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민씨 변사 한 달… 타살 가능성 낮다는 데도 가시지 않는 음모론

입력
2021.05.30 20:00
[팩트체크] 고위관계자설, 수사 비협조설 등 의혹 난무
객관적 증거엔 "조작", 경찰 확보 목격자엔 "매수" 치부
전문가들 "확증편향 심각… 책임 물을 시스템 부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쇼핑센터 인근에서 열린 고(故) 손정민(22)씨 사망 진상규명 촉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손씨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22)의 사망 경위를 둘러싸고 각종 음모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음모론의 표적인 손씨 친구 A씨에 대해 경찰은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경찰이 제시한 증거와 목격자 진술을 배척하면서 여전히 손씨의 타살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손씨가 사망 경위를 밝히기 까다로운 익사로 숨진 데다가 인터넷 환경이 언론과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서 전형적인 확증편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뜻한다.

친인척이 고위급? 휴대폰 제출 거부? 팩트 체크해보니

한원횡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제2서경마루에서 한강 대학생 사망사고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온라인상에는 A씨가 손씨 사망에 직접적인 관여를 했을 것이라는 전제로 ①수사 비협조 및 증거 은폐설 ②A씨 친인척 고위관계자설 ③A씨와 손씨 다툼설 등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경찰 수사 상황 등을 종합하면 이들 의혹은 모두 근거를 찾기 어렵다.

① A씨 참고인 조사 7번… 가족 휴대폰 모두 포렌식

27일 서울경찰청이 공개한 수사 진행 상황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5일 손씨 실종 이후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총 7차례 조사했다. 손씨 시신이 발견된 지난달 30일 전후로 각각 3차례, 4차례 조사가 이뤄졌으며 여기엔 법최면 조사(2회)와 프로파일러 면담(1회)이 포함됐다. A씨 아버지도 2회, 어머니는 1회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모두 조사 과정에서 특별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A씨 가족은 참고인 신분을 유지 중이다.

경찰은 또 A씨의 노트북과 아이패드, A씨 어머니의 차량 블랙박스와 휴대폰, A씨 아버지의 휴대폰, A씨 누나의 휴대폰, A씨가 손씨 실종 당일 타고 귀가한 택시 블랙박스 등 총 7대의 전자기기를 포렌식했다. 이들 기기는 모두 경찰에 임의제출됐으며, 조사 결과 저장 내역 삭제 등의 증거 조작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② 고위급 친인척 배후설에 당사자들 직접 해명

사건 초기부터 온라인상에는 A씨 친인척 가운데 고위 공직자가 있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의혹의 당사자로 거론된 이재훈 전 강남경찰서장과 최종혁 서울청 수사과장이 직접 나서 부인했지만 억측은 계속됐다. 최근에는 송정애 대전경찰청장이 손씨 사건 담당 수사팀을 비판했다는 허위 사실이 유튜브상에 유포돼 충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내사에 나섰다.

③ 경찰 "A씨와 손씨, 여행 다니며 친한 사이"

A씨와 손씨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거나 두 사람이 실종 당일 싸우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의혹도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A씨와 손씨는 평소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거나 국내·국외 여행을 같이 갔던 사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두 사람이 한강공원에서 다투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도 없다.

이외에도 △손씨 실종 당시 또 다른 동석자가 있었다거나 △사건 현장에서 혈흔이 발견됐다는 등의 의혹도 제기됐으나, 경찰은 이런 의혹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사망경위 규명 더딘 틈에 음모론 활개

손씨가 다름 아닌 익사로 숨졌다는 점이 음모론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입수 장면을 정확히 찍은 폐쇄회로(CC)TV가 없는 가운데 익사 소견이 나올 경우, 수사기관이 당시 상황을 역추적해 사건을 재구성해야만 하는데 수사가 어려울뿐더러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권영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중에서 발견된 시신 중 사망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진 비율은 2017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매년 절반에 못 미쳤다. 지난해의 경우 관련 사망자 443명 중 261명(58.9%)이 사망 원인 불명으로 분류된 상황이다. 수사가 쉽게 진척되지 않다 보니 근거 없는 음모론이 여론을 호도할 여지도 큰 셈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손씨 사건을 둘러싼 억측은 도를 지나쳤다는 비판이 많다. 손씨 실종 당일 사건 현장 인근에서 한강에 혼자 입수하는 남성을 목격했다는 낚시꾼 일행의 진술을 경찰이 공개하자, 일부 네티즌이 즉각 '목격자 매수설'을 퍼뜨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29일 방송분에서 손씨와 A씨에게 음식을 갖다준 배달원을 찾아 "두 사람이 많이 취해 있었고 막걸리 병을 들고 있었다"는 진술을 방송하자 마찬가지로 매수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배달원은 경찰이 확보한 목격자 7개팀 16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 확증편향을 키우며 음모론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언론과 수사기관을 불신하는 환경에서 유튜브 알고리즘 등으로 인해 내가 믿기로 선택한 정보만을 끊임없이 볼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근거 없는 억측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책임을 물을 건지 우려되는 시점"이라며 "상업적 목적으로 이슈를 활용하는 행태가 자정되지 않는다면 외부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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