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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한반도 비핵화'와 北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같은 개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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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비핵화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5일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한미 공동성명에 담긴 '한반도 비핵화'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지대화'의 조건 중 하나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도마에 오른 것이다. 한미가 '완전히 일치된 대북 접근법'을 강조한 이후 불협화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외교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1992년 12월 남북 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이후 한국 정부는 줄곧 공식 문서와 발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해 오고 있다. 이 선언 1조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 영토 내 핵무기와 핵 제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고 미래에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다만 한국은 핵무기는 물론 보유 의사가 없으므로 사실상 '북한 비핵화'와 동의어라는 게 한미의 공통된 해석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출범 초 북한의 핵 폐기를 강조하기 위해 보다 선명한 '북한 비핵화' 표현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이후 일부 고위 당국자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바꿔 언급하고 있다. 대북정책 검토 이후에 나온 이번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을 명시했다. 북한의 협상장 복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본래 의미를 지키면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미국을 설득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의 대상과 정의는 한미와 전혀 다르다. 북미 간 하노이 정상회담을 2개월 앞둔 2018년 12월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어물쩍 간판을 바꿔놓음으로써 착각을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자신들은 한반도 내 미국 전략자산 반입을 금지하는 의미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넣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 때부터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지대화'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북한은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 직후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내 미군기지의 핵무기 공개 △한국 내 모든 핵기지 철폐 및 검증 △미국 ‘핵 타격 수단’의 한반도 전개 금지 보장 △북한에 대한 핵 위협 중단 및 핵 불사용 확약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조선반도 비핵화'의 5대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정 장관 발언에 대해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를 염두에 둔 언급은 아니다"라며 "남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개념이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북측 요구를 수용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지대화' 개념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함의가 깔린 것을 정 장관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발언에 보다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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