 누수도 AI로 감지할 수 있죠. 이와 관련한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송전탑 관리도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 70만 볼트의 전력이 오가는 송전탑을 1년에 5㎞씩 타고 다니며 전력선 상태를 점검해요. 이를 드론과 AI로 대체할 수 있죠. 관련해서 여러 나라에서 사업 제의를 받았어요."

시장 확대에 맞춰 매출도 키울 계획이다. "매출은 지난해 42억 원이었고 올해 세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아직은 적자지만 시장 확대를 위해 흑자보다 매출을 늘리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개발자를 계속 뽑을 예정이다. “전체 직원 120명 중 절반 이상이 개발자예요. 앞으로 연구 개발 인력을 계속 늘릴 겁니다. 이를 위해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하고 최고의 대접을 하고 있죠."

황 대표가 그리는 알체라의 미래는 사과나무 같은 회사다. "사람들에게 열매와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같은 회사죠. 즉 표나게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서 도움을 주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