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주가는 금융 위기 닮은꼴?

입력
2021.05.30 12:41
수정
2021.05.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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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리스크'가 소환한 영화 '빅쇼트'

편집자주

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것만 알아두게, 지름길은 없다는 것, 규칙을 무시한 중개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네.

영화 ‘월스트리트’ 속 루 만하임의 대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근교의 그륀하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의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근교의 그륀하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의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요즘 오락가락 행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만 테슬라 전기자동차 구매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가 비트코인 결제를 막겠다고 말을 뒤집더니 급작스레 또 다른 가상화폐인 도지코인 추켜세우기에 나섰습니다. 비트코인 시세를 폭락시키고, 도지코인 가격은 폭등시킨 그의 발언은 문제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잇따른 돌출발언에다 도지코인과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머스크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기행 때문에 천정 모르던 테슬라 주가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머스크로 인해 테슬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머스크 리스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유명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아예 테슬라 주가 하락에 ‘베팅’을 했습니다. 버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영화 '빅쇼트'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예감한 마이클 버리 등을 주인공으로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판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빅쇼트'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예감한 마이클 버리 등을 주인공으로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판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상화폐 투기 광풍에 머스크의 미심쩍은 행동이 겹치고, 버리까지 나선 상황을 지켜보자니 영화 ‘빅쇼트’(2015)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과정을 블랙 유머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주식과 가상화폐, 집값에 지나치게 거품이 끼어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 섬뜩한 느낌을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애덤 맥케이입니다. ‘바이스’(2018)로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를 선보였던 감독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미국 드라마 버전 총괄 제작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빅쇼트’는 IPTV 주문형비디오(VOD)나 웨이브에서 유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①미국 집값 거품 붕괴의 징조

2005년 투자전문회사 시온 캐피털의 CEO 마이클 버리(크리스천 베일)는 미국 주택시장에서 이상한 흐름을 발견합니다. 모기지론 관련 문서 몇 천 쪽을 읽고선 부실대출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겁니다. 그는 “바위처럼 단단하다”는 금융권의 평가와 달리 주택시장이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주택 관련 채권 값 폭락을 염두에 두고 13억달러어치 공매도(Short)에 나섭니다. 주택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투자를 한 것이지요. 버리의 공매도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 대형 투자은행 관계자들은 돔페리뇽 등 고가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합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데 버리가 시장 흐름을 역행한 바보 같은 투자를 해 손쉽게 돈을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이체방크의 중역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역시 주택시장의 문제점을 간파합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110%인 상품까지 나온 상태에서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주택담보 관련 부실 채권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버리처럼 주택 관련 채권 값 하락을 염두에 둔 금융 상품을 개발해 이를 팔려고 합니다. 베넷의 팀원이 전화를 잘못 걸면서 또 다른 투자사 프론트포인트 파트너스의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CEO도 주택시장 변동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②집 5채 여인 “집값 5%만 있으면 사는데…”

영화 '빅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빅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바움은 직원들과 함께 플로리다주로 향합니다. 주택시장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이애미 도심에서 차로 45분거리 떨어진 지역의 집값이 뛰고 있다고 하는데, 가보니 사람보다 집이 더 많습니다. 바움 일행은 “집은 백 채인데 인구는 넷”인 상황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어떤 집은 주인이 개 이름으로 사기도 했고, 클럽에서 스트립 쇼로 돈을 버는 어떤 여인은 집을 5채나 가지고 있습니다. 집값의 5%만 내도 집을 살 수가 있는데, 집값은 오르고 있으니 집을 사지 않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워렌 버핏의 이름조차 모르는 ‘금융지식 제로’ 주택담보대출 중개인은 고액 수수료를 챙길 생각에 고객 신용도를 따지지 않습니다. 대출기관 역시 실적 올릴 생각에 ‘무소득 무직장’ 대출 상품까지 내놓았습니다. 집을 무리해서 산 사람이 담보대출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못 내면 대출기관은 부실화되고, 이들이 주택담보를 바탕으로 발행한 채권 역시 부실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관련 채권에 관여된 대형 금융기관마저 도미노로 타격을 입을 상황인 거죠. 바움은 기가 찬 현실을 보고선 버리처럼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게 됩니다.

③시스템 마비가 부른 재앙

마크 바움 역시 주택시장의 부실을 눈치챈다. 그는 어느 강연장에서 주택시장과 관련한 채권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무시 당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크 바움 역시 주택시장의 부실을 눈치챈다. 그는 어느 강연장에서 주택시장과 관련한 채권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무시 당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는 이후 벌어진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 경제를 덮치더니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몰고 옵니다. 거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부도를 맞았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 스페인 경제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영화는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는데 이를 무시해 버린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발합니다.

영화 '빅 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빅 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건너 뛰고 싶으시면 ☞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소규모 투자전문회사를 운영하며 월스트리트 진출을 노리던 찰리 젤러와 제이미 쉼플리는 베넷의 시장 전망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데이터를 뒤져본 후 집값 거품이 꺼지고, 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가 수치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관련 채권에 대한 금융권의 신용평가는 바뀌지 않습니다. 젤러와 쉼플리는 유력 경제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는 지인을 찾아가 제보를 하나 기자는 월스트리트 인맥 때문에 난색을 표합니다. 바움은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에 변화가 없자 신용평가기관 S&P 직원을 찾아가 따집니다. 직원은 볼멘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좋은) 등급을 내주지 않으면 무디스로 가요. 우리 경쟁사를 찾아간단 말이에요.” 그들만의 공생구조가 시스템 마비를 부른 겁니다.

④드라마 ‘기생충’ 제작자의 송곳 비판

마크 바움의 동료들은 주택시장 부실을 예측하는 자레드 베넷의 주장을 반박하지만, 바움은 다른 생각을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크 바움의 동료들은 주택시장 부실을 예측하는 자레드 베넷의 주장을 반박하지만, 바움은 다른 생각을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월스트리트의 부도덕성은 부채담보부증권(CDO)의 판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CDO는 부실 채권의 위험을 감추기 위해 월스트리트가 개발한 ‘눈속임 금융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유명 요리사 안소니 보댕을 통해 CDO의 위험성을 설명합니다. 요리용으로 구매한 생선이 안 팔리면 스튜 메뉴를 개발해 며칠 묵은 생선을 처분하는 행위를 CDO에 비유합니다. 손님은 식중독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튜를 먹습니다. “교활한” 요리사는 부실 식재료를 손실 없이 처리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 합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은 재앙을 불렀으나 철퇴를 맞은 금융인은 거의 없습니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여되고 금융 위기에 따른 피해는 일반 국민이 떠안았습니다. 미국에서만 5조 달러가 사라지고, 8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600만 명은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바움은 “몇 년 후 국민들은 이민자와 가난한 자를 탓할 거”라고 말하는데,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영화 '빅 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빅 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경구로 시작합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는 이런 문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싫어한다.”(워싱턴DC 어느 술집에서 들려 온 말) 가상화폐 가치가 등락을 거듭하고,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2021년, 서늘하게 들리는 말들입니다.

※ 지난 금요일 오전 한국일보 뉴스레터로 발송된 내용입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을 좀 더 빨리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구독 신청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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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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